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교제폭력과 스토킹,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야 하는 나라
[뉴스줌인] 교제폭력과 스토킹,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야 하는 나라
  • 김자영
  • 승인 2026.03.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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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181명이었다.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374명, 자녀·부모·친구 등 주변인 피해를 더하면 총 650명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최근 발표한 '2025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도 같은 관계에서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7명에 달했으며,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252명이었다. 

2009년부터 2025년까지 17년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는 누적 최소 1697명이다. 살인미수를 포함하면 4002명, 주변인 피해까지 합산하면 5096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집계한 최솟값이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크다.

매년 늘어나는 피해 사례

2024년 한국여성의전화 전국 상담 건수는 총 5만5534건으로 전년보다 15.5% 증가했다. 초기상담 7532건 중 여성폭력 피해 사례는 6863건으로 91.1%를 차지했다.

특히 전·현 배우자, 전·현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이 전체 상담의 52.8%를 차지했다. 반면 모르는 사람과 단순 대면인에 의한 피해는 합산해도 4.5%에 불과했다. 여성폭력은 낯선 공간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한다.

또 성평등가족부가 2025년 12월 발표한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평생 친밀한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19.4%였다. 전체 여성폭력 피해 경험률 36.1% 중 절반 이상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셈이다. 

다양한 폭력을 동시에 겪는 피해자들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피해 유형이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피해 유형별로 분석하면 신체적 폭력 74.7%, 정서적 폭력 63.3%, 경제적 폭력 17.3%, 성적 폭력 11.4% 순으로 나타났다. 비율의 합이 100%를 넘는 것은 대부분의 피해자가 여러 유형의 폭력을 동시에 겪기 때문이다.

신체적 폭력의 양상은 손발로 구타가 47.9%로 가장 많았고, 당기거나 밀침(26.0%), 물건 던짐(23.3%), 목 조름(10.8%), 흉기로 위협(9.1%)이 뒤를 이었다.정서적 폭력 중에는 폭언·멸시·욕설이 69.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위협(28.9%), 협박(28.2%), 공포감 조성(26.2%) 순이었다.

이런 가운데 경제적 폭력으로 생활비를 내지 않거나 통제하는 행위가 56.6%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가 "왜 떠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다수의 대답을 차지했다.

스토킹 입건, 3년 연속 증가

2024년 스토킹 범죄 입건 건수는 1만3533건으로 전년 대비 12.3% 증가했으며, 3년 연속 증가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입건된 스토킹 범죄의 54.2%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했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됐지만, 법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7%대였던 구속률은 2023년 3%대로 오히려 떨어졌다. 신고 건수는 늘었지만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격리하는 비율은 도리어 낮아진 것이다.

신고해도 또 당하는 구조

교제폭력 신고는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교제폭력 112 신고 건수는 8만8394건으로 2020년 대비 79.57% 증가했다. 그러나 신고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지에는 의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친밀한 파트너 폭력에서 1차 신고 이후 2차 범행이 발생한 경우는 52.3%에 달했다.

보호 조치가 있었어도 피해자가 살해된 사례는 반복된다. 2023년 분석에서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한 피해자 568명 중 96명(16.9%)은 이미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 보호 조치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 신변보호 전담 인력은 2024년에도 전년과 동일한 259명에 머물렀다. 전국 5만5000건 이상의 상담과 8만8000건을 웃도는 교제폭력 신고를 259명이 감당하는 구조다.

일터까지 따라오는 폭력

한국여성의전화의 2025년 노동절 보고서에 따르면 '일'과 연관된 여성폭력 피해에서 전·현 배우자, 전·현 애인 등 친밀한 관계 파트너와 가족, 직장 관계자, 지인에 의한 피해가 전체 사례의 93.5%를 차지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직장으로 협박 연락을 보내거나, 일터에 직접 찾아오거나, 방화를 저지르는 사건도 포착됐다. 2025년 4월에는 이혼한 아내의 일터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보도됐다. 같은 해 9월에는 한국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연인을 일본 도쿄까지 추적해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경을 넘는 스토킹이었다.

법의 공백, 피해자에게 전가되는 부담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혼인·혈연·입양 중심의 관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데이트 관계와 교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법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단이 없고, 피해자가 이사를 가도 가해자가 찾아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피해자에게 맡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피해자가 피하는 구조가 아니라 가해자를 격리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을 더 이상 사적 갈등이나 개별 사건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이는 국가가 개입하고 책임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자 여성의 생명권과 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구조적 문제"라고 밝혔다.

상담 건수는 매년 15% 이상 늘고, 교제폭력 신고는 5년 새 80% 가까이 급증했다. 그 사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인력과 제도는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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