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인터뷰] 피아니스트 조성진 "자연스러운 게 가장 개성 있는 것"
[POP인터뷰] 피아니스트 조성진 "자연스러운 게 가장 개성 있는 것"
  • 오정희
  • 승인 2020.04.20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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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돌아온 조성진(사진=유니버설뮤직)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돌아온 조성진(사진=유니버설뮤직)

2015년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로 돌아온다. 그동안 조성진은 주로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해왔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슈베르트부터 베르크, 리스트까지 여러 작곡가들의 노래를 들려준다.

코로나19로 대면이 아닌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데다, 40개 매체의 질문 중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추려서 받은 만큼 그의 생각을 외곡해 전달하지 않기 위해 일문일답 형식으로 공개한다.  

Q. 앨범 제목을 ‘방랑자’라고 지은 이유와 여러 음악가의 작품을 한 앨범에 담게 된 배경,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겪은 전반적인 과정이나 에피소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A.지금까지는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이렇게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했는데, 사실 레코딩 할 때는 한 작곡가만 레코딩하는 게 더 편한, 쉬운 점이 많아요. 그래도 한 번은 리사이틀 프로그램 같이 여러 작곡가들을 엮어 녹음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아티스트들은 콘셉트에 맞춰서 레파토리 프로그램을 짜는 걸 참 잘하거든요. 근데 저는 한 번도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앨범을 녹음할 때는) 고심 끝에 제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무조건 넣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다른 곡들을 정했어요.

Q.슈베르트, 베르크, 리스트까지 레파토리가 정교합니다. 모두 직접 선곡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같은 구성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나 이유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A.일단 세 곡은 공통점이 있는 게 소나타 형식의 곡인데 악장마다 연결이 되어있는, 악장마다 쉬지 않고, 그래서 한 악장 소나타처럼 들리는 그런 공통점이 있어요. 리스트 소나타도 마찬가지고, 베르크 소나타는 한 악장의 곡이긴 하지만 몇 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 곡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방랑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슈베르트 방랑자 2악장 때문인데, 그게 방랑자 가곡의 주제를 따와서 ‘방랑자’가 됐어요. 방랑이라는 게 낭만주의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던 거 같아요. 특히 슈베르트한테는. 물론 리스트도 낭만 시대의 작곡가였고 그 사람의 삶도 (물론 말년에는 한 곳에 머물렀지만) 여기저기서 살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예술가, 보통 피아니스트나 뮤지션이 방랑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점이 이 시대 뮤지션과도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해서 그렇게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작년 6월에 베를린에서 슈베르트와 베르크를 녹음을 했었고 작년 10월에 한국에서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을 했어요.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작년 6월에 베를린에서 슈베르트와 베르크를 녹음했었고, 작년 10월에 함부르크에서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을 했었어요. 리스트 소나타는 사실 30분짜리 곡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치는 게 너무 어려운 곡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녹음에 녹음했어요. (부분, 부분 나누지 않고 한 번에 하는 게) 그렇게 하는 게 더 흐름이 좋다고 생각을 해서, 그래서 최대한 라이브처럼 들리게 녹음을 하려고 했어요.

Q. 녹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곡, 그리고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요?

A. 저는 항상 녹음이 연주보다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기록으로 남는다는 거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요. (항상 잊어버리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리스트 소나타가 가장 어려웠던 곡이었던 거 같아요. 긴 곡이고, 스케일도 크고, 피아노 레파토리에서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이기 떄문에. 하지만 리스트 같은 경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쳤고, 처음 무대에 오른 게 2011년이었어요. 그때부터 (매년은 아니지만) 3년에 한 번씩은 무대에 올랐어요. 그럴 때마다 저의 해석이 바뀌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저의 음악적인 관점, 시각도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Q. 지난 쇼팽 녹음에선 수많은 테이크를 녹음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어진 것을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이번 녹음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한 번에? 아니면 계속해서 다시 했나요? 녹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6월 베를린에서 녹음을 했을 때 녹음을 다 마치고 관객을 20~30명 불러서 연주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쳤었거든요. (그게 방랑자 환상곡 뮤직비디오의 장면인데) 사실은 그 테이크를 썼어요. 녹음을 다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 들어보니까 관객들 앞에서 친 그 테이크가 가장 저한테는 괜찮게 들려서, 그 테이크를 베이스로 썼습니다.
베르크 소나타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테이크를 썼어요. 리스트 소나타는 그때는 관객이 없어서 프로듀서를 내려 오라고해서 2~3명을 내려오라고 해서 그 앞에서 연주를 했어요. 리스트도 이 테이크를 썼어요. 참고로 리스트는 이게 마지막 테이크는 아니지만요.

Q. 관객이 있을 때 더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오는 이유가 있을까요?
 

A. 레코딩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아티스트로 나뉘는 거 같아요. 정말 레코딩 아티스트요. 글렌 굴드 같은 아티스트. 아니면 제가 최근에 비킹구르 올라프손이라는 피아니스트의 바흐 앨범을 들었는데 정말 굉장한 앨범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레코딩 아티스트는 저와는 다르게 관객이 없어도 완벽한 음악, 앨범을 만들 수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말하면 관객이 있는 게 조금 더 편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음악을 더 잘 만들어주는 거 같고. 저는 콘서트 연주회 하듯이 하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 같아요.

Q. 전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방랑의 고독함인가요, 아니면 자유로움인가요? 슈베르트의 방랑과 조성진의 방랑을 비교한다면요? 성진씨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랑’의 개념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A. (웃음) 슈베르트와 저를 비교하기란 무리가 있을 거 같지만... 제가 파리로 유학을 2012년에 갔었는데요, 한국에서 살다가 파리로 갔을 때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구요. 방학이나 연주 때문에 한국을 가면 거기가 또 집 같고 다시 파리로 오면 거기가 또 집 같기도 하고. 어디가 진짜 집인지 잘 못 느꼈어요. 그런데 콩쿠르 하고, 베를린으로 이사 오고, 생각해보니까 제가 베를린에 1년에 넉 달 정도 있더라구요. 그렇게 많이 있는 건 아니라서 항상 돌아다니는 게 제 직업이니까, 연주를 하는 게. 하지만 베를린에 돌아오면 집인 것 같기도 하고 호텔에 오면 또 편해서 집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가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원래 외동 아들이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혼자 있는 걸) 힘들거나 외롭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많이 만나니까 연주를 하러 다니면 (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른 뮤지션) 그래서 저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사진=Christoph Köstlin, DG)

Q. ‘방랑자 환상곡’은 슈베르트 자신도 “너무 어려워 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테크닉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익히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요? 이 곡을 조성진만의 연주로 표현하기 위해 감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어떤 점에 주안을 뒀는지 궁금합니다.


A. 이 곡의 가장 어려운 점은 테크닉이 어렵지만... 테크닉이 어려운 걸 감추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이 곡이 어렵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이 곡이 아름답구나, 드라마틱하구나, 서정적이구나 이렇게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연주한 슈베르트 곡 중에서는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곡이라는 점은 사실이기도 하고요. 근데 그런 어려움을 표 안내면서 음악이 먼저 들리게 하려면 일단 테크닉적으로 우선 편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제가 2018년 말부터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편해지는 게 있더라구요. 그리고 이 곡은 또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곡인데, 악장마다 캐릭터도 다르고. 그런 것도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Q. 성진씨께서 앞서 인터뷰에서 “본 곡의 기술적인 어려움보다 그가 곡에 담아낸 상상력과 구조성, 진보성에 초점을 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환상곡의 구조성과 진보성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A. 보통 소나타 같은 경우는 1악장과 2악장 간에 쉬잖아요? 그런데 악장 간의 쉼 없이 한 악장처럼 만들었다는 그 진보적인 마인드. 그리고 저는 그게 또 하나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리스트가 자신의 소나타도 그렇게 작곡을 했다고 생각해요(악장 간 쉼 없이). 방랑자 환상곡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믿고 있고 리스트가 실제로 방랑자 환상곡 작품을 좋아해서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만들기도 했죠. 리스트가 방랑자 환상곡을 좋아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슈베르트 시대에는 흔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점이라는 거. 이게 1882년도에 작곡이 됐는데 그 당시에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던 거 같아요. 베토벤도 물론 아이디어도 많고 진보적인 작곡가였고 슈베르트는 그런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둘이 통하는 무언가도 있었던 거 같아요.

Q. ‘방랑자 환상곡’은 옛 대가들의 명반이 많습니다. 이 명반들의 숲에 자신의 것을 내놓으면서 조성진의 유니크함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이 있나요?


A. (웃음) 저는 이런 거는 평상시에는 생각을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해질까 라는 생각을 하면 더 부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아요. 억지스럽고.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제가 생각한대로 치고 이런 게 오히려 제일 개성 있는 연주가 되지 않을까? 사람 목소리가 다 다르듯이 치는 것도 다 다르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다르게 칠까 이런 생각 말고 그냥 자연스러운 게 가장 개성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Q. 현재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생활하는 도시의 분위기나 기운이 본인의 연주나 라이프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A. 베를린은 굉장히 기회가 많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아티스트가 자신의 예술적인 것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고. 외국인도 많고. 다른 독일 도시와 다르게 활기찬 느낌도 있고. 제 음악적인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여기 오면 편한 느낌은 있어요.

Q. ‘생각을 많이 하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무조건적인 연습 대신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둘의 차이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만, 그래도 어떨 때 생각을 하고 어떨 때는 머리를 쉬게 하는지 직접 짚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결정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요?


A.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죠. 제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거 같아요. 그게 좋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특히 무슨 결정 같은 거 할 때. 사람은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잖아요.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는 너무 많이 생각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이 헷갈릴 때가 있고 의구심이 들 때가 있고 그런 거 같아요. 항상 제일 중요한 결정일 때 더 머리를 비우는 게 좋은 거 같고. 음악을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는 생각해요. 조금 위험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해보는 게 좋은 거 같죠. 하지만 무대에 올라갈 때는 생각을 많이 비워요.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음악이 주저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감 있게 하려면 생각과 마음을 많이 비우고 자신과 얘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콩쿠르 우승하고 선택을 많이 했는데요. 음반회사, 매니지먼트, 어떤 연주를 해야 하나, 어느 정도(몇 번) 연주를 해야 하나, 어디 가서 살아야 하나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Q. 쇼팽 콩쿠르 관련 질문이 이제 지겨우실 것 같기도 한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어느정도 기여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클래식이 대중화가 되면 본질이 흐려진다. 대중이 클래식화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성진씨가 바라보는 ‘대중의 클래식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A.클래식 음악, 고전 음악을 팝이나 K-팝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것이 어렵다는 건 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클래식 음악가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연주회를 찾아주고 음반을 들어주고, 음악을 더 알게 되면 저는 그거만큼 더 기쁜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물론 클래식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익숙한 곡들로 먼저 시작하는 게 정말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는데 쇼팽, 녹턴 이런 것들로 시작을 하면 정말 좋지만 클래식 음악은 굉장히 방대한 게 또 매력이거든요.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그런 것들을 다 들어보고 취향대로 사람들이 음반도 사고 연주회를 가고 그런 게 대중이 클래식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크로스오버 하시는 분들 존중하고 (그게 안 좋다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말러, 스트라빈스키, 모차르트, 베토벤, 스트링 콰르텟 이런 거에 대해서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의견을 나누고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의미였어요.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사진=Christoph Köstlin, DG)

 

Q.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성장했나요? 피아니스트로서도 궁금하고 청년 조성진의 변화도 궁금합니다.
 

A. 일단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 것 같아요. 2015년을 생각을 해보면, 2010년에서 2015년은 그렇게 빨리 간 것 같지 않은데 2015년에서 2020년은 빠르게 지난 것 같아요. 저도 벌써 한국 나이로는 27살이고… 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받침에 ‘ㅂ’이 들어가면 20대 후반이라고. 여덟, 아홉… 그래서 책임감도 더 느껴요. 어떤 작곡가는 25살에 그런 작품을 썼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브람스 20대 초반에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변화라고 하면 이 생활에 조금 더 적응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고요. 연주하러 다니고 이런 생활이요. 성장을 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어요.

Q. 코로나19로 세계 공연가가 얼어붙었지만 라이브 스트리밍 등 온라인 콘서트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3월 28일 세계 피아노의 날을 맞아 성진씨도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을 연주하셨죠. 이는 성진씨에게도 꽤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날의 소감과 함께 이처럼 힘든 시기에 음악의 역할(사명, 의미)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 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A. 마티아스 괴르네가 이런(슈베르트 가곡 라이브) 아이디어를 줬었어요. 저도 5년만에 처음 이렇게 오래 쉬고 있어요. 마티아스 괴르네는 커리어가 30년이 넘었는데 30년만에 처음이래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 상황이 어색하겠어요. 그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음악가들 중에 워커홀릭이 많거든요. 저도 약간 마찬가지고.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할 지는 모르니까. 마침 베를린에 살아서 좋은 기회가 왔죠. 저도 관객 없이 이렇게 라이브 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콘서트하는 거처럼 에너지를 느꼈어요. 도이치 그라모폰 세계 피아노의 날 라이브 스트리밍에도 참여했는데, 이것도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걸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어요. 피아노를 조율한 지 오래돼서 피아노 소리가 조금 아쉬웠어요.

저도 다른 때보다 요즘에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된 거 같아요. 영화도 많이 보고. 사실 집에 하루 종일 계시니까 그런 게 사람들의 여가생활이 될 수 있는 거죠. 또 느낀 게 음악은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구나 느꼈어요. 꼭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이럴 때 음악을 많이 듣잖아요.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이 꼭 필요하죠. 마찬가지로 영화에도 음악이 없으면 조금 이상할 거 같기도 하고. 물론 BGM이 없는 영화도 있지만 대다수의 영화나 프로그램은 다 음악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 사태 때문에 음악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일상 생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느꼈죠. 레스토랑 가서 평범하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했는 지 많이 느꼈어요.

Q. 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요?


A.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웃음). 그냥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피아노 음악 오랜만에 많이 듣고 있고. 특정 곡을 많이 듣고 있지는 않고 연주자 위주로 듣고 있어요. 에밀 길렐스도 있고, 브론프만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작년말에 처음 만나서 그 사람 앞에서 피아노도 치고 그랬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예요. 연주자이자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됐죠. 그래서 그 분 연주도 많이 듣고 있어요. 그 분 라이브를 작년 말에 처음 들었거든요. 뉴욕필과 베토벤 4번을 했는데 그때 너무 좋아서요.

Q.아울러 쇼팽 콩쿠르가 9월로 연기됐습니다. 콩쿠르에 출전한 이들은 6개월 정도 더 긴장감 속에서 지내며 스스로를 단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배이자 우승자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A. 제가 참가했을 때 바르샤바의 10월은 정말 추웠는데, 점점 더 추워지니까 따뜻하게 입고가는 걸 추천 드려요. 그리고 저 때는 모든 참가자가 같은 호텔에 있었어요. 거기 쇼팽 콩쿠르 보러오는 관광객이 많아요. 일본인이 많고 프랑스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 호텔수용 인원이 2000~3000명 정도예요. 그래서 아침 먹기가 힘들어요. 왜냐면 다들 사진 찍어 달라고 하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참가자들 한테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2, 3차 때는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게 좋을 거예요. 시간 절약을 위해서요. (웃음)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사진=Christoph Köstlin, DG)

Q. 예술가로서 반드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그리고 그 이유는요?
 

A. 어려운 질문이에요. 저는 사실 특별한 취미가 없어요. 왜냐면 시간이 없어요. 여행하다보면 특정한 취미를 갖기가 힘들어서요. 제 주변 친구들이나 제가 본 아티스트들도 취미가 와인 마시는 거, 와인 컬렉팅, 맛있는 거 먹는 정도예요. 저도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시간 이런 것들을 포기 못하는 거 같아요. 음악을 하려면 음악과의 거리감이 필요해요. 그래야 프레시(fresh)한 느낌이 드니까요.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되겠네요.

Q. 보통 자신이 녹음한 음반(앨범)을 실물로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A.앨범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건 지인들을 나눠주는 거예요. 사실 집에 많이 (10장 넘게) 있는데 다 포장지가 안 뜯어져 있어요(웃음). 선물하기 좋아요.

Q.앞선 인터뷰에서 언젠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조성진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A.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연주를 하면 행복하고. 앞서 말했듯이 휴식 시간도 행복해요. 사람들 편하게 얘기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 행복해요. 여행 다니는 것도 재밌고 새로운 거 보고 경험하고 다 행복해요. (지금은 다 못하고 있는데 괜찮은가요?) 사실 안 괜찮아요(웃음).

Q. 하루 피아노 연습시간 5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습관은 여전한지요.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을 때 여가 시간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그리고 손과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는 지 궁금합니다.
 

A. 피아노는 5시간을 하면 정말 녹초가 돼요. 손, 어깨에도 안 좋은 거 같고. 꾸준히 4시간은 하려고 해요. 할 곡이 많으면 넘어갈 때도 있지만 최대한 4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하려고 하고. 그리고 원래는 추울 때 장갑 끼는 버릇이 없었는데, 이제는 장갑을 끼려고 해요. 그리고 스트레칭 정도요. 건강은… 원래도 많이 자는 편이어서 잠을 많이 자면서 건강을 챙기는 거 같아요(웃음).

Q. 작년엔 깜짝 지휘 데뷔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요.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아티스트로서의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는 지 듣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앨범에서 레코딩 하고싶은 음악가가 있는지, 공연을 예정하고 있는 지 등 편하게 답변 부탁드립니다.
 

A. 다음 앨범은 쇼팽이 될 거 같고, 지휘는 한 번 해보았지만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깊이 아직까지는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유럽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만약 성사된다면 2~3년 안에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지휘자로서는 아직 자신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레파토리(피아노 콘체르토)는 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을 거 같아요.
공연은 계속 해야죠. 저는 이 커리어를 유지하는 게 큰 도전일 거 같아요. 좋은 오케스트라, 뮤지션과 함께 해봤으니까 앞으로도 오케스트라, 홀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재초청을 받고 이런 게 도전이라고 볼 수 있겠죠.

Q. 먼 미래의 조성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요? (40대, 50대 등 아주 먼 미래요)
 

A. 일단 살아있었으면 좋겠고(웃음) 건강하게. 그리고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뜻대로 안되는 게 많은 거 같아요. 미쉘 베로프 같은 경우도 부상을 당하면서 연주를 쉰 적이 있었는데… 운도 필요하고 좋게 되기를 바라면서 노력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언제나 성진씨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항상 많은 관심을 보여줘서 감사드려요. 7월 한국 공연이 성사되길 바랍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데일리팝=오정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