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변호사 이야기] 드라마 ‘우영우’ 속 장애인준강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
[알쓸신잡 변호사 이야기] 드라마 ‘우영우’ 속 장애인준강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
  • 이영순
  • 승인 2022.08.0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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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온강 법률사무소 이고은 변호사
사진=법률사무소 온강 이고은 변호사

 

“장애인한테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는 있지 않습니까?”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는 지적 장애를 가진 피해자와 성관계한 혐의로 장애인준간음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특히 10화 속 법무법인 한바다 변호사들의 변론과 극 중 검사의 변론 내용이 서로 대치되는데, 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극 중 피고인의 ‘나는 피해자와 진실한 사랑을 나눈 것이다’라는 주장을 두고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가 만연한 현실을 무시한 채 세상을 ‘핑크빛’으로만 본다는 지적을 하는 한편, 장애인의 주체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극 중 피고인과 지적 장애를 가진 피해자의 사랑을 옹호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각자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양측 모두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은 매 한가지일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랑을 어느 범위까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법적 경계선’을 설정해야 하는지, 우리 형사법이 사인(私人)간의 관계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가 중요 쟁점으로 떠오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지능’을 가진 장애 여성 혜영이 등장한다. 혜영은 장애인 준강간죄로 기소된 남성 피고인과 ‘혜모바’(신혜영밖에 모르는 바보), ‘양모바’(양정일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애정행각을 하고, 성관계까지 맺게 된다. 혜영은 극 중에서 이러한 피고인과의 행동이 ‘사랑’에 의한 주체적인 결정이라고 말한다. 검사 측과 혜영의 어머니는 혜영이 피고인으로부터 물질적으로나 성적으로 이용당한 것이라 주장하며, 혜영은 사랑과 성관계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만한 지능 수준이 아님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검사와 어머니의 주장이 단지 혜영의 로맨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주장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 장애인 대상 성범죄 검거 건수는 2021년 한 해 동안 149건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번 10회에서 그려진 것과 같은 장애인 관련 성범죄 사건을 마냥 로맨스로만 취급하기 어렵다.

그런데 드라마 속 핵심은, “성관계와 성폭행의 차이를 알고 있습니까?”라는 검사의 질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결정이었음을 주장했던 혜영은, 위와 같은 검사의 질문에는 성관계와 성폭행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이번 화에서 그려진 ‘장애인준강간죄’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면, 위 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에 따라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정도의 중범죄에 해당한다. 피해자의 심신상실과 항거불능 상태를 악용하여 성관계를 맺은 범죄이기에 그만큼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여 엄중히 처벌하고 있는 것인데, 이때 모호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심신상실과 항거불능 상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법원에서 장애인 준강간죄를 인정하는 기준은 결국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결정할 수 있는 지적 상태였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때 피해자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지 그 유무를 판단할 때는, 장애인이 성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지를 가장 주요하게 살펴본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경미한 지적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준강간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더라도 정신장애로 인해 항거불능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장애의 정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성, 행위의 내용 및 방법, 주변의 상황, 피해자의 인식 및 반응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고 판시하고 있다.  참고로 법원은 피고인이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고, 지적 능력이 4~8세 수준에 불과한 장애 여성을 간음한 사건에서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한 판례도 있다.

장애인한테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는 있지 않습니까?”라면 앞선 질문에 ‘예’ 혹은 ‘아니오’의 편향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판례에서의 기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해나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도움말 : 법률사무소 온강 이고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