말로만 책임경영을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몸소 지갑을 열어 그 말을 증명했다.
지난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장내매수를 통해 SK하이닉스 보통주 3620주를 취득했다. 이날 종가(132만2000원) 기준 47억8564만원 규모다.
SK그룹 출범 이후 최 회장이 SK하이닉스 지분을 사재로 직접 사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최대주주인 SK스퀘어(지분율 20.00%, 1억4610만주 보유)를 통해서만 경영권을 행사해온 그가 개인 명의로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이번 매수로 SK하이닉스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전체 보유 주식이 1억4612만8151주로 늘었다.
이번 매입은 자본시장법상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를 고려해 50억원 아래에서 결정된 것도 보인다. 현행 제도에 따라 매입액이 50억원을 넘으면 30일 전 사전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이 절차를 밟으며 시간을 끌 바에야 곧바로 시장에 신호를 보내겠다는 의지라는 분석이다.
슈카가 먼저 목격한 '48억 매수'
약 50억에 육박하는 매수 주문은 공시가 뜨기도 전에 이미 화제였다. 지난 29일 진행된 경제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 라이브 방송에서 진행자 슈카는 SK하이닉스 호가창을 살펴보던 중 약 48억원 규모의 대형 매수 주문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엔 매수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음 날 공시를 통해 그 주인공이 최 회장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로 빠르게 퍼졌다.
회장님의 '시원한 한방'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시청자들 입장에선 짜릿한 우연이었던 셈이다.
반토막 주가, 그리고 오너의 승부수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달 25일 장중 298만7000원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썼지만 이후 내리막을 탔다. 이달 30일 132만2000원으로 마감하며 고점 대비 55% 넘게 빠졌다. 2분기 영업이익이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음에도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우려와 반도체 고점론이 겹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지난 29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추가 주주환원 확대에 대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답이 나오면서 그날 주가가 10% 가까이 급락했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이달 17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SK하이닉스 주가와 관련해, 메모리 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므로 장기 보유가 유리하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번 장내매수는 그 말을 실제 자본 투입으로 증명한 셈이다. SK그룹 측도 이번 매수를 두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책임경영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증권가 반응도 나쁘지 않다.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 시점에 나온 오너의 첫 장내매수를, 기업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행동으로 증명한 사례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편 31일 미국 반도체주 급등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호실적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장 초반 20%대 급등세를 탔고,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전날 최 회장의 장내매수 소식도 투자심리를 자극한 호재 중 하나로 꼽혔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의 첫 SK하이닉스 매수분 평가이익이 하루 만에 1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말이 아닌 행동'을 선택한 회장님의 한방이, 타이밍마저 시원하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