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사는 도시락 용기, 세탁할 때 쓰는 세제통, 약국에서 받아오는 약 봉지. 이런 생활 필수품들이 중동 전쟁과 연결돼 있다. 바로 '나프타' 때문이다.
나프타(naphtha)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뽑아낸 액체다. 가솔린보다 조금 가볍고, 등유보다 조금 무겁다. 그 자체로 연료나 세정제로 쓰이기도 하지만, 한국 산업에서 나프타가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프타를 나프타분해시설(NCC)에 넣으면 에틸렌·프로필렌 같은 기초유분이 나온다. 여기서 합성수지가 만들어지고, 합성수지에서 플라스틱이 나온다. 페트병, 포장재, 비닐, 용기, 합성섬유, 의약품 용기까지 이어지는 긴 사슬의 출발점이 나프타다.
한국은 나프타를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원유를 수입해 추출하거나 중동산을 수입해서 쓴다. 업계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중동에서 오고, 운송 경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시작됐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원유 수급과 나프타 수입 모두 어려워진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 2일부터 3월 17일까지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56.38달러에서 127.95달러로 올랐다. 약 두 달 반 만에 상승률 127%에 달했다. 3월 들어서만 92.6달러까지 오르며 급등세로 전환됐고, 3월 2일부터 10일까지 단 7일 만에 33.9달러 상승했다.
가격이 오른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11일 일본 수입가 기준 나프타는 t당 1009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에틸렌 가격은 t당 860달러로, 원료인 나프타가 오히려 정제 상품인 에틸렌보다 비싼 역마진 상황이 지속됐다.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기지인 여천NCC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등도 일제히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NCC 설비는 공정을 한번 멈추게 되면 재가동 시 최대 한 달까지 소요되는 정비 과정이 필요해 단순히 껐다 켜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 충격은 1인가구의 생활비로도 전달된다. 원유 공급 차질은 나프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기초유분과 합성수지 가격을 끌어올리는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포장재 가격 인상은 가공식품, 세제, 화장품 등 소비재 전반의 가격 상승으로 직결된다.
나프타에서 출발한 에틸렌은 비닐봉지·페트병·플라스틱 용기의 원료가 된다. 프로필렌은 자동차 범퍼·내장재·세탁기 외관에 쓰이는 폴리프로필렌으로 바뀐다.
부타디엔은 타이어 고무가 되고, 파라자일렌(PX)은 옷감의 원료인 폴리에스터 섬유로 이어진다. 세탁 세제가 담긴 용기, 샴푸 통, 약 봉지, 택배 포장재, 1회용 도시락 용기까지 나프타를 거치지 않은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혼자 사는 사람의 하루에서 아침에 일어나 칫솔을 집는 순간부터 저녁에 배달 음식 포장을 뜯는 순간까지, 손이 닿는 거의 모든 플라스틱의 기원이 나프타다.
한편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플라스틱 제조업체의 92.1%가 원료 공급업체로부터 가격 인상 통보를 받았다고 답했다. 원재료 가격이 올라도 납품단가에 즉각 반영하지 못하는 중소업체들이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더불어 나프타는 약 용기와 비닐 등 의약품 포장재의 원료로도 쓰인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포장재 가격 인상을 넘어 의약품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품목으로 지정하고 비축유 2246만 배럴 방출, 1조5000억원 규모 금융 지원 등 대책을 내놨다. 수출 제한 조치도 시행했다. 그러나 방출 물량으로 하루 약 56만 배럴의 나프타를 일주일가량 추가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국내 하루 소비량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