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이라크 땅속에서 이상한 항아리 하나가 발굴됐다. 높이 14cm, 성인 손으로 쥘 수 있는 크기였는데 안에 철심과 구리 원통이 들어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처음엔 용도를 몰랐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구조가 배터리와 똑같았다. 양극·음극·전해질, 배터리의 3가지 구성 요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유물은 이후 '바그다드 전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추정 용도는 도금 작업이었다.
배터리는 이렇게 전기를 '담아두는 그릇'으로 시작됐다.
1800년 볼타전지, 1859년 자동차 시동에 쓰이는 납축전지, 1955년 우리가 리모컨에 넣는 알카라인 배터리. 200년 넘게 배터리의 역할은 '전기를 모았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것' 하나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배터리 고유의 역할 뿐만 아니라 잘 관리하는 능력도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오는 3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6'에서 'SBI(Samsung Battery Intelligence·삼성 배터리 인텔리전스)'를 처음 공개한다고 밝혔다.
SBI는 배터리를 '관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도 건강검진을 받으면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를 보고 "이 추세면 3년 뒤 위험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SBI도 이처럼 ESS(에너지저장장치·대형 배터리 시스템)의 온도, 전압, 충방전 패턴 등을 실시간으로 읽고 "이 배터리 셀, 조만간 문제 생길 것 같다"고 미리 알려준다.
삼성SDI는 국내외 1400곳 이상의 ESS 현장에서 수년간 쌓아온 데이터를 AI가 학습한 결과라고 전했다.
ESS 화재는 한 번 나면 피해가 크다. 소방차가 와도 쉽게 꺼지지 않고, 재산 피해에 인명 피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배터리 화재의 특성상 겉으로 멀쩡해 보이다가 갑자기 발생한다는 점이다. SBI는 바로 그 전 단계를 미리 발견하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배터리 회사들의 경쟁은 주로 하드웨어였다. 배터리 용량을 늘리고, 충전 속도를 높이고, 더 작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삼성SDI가 이번에 함께 공개하는 각형 배터리, 피지컬AI용 전고체 배터리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SBI는 배터리가 현장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이 흐름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는 정전이 곧 대규모 데이터 손실로 이어지는 환경이다.
이에 따라 배터리에 단순한 성능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도 요구되고 있다. 잘 버티는 배터리가 아니라, 언제 문제가 생길지 미리 알 수 있는 배터리가 필요한 것이다.
삼성SDI는 SBI를 올해 10월 국내에 공급되는 ESS 제품 'SBB 1.5'에 먼저 탑재하고, 이후 SBB 전 제품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