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다시 불 붙은 '화폐개혁' 갑론을박
[뉴스줌인] 다시 불 붙은 '화폐개혁' 갑론을박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5.10.16 18: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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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규모 맞지 않는 화폐단위…화폐개혁 해야 하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아

▲ 화폐개혁 논란의 씨앗이 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뉴시스

화폐개혁 가능성이 한차례 언급되자 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이 뜨겁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경제규모에 비해 화폐단위가 지나치게 크다며 '필요한 개혁'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는 반면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화폐개혁은 지난달 한국은행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화폐개혁 필요성이 거론되자 이주열 총재가 "필요성에 공감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부터 이슈로 떠올랐다.

이 총재의 발언이 논란 되자 한국은행은 급하게 해명자료를 내고 "화폐개혁 추진 의사를 표명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겉잡을 수 없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한 눈에 보기 힘든 재무제표
이제는 해야 할 때 vs 일시적 효과일 뿐

화폐의 통화 단위를 바꾸는 것을 '화폐단위 변경' 또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화폐개혁은 화폐단위를 낮추는 방향이다.

쉽게 말하자면 기업의 재무제표에는 숫자로 '1,000,000,000'를 쓰고 단위로 '천원'으로 표기해 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숫자 표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단위를 뒷단위를 정해 줄여쓰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이 보기에는 한 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뒷자리부터 '일, 십, 백, 천, 만...'과 같이 세는 사람들도 더러 존재한다.

이는 화폐 단위를 구분하는 ',(콤마)'가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단위를 맞추지 못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영어의 경우 콤마를 기준으로 hundred(백), thousand(천), million(백만), billion(십억), trillion(조)와 같이 바뀌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1,000,000,000'은 새로운 단위가 아닌 '10억'이 되는 것이다.

▲ 삼성전자의 재무제표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같은 문제들로 인해 단위축소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영(0)'이 줄어들면 인식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디플레이션과 소비·생산 부진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화폐단위 축소를 고려해 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1962년 화폐단위 변경 이후 지금까지 국민소득은 2000배, 물가는 50배 넘게 상승하는 등 경제규모가 커졌지만, 53년 전 단위를 사용하다 보니 거래단위가 너무 커서 불편도 적지 않다.

금융시장에서는 경(京)이라는 생소한 단위가 등장하고 레스토랑에서도 메뉴판에 '15,000원'이 아닌 '15.0'과 같이 표기하는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거래가 불편해 원화의 국제화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지만 OECD 회원국 34개국 중 34등으로 거의 유일하게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을 넘는다.

이와 함께 일부에서는 1만원 제품이 100원에 판매되면 소비자들은 심리적으로 싸게 느껴 소비가 늘고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으며, 화폐 교환을 위해 지하경제에 있던 돈들이 세상으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폐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폐단위의 축소는 말 그대로 '단위'가 바뀌는 것이지 '가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시 소비는 주춤할 것이고, 금고에는 다시 새로운 화폐가 채워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화폐개혁으로 인한 내수 활성화는 그야말로 '일시적인 효과가 일어날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화폐단위 축소에 수반되는 부작용으로 화폐단위가 낮아지면 수요가 늘어나 오히려 물가가 상승할 수 있고, 자동화폐교환기(ATM) 교체 등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화폐단위 축소나 변경이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뇌물 수수도 더 빈번히 일어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실제로 2003년 당시 한국은행은 박승 총재의 주도로 1000단위를 떼 선진국 화폐 단위 수준으로 조정하려는 화폐개혁이 추진됐지만 이같은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혼란 등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된 바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의 화폐단위가) 불편해서 바꾼다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화폐가 없는 상태도 아니고 굳이 비용을 들여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바꾸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며 "경제사정을 고려했을때 지금은 (화폐개혁을) 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세기 넘게 동일한 단위 유지
해외 사례 교훈 삼아야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1962년 이후 한 차례도 화폐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화폐는 1914년 화폐단위가 일본의 은행권 단위인 '원(圓)'으로 통일됐다.

원(圓)은 광복 이후까지도 정식 은행권 단위로 사용됐고, 1953년 2월14일 긴급국무회의를 열어 화폐단위를 100대 1로 절하하고 '환(環)'으로 표시된 은행권을 발행하는 '1차 통화조치'를 시행했다. 이것이 한국의 첫 화폐개혁이다.

이후 1962년 6월 10일 정부가 '2차 통화조치'를 단행하면서 지금의 화폐단위인 '원'이 사용됨과 동시에 10환은 1원으로 절하한 것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화폐개혁이다.

선진국의 경우 보통 자국 통화의 대외적 위상을 제고할 목적으로 화폐개혁을 실시한다. 외국 화폐(외환)로 표시되는 자국 화폐 단위가 낮아지므로 인해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화폐개혁으로 실패한 국가들도 존재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이 그랬다.

우리나라가 2차례의 화폐개혁만을 진행한 것과 달리 북한은 지난 2009년 11월 30일 제5차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바꾸는 내용으로 높은 물가를 잡고 이른바 '시장 세력'을 제거해 후계체제의 조기 안정화를 꾀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장 폐쇄, 외화사용 금지 등 뒤따른 조치에 유통이 경색되고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주요 도시까지 아사자가 속출하고 민심이 악화하자 북한은 개혁의 총책임자인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 재정부장을 총살하기도 했다.

베트남 또한 2차례의 화폐개혁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의 주 은행이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언제 자신들이 저축한 돈이 국유화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행 이용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 유로화 (출처=pixabay)

반면 성공한 사례도 있다. 유로화는 1999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화폐개혁이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 국가들은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자국 통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채택하는 화폐개혁 과정을 거쳤다.

화폐를 통합해서 회원국의 투자확대, 거래비용 감소 등으로 효율성이 증대되면서 지금 유로화는 달러화에 이어 국제거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결제통화가 됐다.

이러한 사례를 보듯 화폐개혁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문제점 또한 뚜렷하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미룰 수도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일회성'에 그칠 효과에 운운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으로 조심스럽고 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데일리팝=이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