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부채 구조가 다인가구와 확연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집을 사려고 빚을 지는 게 아니라, 방 한 칸 빌리려고 빚을 진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는 비율도 서울 평균의 1.6배다.
서울시가 2025년 서울서베이를 기반으로 공개한 '부채 주된 이유' 통계(2026년 2월 25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 1인가구의 부채 이유 1위는 전·월세 보증금 마련(51.0%)이었다. 빚이 있는 1인가구 두 집 중 한 집은 보증금 때문에 돈을 빌렸다는 뜻이다.
서울시 전체 평균(39.4%)과 비교하면 11.6%포인트 높다. 반면 거주주택 마련은 20.9%로, 서울 평균(36.9%)보다 16%포인트나 낮았다. 다인가구가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을 때, 1인가구는 '남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 대출을 받는 셈이다.
빚 갚으려 빚 내는 악순환
더 눈에 띄는 건 '생계형 부채'의 비중이다. 부채상환(10.0%), 생활비 마련(4.4%), 의료비 마련(1.4%)을 합산하면 15.8%에 달한다. 서울 전체 평균(9.6%)의 1.6배다.
특히 부채상환 목적이 10.0%라는 건 1인가구 열 명 중 한 명이 기존 빚을 갚기 위해 새로운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 평균(6.3%)보다 3.7%포인트 높다. 돌려막기가 일상이 된 것이다.
월 200만원 미만, '빚의 절반이 생존 목적'
소득별로 쪼개면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경우 생활비 마련이 부채 이유의 25.6%를 차지했다. 부채상환(16.8%), 의료비(7.6%)까지 더하면 생계형 부채 비중이 50.0%에 이른다. 빚의 절반이 먹고, 치료받고, 빚 갚는 데 쓰인다.
소득이 올라가면 양상이 뒤바뀐다. 월 8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은 거주주택 마련(52.4%)이 부채 절반 이상이다. 이들의 생계형 부채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같은 '빚'이지만, 자산을 늘리기 위한 빚과 살아남기 위한 빚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20대, 빚의 68%가 보증금
연령대별로 보면 청년층의 부담이 뚜렷하다. 20대 이하는 전·월세 보증금 비중이 67.9%, 30대도 67.1%다. 세 명 중 두 명이 보증금 때문에 빚을 졌다. 50대(20.4%)나 60세 이상(16.5%)과는 세상이 다르다.
50대 이상은 거주주택 마련이 부채 이유의 절반 안팎(50대 51.9%, 60세 이상 48.6%)을 차지한다. 이미 집을 구한 세대와 아직 방을 구해야 하는 세대의 간극이 수치로 드러난다.
여성 1인가구, 더 취약하다
성별 격차도 확인된다. 여성의 전·월세 보증금 비중은 46.0%로 남성(37.8%)보다 8.2%포인트 높다. 의료비 마련도 여성 1.7%, 남성 0.5%로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생활비 마련 역시 여성(3.5%)이 남성(2.3%)보다 높다. 여성 1인가구가 주거비와 생계비 양쪽에서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월세 거주자, 돌려막기 비율 최고
주거 형태별로 보면 월세·기타 거주자의 부채상환 비중이 11.6%로 가장 높다. 전세(4.0%), 자가(4.8%)와 비교가 안 된다. 생활비 마련도 월세 거주자가 4.7%로 자가(1.9%), 전세(1.6%)의 두 배 이상이다. 전세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어 월세로 밀려난 가구일수록 생계형 부채의 늪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금융투자 목적 부채도 주목
한편 1인가구의 금융투자금 마련 목적 부채는 4.7%로, 서울 평균(3.0%)을 웃돌았다.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경향이 1인가구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 셈이다. 부족한 자산을 투자로 메우려는 시도가 새로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별로는 강북구·영등포구 '생활비 부채' 심각
자치구별로는 강북구의 생활비 마련 비중이 13.8%로 서울 25개 구 중 가장 높았다. 영등포구(14.7%)도 눈에 띈다. 반면 강남구(0.5%), 성동구(0.2%), 노원구(0.5%) 등은 생활비 부채 비중이 낮았다. 지역 간 경제력 격차가 부채의 성격까지 바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