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품도 '진품'이다…중고앱 검증망 뚫은 프랑스 장물 거래
약탈품도 '진품'이다…중고앱 검증망 뚫은 프랑스 장물 거래
  • 안지연
  • 승인 2026.10.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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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물가 항의 시위가 약탈로 번진 지 하루 만에 털린 명품과 향수·화장품이 중고거래 앱에 헐값 매물로 올라왔다. 위조품을 걸러내도록 설계된 플랫폼의 정품 검증 체계가 '진짜 장물'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50만명 넘게 참가한 시위는 밤사이 방화·약탈로 이어졌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에 따르면 이날 1200명이 체포되고 경찰 150명이 다쳤다. 프랑스 상공회의소(CCI France)는 17~18일 약탈 피해 상점을 2000곳 이상으로 추산했다.

루이비통·버버리·셀린 매장이 털리는 영상이 SNS에 퍼진 직후 중고 패션 플랫폼 빈티드(Vinted)와 중고거래 사이트 르봉쿠앵(Leboncoin)에는 명품백·향수·화장품·운동화 매물이 몰렸다. 새 미용제품 묶음이 25유로에 올라왔고, 가격표가 붙은 채 ‘10월17일'을 표기한 게시글도 나왔다.

빈티드 측은 "평소 이 정도 규모로 올라오지 않는 명품 매물이 뚜렷하게 늘었다"며 관련 게시글을 삭제하고 위반 계정은 영구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위조품 걸러내는 체계, 장물엔 무력

빈티드는 명품 등록 시 제품 택·시리얼 번호·정품 보증서·영수증 등 진품 증빙을 요구한다. 이 체계는 '가짜'를 가려내는 데 맞춰져 있다. 매장에서 털린 상품은 택과 시리얼이 모두 정상이어서 정품 검증만으로는 걸러지지 않는다. 출처를 가를 단서는 구매 영수증뿐인데, 개인 간 중고거래에서는 영수증 없는 매물이 흔해 장물과 일반 매물을 구분하기 어렵다. 이번 의심 매물이 보증서·영수증 없이 새 상품을 시세보다 크게 낮은 가격에 내놓는 형태를 띤 것도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거래도 플랫폼 밖으로 빠져나갔다. 판매자 상당수는 스냅챗 등 메신저로 대화를 옮겨 모니터링을 피했고, 약탈품을 사겠다는 구매 희망 글까지 올라왔다. 플랫폼은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르봉쿠앵은 모든 게시글을 등록 전 자동 검사하지만 이번 사태로 의심 매물이나 가격이 어떻게 변했는지 집계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이베이도 매물 증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플랫폼에 탐지 책임…수요까지 감시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저녁 세르주 파팽 상업장관과 안 르 에낭프 디지털 담당 장관 주재로 빈티드·르봉쿠앵·아마존·이베이·메타·틱톡과 전자상거래연맹(Fevad) 등을 소집했다. 내무부·법무부도 배석했다. 정부는 이튿날 플랫폼들로부터 네 가지 약속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수사기관에 장물 판매자 식별 정보를 제공하고, 비정상적 저가·새 상품 묶음·도난방지 택 부착·도난 명시 게시글을 집중 감시하며, 구매자에게 처벌 위험을 고지하고, 삭제 실적을 48시간 안에 처음 보고하는 내용이다.

특히 감시 대상을 구매 요청 글까지 넓혔다. 판매 게시글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메신저로 옮겨간 거래를 막을 수 없는 만큼 수요 쪽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이다.

프랑스 형법 321-1조는 범죄로 얻은 물건임을 알고 보유·전달하는 장물죄에 최대 징역 5년, 벌금 37만5000유로를 규정한다. 출처를 모른 선의의 구매자는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지나치게 낮은 가격과 영수증 부재, 판매자와의 대화 내용은 '알고 샀다'는 정황으로 쓰일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약탈한 자는 배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다만 정품 여부만 확인하는 현행 검증 구조에서는 출처 확인 책임이 결국 구매자에게 넘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항의 시위 ⓒgettyimagesbank
프랑스 항의 시위 ⓒgettyimages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