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체험기] 강아지와 10일간 제주행..휴가? NO, ‘워케이션’ 다녀왔습니다
[솔직체험기] 강아지와 10일간 제주행..휴가? NO, ‘워케이션’ 다녀왔습니다
  • 김다솜
  • 승인 2022.11.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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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발을 들인 이후로는 쉴 틈 없이 지냈다. 혼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해야 하는 1인가구이다 보니 쉴래야 쉴 수가 없었다. 일을 그만두면 당장의 생활에 타격이 오게 될 테니 말이다. 

모든 직장인이 그러하듯이 필자 역시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늘 간절했다. 그러다 문득 ‘아 맞다, 나 지금 재택근무 중이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회사에 동의를 구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로 향했다. 필자의 고향은 우리나라의 대표 관광지, 제주도다.

한때는 고향이 제주도인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것이 억울했는데, 이제는 되려 ‘고향이 제주도인 덕분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 중이 아니었다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감사함이었다. 

산책 중 본 풍경
점심시간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지고 바닷가 산책에 나서기도 했다.

반려견의 짐에 노트북까지, 챙겨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본가에 도착하기까지 여간 고생스러운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열흘 간의 워케이션을 즐기는 동안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워케이션(workcation)은 일을 뜻하는 워크(work)와 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일과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근무 형태를 의미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가 보편화 되면서 워케이션 역시 주목받고 있다. 

열흘 간 제주도에 있으면서 매일 업무 시작 전과 후에 강아지와 함께 동네를 산책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일만 하다 갈 수는 없다는 몸부림이었다. 바닷가에 한참을 앉아 있다 오기도 하고 작은 상점들이 모인 도로변을 유유자적 걷기도 했다. 이곳이 고향이긴 하지만 서울살이를 한 것도 10년이 넘은 터라, 그렇게 여유롭게 걸어본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본가는 제주도에서도 한적한 시골 동네에 있어 서울에서 당연하게 들었던 차 소리, 사람들의 말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강아지와 단둘이라는 점은 변함 없지만 주변의 환경이 조용해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듯했다. 

아침 산책 중
아침 산책 중. 산책로가 바뀐 강아지는 열흘 내내 어리둥절해 했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잠 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다. 쓸데없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죽이는 일도 이 기간에는 거의 없었다. 

컨디션이 좋으니 업무를 처리할 때 받는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밖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크다 보니 능률이 올라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건강한 집밥도 몸 컨디션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1인가구가 된 이후 이렇게 오래 집밥을 먹은 건 처음이라 더 느낌이 남다르기도 했다. 

다만 예정된 날짜가 다가올수록 서울 가는 일정을 앞당길까? 하는 고민도 여러 번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조그만한 노트북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영 답답하다는 점이었다. 여러 개의 창을 띄우고 업무를 처리할 때면 서울 자취방에 있는 32인치 모니터가 간절해졌다. 

주말을 이용해 오름에도 다녀왔다.

생각보다 이동 및 업무 환경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아무래도 낮에는 업무를 해야 하다 보니 기껏 멀리까지 와서 동틀 무렵과 해지고 난 이후, 주말에만 제주도를 누릴 수 있다는 건 되려 아쉽게 느껴졌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일을 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관광지 카페에서 몇 시간 죽치고 앉아있긴 눈치가 보일 듯해 포기했다.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즐긴다는 워케이션의 의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심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그리고 이를 통해 10년차 직장인의 마음이 치유되는 열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