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70만닉스 시대, SK하이닉스 '슈퍼 모멘텀'이 설명하는 한국 반도체의 미래
코스피 70만닉스 시대, SK하이닉스 '슈퍼 모멘텀'이 설명하는 한국 반도체의 미래
  • 윤지현
  • 승인 2026.01.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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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2등이 AI 시대 게임체인저가 되기까지 20년의 기록

2025년 1월, SK하이닉스 주가는 70만원을 돌파하며 시가총액 500조원을 넘어섰다.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매출 3위, 연간 영업이익 예상치 44조원에 달하는 회사가 됐다.

한국 증시를 뜨겁게 달군 '70만닉스' 열풍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1월 26일 출간된 '슈퍼 모멘텀: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플랫폼9와3/4)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20년 기술 개발의 여정으로 풀어낸다.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 최태원 회장의 전략

책의 핵심은 HBM(고대역폭 메모리) 개발 스토리다. AI 시스템의 데이터 병목을 해소하는 유일한 솔루션으로,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HBM 스토리의 핵심은 AI"라며 "우리는 길목에 서 있었다"고 설명한다.

2012년 SK의 하이닉스 인수 직후, 첫 번째 전략 목표는 'TSV(수직관통전극) 1등 개발'이었다. 당시만 해도 AI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지만, 메모리 미세화 기술의 한계를 내다보고 수직 적층 기술에 투자했다. 이 TSV가 훗날 HBM의 핵심 기술이 됐다.

10년간 수익 없어도 멈추지 않은 기술 투자

더 놀라운 것은 투자의 지속성이다. HBM은 개발 후 10년 가까이 돈을 벌지 못했다. 2019년 반도체 다운턴으로 현금흐름이 급감했을 때도, 2023년 -7조 7000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을 때도 HBM 투자는 계속됐다.

2011년부터 2022년까지 HBM 누적 개발비는 8600억원, 장비 및 시설 투자비는 1조 5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2018년 HBM2 실패 직후 5000억원을 투입해 만든 통합 후공정 생산팹 'P&T4'는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HBM 수요 폭발에 대응할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이 됐다.

책은 이런 역발상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이 '엔지니어 CEO' 중심의 기술 리더십이라고 분석한다. 수익보다 기술 흐름과 잠재력을 기준으로 삼았고, 엔지니어 CEO 밑에서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기술 중심 문화가 자리 잡았다.

언더독 DNA가 만든 '원팀' 문화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설명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독함 DNA'다. 회사 간판이 3번 바뀌고, 채권단 관리 체제를 거치며 생존을 위해 싸워온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직문화다.

실패한 사람을 탓하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누구나 손을 보태는 '원팀 스피릿', 리더십 사이 경계를 없애 빠르게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톱 팀' 문화가 그것이다.

실제로 2016년 'HBM2 실패' 이후 구성된 '별동대 TF'는 아키텍처 설계부터 소자, 공정, 패키징까지 전면 수정에 나섰다. 사내에서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기술을 쏟아부으며 만든 'HBM2 젠2'가 이후 모든 HBM의 뼈대가 됐다.

엔비디아·TSMC와의 '삼각동맹'

책은 6세대 HBM4부터 본격화된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의 '삼각동맹'도 주목한다. 이 생태계 연합을 제안하고 조율한 것도 최태원 회장이다.

2021년 엔비디아 본사에서 젠슨 황 CEO를 처음 만나 AI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가진 후, 2024년 4월 젠슨 황, 6월 TSMC 웨이저자 회장과 연이어 만나며 "세 회사가 협력해 AI 병목을 해결하자"는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공급 관계를 넘어 초기 설계부터 3사 '원팀' 체제로 작동하는 전략적 동맹이다. 책은 이런 '판을 짜는 리더십'이 SK하이닉스를 'One of Them(범용 메모리 제조사 중 하나)'에서 'One and Only(AI 인프라의 유일한 솔루션)'로 전환시켰다고 분석한다.

2030년 시총 700조, 그 이후는?

최태원 회장은 2025년 8월 저자들과의 육성 인터뷰에서 2030년 SK하이닉스 시총 목표를 700조원으로 제시했다. 불과 5개월 만에 500조원을 돌파하며 그 목표에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금까지 AI 반도체가 만든 임팩트는 서곡에 불과하다"며 시총 1000조, 2000조원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린다. 반도체 산업의 동력은 이런 열망과 포부, 더 큰 꿈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책은 SK하이닉스가 HBM을 넘어 'AI 풀스택'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2025년 AWS와 울산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오픈AI와 서남권 AI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은 그 시작이다. 메모리를 레버리지로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프라를 아우르는 AI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한국 경제에 SK하이닉스가 없었다면

저자들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출발점은 "한국 경제에 SK하이닉스가 없었다면"이라는 질문이었다.

HBM은 이제 국가 전략 자산이 됐다. 전 세계 AI 인프라 설계에서 발언권을 부여하는 대외 협상력의 레버리지 역할을 한다. 코스피 5000 시대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책은 최태원·곽노정 CEO를 비롯한 경영진과 전·현직 엔지니어들의 실명 인터뷰를 바탕으로, TSV 개발 시작부터 HBM4까지 20여 년의 기술 개발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2008년 AMD와의 '언더독 동맹', 사내에서 'HBM0'라고 부르는 최초 시제품, 패키징 소재만 50번 바꾼 'MR-MUF' 개발 과정 등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반도체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는 추천사에서 "HBM을 넘어, 새로운 AI 엔진을 향한 도전의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AI 패권 경쟁의 시작점에서 만년 2등이었던 기업이 어떻게 게임체인저가 됐는지, 그 피·땀·칩의 기록이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가늠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를 담은 도서 ‘슈퍼 모멘텀’이 출간됐다.
‘SK하이닉스의 언더독 스토리’를 담은 도서 ‘슈퍼 모멘텀’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