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경제 형벌 풀면서 노동 규제는 옥죄기…정책 엇박자”
노란봉투법·중대재해 등 산적한 뇌관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시계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정부가 ‘일터 민주주의’와 ‘실노동시간 단축’을 기치로 내걸고 대대적인 근로 문화 수술에 착수한 반면, 경영계는 동시다발적인 규제 강화에 경영 불확실성을 호소하며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이다.
고용노동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올해 노동 정책 핵심은 ‘시간 빈곤’ 탈출과 ‘안전’으로 요약된다. 지난달 말 노사정이 합의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은 그 신호탄이다.
현재 연간 1800시간대인 한국의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700시간대로 줄이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오랜 기간 관행처럼 굳어진 ‘포괄임금제’에 메스를 댄다. 사무직 등 근로시간 산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실제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정해진 수당만 지급하던 방식이 ‘공짜 야간’의 주범으로 지목돼서다. 노동부는 올 상반기 중 근로기준법령을 개정, 근로자에게 명백히 불리하거나 동의가 없는 포괄임금 약정을 원천 차단하고 근로시간 기록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여기에 직장인들의 숙원으로 꼽혀왔떤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법제화된다. 퇴근 후 업무 관련 연락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실근로시간단축지원법’이 제정될 예정이다. 처벌 조항은 없으나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기업 문화에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노동이 존중받을 때 경제가 단단해진다”며 주 4.5일제 확산 지원과 함께 산업안전 감독 대상을 기존 2만4000곳에서 5만 곳으로 2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천명했다.
“경제 살린다더니 노동은 규제 일변도”
경영계의 표정은 사뭇 어둡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배임 등 경제 형벌을 완화하는 ‘친기업’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유독 노동 분야에서는 규제의 고삐를 죄고 있다는 이중 신호에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오는 3월 시행을 앞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은 재계가 꼽는 최대 리스크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대하고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산업 현장의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경총 조사에서는 회원사의 70% 이상이 올해 노사관계가 작년보다 불안해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생산성 향상’ 없는 단축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주요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 물리적인 근무 시간만 줄일 경우 기업은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되고 근로자는 줄어든 수당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마이너스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법정 노동시간 단축이나 연장근로 상한 같은 ‘진짜 뇌관’은 뒤로 미뤄졌다는 점을 들어 향후 구체적인 입법 과정에서 노사간 충돌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