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 ISSUE & FOCUS]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학적 교훈 (下)
[한선 ISSUE & FOCUS] 메르스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사회학적 교훈 (下)
  • 한반도선진화재단
  • 승인 2015.07.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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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한국의 정신적 메르스 극복해야

민문홍 서강대 대우교수/국제비교사회문화정책연구소장

정신적 메르스 극복할 새로운 공론의 장 만들어져야

셋째 조금은 엉뚱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후기 현대사회에 진입해 경험하고 있는 '정신적 메르스 감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의회를 포함한 대중매체와 시민단체들이 상대주의적 가치관과 포퓰리즘에 의해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세기가 전체주의와 싸우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시기였다면, 21세기는 상대주의적 가치관과 포퓰리즘을 이겨냄으로써 더 성숙하고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 체제를 완성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이러한 정신적 메르스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공론(公論)의 장이 더 이상 경직된 이념의 포로가 되거나 포퓰리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국민들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참여민주주의'를 숭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공론의 장에서 진실에 가까운 상식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침묵하는 다수를 위한 공익을 구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주목한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한반도선진화재단이 '공동체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추구해온 철학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존의 한국사회가 처해있는 의회민주주의의 포퓰리즘 - 대표적 사례가 국회선진화법- 을 그대로 방치하고서는 한국사회를 선진화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넷째, 한국사회의 공익을 구현할 사회운동 조직이나 시민운동 조직이 지나칠 정도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의 이념적 대립에 근거한 철 지난 패러다임의 포로가 되어있다. 68년 5월혁명(프랑스 5월혁명)을 연상시키는 민주화 세력의 민주의식은 한국사회가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발전모델을 마련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한국의 일부 관료집단과 대기업조직들은 여전히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거나 왜곡된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다. 따라서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사이의 철지난 대립을 창조적 에너지로 활용하고 한국사회를 보다 창의적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유연하게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민사회 영역과 공적 담론의 영역을 창출해 내야한다. 이것만
이 메르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 시민들의 낙후된 시민의식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딜레마를 깨는 데 열쇠를 쥔 유일한 집단이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지도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정치지도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의 삶은 이러한 추세에 완전히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통 큰 지도자(statesman)가 되지 못하고, 협량한 정치이익만 추구하는 정치가(politician)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문사회학자들은 여전히 피에르부르디외와 하버마스라는 유럽의 68년 5월혁명 세대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한국의 정신적 메르스 감염 실태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회가 메르스 사태를 포함한 현재의 정신적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아주 평범한 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기존의 경직된 이념적 패러다임을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공론의 장을 만들고 21세기형 시민교육을 담을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양식과 합리성과 배려의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시민들과 지식인들을 인내심 있게 길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양극화 시대의 이념갈등과 집단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공동선과 새로운 실천적 도덕을 스스로 학습하도록 도와야 한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의회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양식으로 계몽된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를 포퓰리즘으로부터 구하고,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만들기 위한 작업은 두 곳에서 동시에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인을 국회와 지자체 의회에 선별해 보내는 작업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민주화 시대의 경직된 이념 속에 오랫동안 갇혀있어서 황폐화된 인문사회학을 올바른 학문적 기준과 학문공동체를 확립해서 정신적 메르스 감염 상태로부터 구하는 백신을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신적 메르스 감염 극복을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여론을 공론(公論)과 구분하고, 정치와 사회문제의 복잡성을 국민에게 알리며, 문제에 관한 구체적이고 진실 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려 양식을 가진 시민들이 왜곡된 의사소통을 넘어 정론(正論)을 확립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이 글은 한반도선진화재단 'ISSUE & FOCUS'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