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줌인] 재벌 총수일가, '미등기임원'으로 그림자 경영...상장사 30% 육박
[재계줌인] 재벌 총수일가, '미등기임원'으로 그림자 경영...상장사 30% 육박
  • 윤지현
  • 승인 2025.11.26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한은 행사, 책임은 회피하는 편법 구조 심화 사익편취 규제대상사 54% 집중

대기업 총수일가가 등기부등본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상장사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개정 상법의 이사 책임 강화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77개 기업집단 소속 2,844개 회사 중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회사는 198개사(7.0%)로, 전년(5.9%) 대비 1.1%포인트 증가했다.

더 심각한 것은 상장사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상장사 비율은 29.4%로, 전년(23.1%) 대비 무려 6.3%포인트나 급증했다. 상장사 10곳 중 3곳에서 총수일가가 법적 책임이 없는 미등기임원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분석 대상 기업집단에서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직위는 총 259개에 달했다. 이들은 1인당 평균 1.6개의 미등기임원 직위를 겸직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미등기임원 겸직 수가 많은 곳은 중흥건설(1인당 7.3개)로 나타났으며, 특히 총수 본인의 미등기임원 겸직은 더욱 두드러졌다. 총수들은 평균 2.6개의 미등기임원 직위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중흥건설(10개), 유진(6개), 한진·하이트진로(각 5개)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자료=공정위
자료=공정위

'사익편취 사각지대' 집중 활용 의혹

더 큰 문제는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곳이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 감시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회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259개 직위 중 141개(54.4%)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 소속이었다. 사익편취 규제대상은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회사와 해당 회사가 지분 50%를 초과 보유한 자회사를 말한다.

이는 총수일가가 자신의 영향력이 큰 회사에서는 법적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 대신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서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비율은 12.0%로, 비규제대상 회사(4.7%)의 2배가 넘었다.

"권한과 책임의 괴리" 지적

공정위는 이번 분석에서 "미등기임원은 경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등기임원과 달리 상법 등에 따른 법적 책임과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의 괴리가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7월 22일 개정·시행된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이 강화됐다. 이사가 직무 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공정위는 "미등기임원인 총수일가가 늘어난다면 개정 법의 실효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총수일가가 감시의 사각지대를 이용하여 권한을 남용하는지 면밀히 감시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등기이사 증가는 '긍정' 평가

한편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하는 비율은 5년 연속 증가 추세다. 전체 등기이사 중 총수일가 비율은 2021년 5.6%에서 2025년 7.0%로 늘었다.

등기이사는 상법에 따라 책임과 의무가 명확히 부여되므로, 이사로서 경영에 참여한다면 권한과 책임이 일치해 책임경영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부영·영원·농심 등의 집단에서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업집단의 총수일가 등기이사 비율은 40%를 넘었다.

사외이사 견제 기능은 여전히 미흡

이번 분석에서는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도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사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의 99% 이상이 원안 가결됐으며,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 비율은 0.38%로 최근 5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가 적을수록 이사회 원안 가결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외이사 비율이 25% 이하인 상장사(56개사)는 모두 원안 가결(100%)된 반면, 사외이사 비율이 75%를 초과한 상장사(2개사)는 원안 가결 비율이 95.51%로 4.49%포인트 낮았다.

또한 총수일가가 이사의 20%를 초과하여 등재된 회사(50개사)는 모두 원안 가결(100%)된 반면, 총수일가가 10% 이하로 등재된 회사(227개사)는 99.48%만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지속적으로 분석·공개하여 시장의 자율적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대기업집단의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등기임원이란?

미등기임원은 법인 등기부등본에 등록되지 않고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임원을 말한다. 명예회장, (부)회장, (부)사장, (부)대표, 전무, 상무, 이사 등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하여 업무를 집행하는 자를 포함한다.

등기이사는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선임되고 상법상 책임과 의무가 명확하지만, 미등기임원은 이러한 법적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때문에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회피하는' 편법 경영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