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 ISSUE & FOCUS]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학적 교훈 (上)
[한선 ISSUE & FOCUS]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학적 교훈 (上)
  • 한반도선진화재단
  • 승인 2015.07.0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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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한국의 정신적 메르스 극복해야

민문홍 서강대 대우교수/국제비교사회문화정책연구소장

5월 20일 처음 발생하여 우리 국민을 놀라게 했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 증후군) 사태가 지난 주말을 고비로 차츰 진정되어가는 것 같다. 이 사태가 종식된 후 정부는 각 분야 전문가들(여기에는 반드시 인문사회학 전공 학자들도 포함)의 도움을 받아 관계부처 주관으로 좀 더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한 백서를 작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이제까지 의료선진국으로 알았던 한국사회의 낙후된 모습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지구촌 시대에 후기 현대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이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메르스 사태는 한국사회 개혁을 원하는 인문사회학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이 사태에 대한 최근 한 달 동안 주요 언론들이 보도한 내용과 전문가들의 논평을 종합해보면, 중동지방의 토착 감기에 불과한 메르스가 한국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의료 행정적 원인이고, 둘째는 보다 포괄적인 인문사회학적 원인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메르스 사태가 엄청난 파문을 가져온 데에는 후자의 영향력이 더 컸다.

메르스가 '코르스(Korean MERS)' 괴물로 변한 이유

감염내과 전공 의사들의 분석에 의하면, 메르스가 위험한 이유는 이것이 전염병이고, 높은 사망률 - 중동의 경우 40% - 을 지니고 있으며,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질병은 초반에 병원균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예방 매뉴얼을 가지고 신속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이 점에 대해 전(前) 한국의사협회장을 지낸 노환규 박사는 의료 행정적 관점에서 크게 네 가지 요인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메르스는 이미 2012년 발생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중요 정보를 건네받고 관련 전문가 회의까지 마쳤으나, 그 이후 회의 내용과 예방 매뉴얼에 대한 제작 및 홍보절차가 정부에 의해 무시되거나 흐지부지 되었다. 둘째, 병원과 질병관리본부를 포함한 보건복지부의 초기 대응 방식이 너무 안이했다. 셋째, 정부 내에 이 문제를 빨리 진단하고 초기 대응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특히 메르스라는 질병에 대한 전문지식과 초기 매뉴얼이 부재한 상태에서 목표 없이 너무 오랜 시간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권위주의 정부 시대의 유산인 '통치를 위한 비밀보호주의'가 전문가들의 적절한 시점에서의 개입과 시민들의 협조를 통해 병의 무차별 확산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을 방해 했다. 즉, 전염병원균이 메르스이고 처음으로 확진 환자가 나오고 또 그것을 외부로 퍼뜨린 감염병원들 - 평택 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 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시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정부관계자들이 대외비로 취급해 이 문제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문제를 이러한 관점에만 제한시킨다면, 메르스 사태는 보건복지부 내에 보건 의료의 비중을 높이고, 그 역할을 총괄 지휘할 독립적인 차관 정도를 두면 쉽게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시민들의 불안, 공포감, 정부에 대한 불신, 통치 엘리트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담당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태도라는 변수들이 깊이 관여되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시민들은 험난한 근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시민 각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반공동체주의 철학이었다는 것을 거의 무의식적인 집단기억 형태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국민들의 미성숙한 시민의식은 선진국이나 남미 같은 후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메르스 치료를 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분들의 치료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목숨을 걸며 노력하는 의료진들과 그 가족들까지 '왕따'시키는, 부끄러운 전염병 예방 풍속도를 보였다. 이것이 우리 앞에 있는 메르스라는 중동 전염병이 '코르스(Korean MERS)'라는 괴물로 변해 우리를 괴롭혔던 이유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스가 가져온 위기도 진정되면, 우리 국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가 가져올 중장기적 파장은 클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 정부가 치러야 할 비용도 국가 브랜드 훼손까지 포함시키면, 20조 원 정도가 아니라 그 열 배가 넘는 천문학적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태를 인문사회학적 통찰력으로 엄밀히 분석해보면, 우리는 현재 선진국 문턱에 주저앉아 십여 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을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정부가 언제부터인가 목표도 방향도 없이 표류하듯 국가 전체의 기강이 해이해졌다. 여기에 정부세종청사 이전을 전후한 행정부 공무원들과 국책기관 연구소들의 혼란은 세종청사의 안이한 분위기와 이에 따른 거북이 행정 처리로 다양한 민원을 가진 국민들을 커다란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기강해이는 입법부도 마찬가지다. 국회도 국민들에게 존재 이유를 의심받을 정도로 표류하고 있다.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사분오열하는 정당의 리더십은 국민의 신뢰를 더 추락시켰다. 한국사회가 처한 현 상황을 보다 냉철히 표현하면 국정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호가 세월호처럼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침몰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언제부터인가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도 이제 더 이상 사명의식이나 열정 없이 영혼을 잃어버린 조직들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가 내세우는 유일한 구호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규제개혁을 외치면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내세운 국가의 역할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국가에게는 더 사려 깊은 국정철학과 성찰이 요구된다. 유럽의 석학들이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1759)에 주목한 것은,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도>에 대한 설계도를 제시한 아담 스미스의 인문사회학에서 찾기 위해서였다.

이 경제학의 창시자에 의하면, 현대 국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세 가지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국가는 공정한 게임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관리감독하며, 거기에서 생겨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고, 약자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2)공동체 이익과 개인 이익이 충돌할 때나 개인 이익의 과도한 추구가 타인의 이익을침해한다고 생각될 때,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3) 다양한 이유로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들을 배려하고 돌볼 줄 아는 공감의 마음(측은지심)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심어주는 공감에 대한 감정교육이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는 벌써 오랜 전에 경제 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이 국가에 의한 정당한 게임규칙을 훼손할 때, 그 좋은 의도와는 달리 사회혼란과 기강해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둘째, 정부 부처의 보다 효율적 개혁과 후기 현대사회의 위험에 걸맞는 새로운 조직화가 필요하다. 전국 의사협회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이 기회에 보건복지부 내에 보건의료 행정 및 공공의료와 질병관리본부를 아우르는 차관 직을 신설하고, 기존의 복지담당 차관 부서에 사회복지와 국민통합을 담당하게 하며, 노인문제를 종합적으로 담당하는 노인복지청을 신설함으로써 보건복지부를 명실상부한 부총리직의 위상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보건복지부는 향후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 정책의 기획 및 집행뿐 아니라, 짧은 시간에 한국식 복지모델을 마련하고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대다수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및 연금정책을 새로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전제조건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과 보건복지부 관련 부서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과, 공공이익을 앞세우되 국민들 생활과 밀착된 정책을 만들려는 정부와 국회의 사명감에 입각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자세이다.

이 글은 한반도선진화재단 'ISSUE & FOCUS'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