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고유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동시에 나타나는 '3고(高) 충격' 가능성이 커지자 민생 안정과 경기 방어를 위해 재정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국민 상당수에게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다.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3000만명 이상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3000만명 대상…최대 60만원 지급
이번 추경의 핵심 사업은 고유가 피해 지원금 지급이다. 정부는 4조8000억원을 투입해 3000만명 이상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지급 방식은 현금이 아닌 소비형 지원이다. 신용카드·체크카드 포인트 또는 지역화폐 형태로 지급해 소비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기본 지급액은 1인당 10만원이다. 여기에 거주 지역과 소득 수준에 따라 추가 지원이 붙는다.
비수도권 거주자는 5만원이 추가 지급되고, 인구 감소 지역 주민은 10만~15만원이 더해진다.
여기에 취약계층 지원도 별도로 마련됐다. 차상위계층이나 한부모 가정은 최대 35만~40만원의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최대 45만~60만원까지 지원한다. 비수도권 기초생활수급자는 최대 6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소득 하위 70% 기준은 중위소득의 약 150% 수준이다. 월 소득 기준으로 1인가구는 약 385만원 이하, 2인가구는 약 630만원 이하가 지원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선별 기준은 '건보료' 유력
실제 지원 대상은 소득이 아니라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가구 규모별 건강보험료 기준선을 정할 계획이다.
건강보험료는 소득 수준을 비교적 정확히 반영할 수 있어 재난지원금 지급 등 여러 정책에서 선별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실제로 지난해 민생 소비 쿠폰 지급 당시에도 소득 하위 90%를 대상으로 건강보험료 기준이 적용됐다. 당시 4인가구 기준으로 직장 가입자는 약 51만원, 지역 가입자는 약 50만원 수준이 커트라인이었다.
고유가 대응 '3대 패키지'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민생 지원금뿐만 아니라 고유가 부담 완화 패키지를 함께 추진한다. 교통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 시 환급을 제공하는 K-패스 제도를 확대해 환급률을 최대 30%포인트까지 높인다. 취약계층 에너지 복지 확대를 위해 등유나 LPG를 사용하는 저소득층 약 20만가구에 에너지 바우처 5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기업과 산업 지원책도 포함됐다.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를 경우 차액 일부를 정부가 보전하는 '석유 최고가격제' 관련 예산도 편성됐다. 중소기업과 수출 기업을 위한 수출 금융과 원자재 수급 지원도 함께 추진된다.
청년 창업과 일자리, 문화예술 지원 예산도 일부 포함됐다. 정부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문화예술 산업 역시 타격이 큰 만큼 창작 활동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쟁 추경" vs "선거 추경"
하지만 이번 추경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정부는 중동 정세 악화와 고유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전쟁 추경이라는 입장이지만, 야권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용 추경'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문화예술 지원이나 영화 관람 할인 같은 사업이 포함된 것은 "위기 대응 추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재정 지출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지원금이 소비로 이어질 경우 단기적으로는 경기 부양 효과가 있지만, 유가 상승과 맞물리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는 등 외환시장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재정 확대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정부는 이번 추경 재원을 초과 세수로 마련해 국채 발행 없이 편성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추가 국가채무 증가 없이 재정을 투입하는 만큼 재정 건전성 부담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추경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 안정 효과와 야권이 제기하는 재정·정치 논란 사이에서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