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 인사이트] 구광모의 ESS 행보, LG의 미래전략이 바뀌고 있다
[피벗 인사이트] 구광모의 ESS 행보, LG의 미래전략이 바뀌고 있다
  • 정단비
  • 승인 2026.04.0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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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 대표가 3월 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웨스트보로로 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ESS SI(시스템 통합) 전문 자회사 버테크(Vertech)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구 대표는 이 자리에서 "어떤 외부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업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며 "ESS 배터리 하드웨어 공급을 넘어 고객에게 부가가치가 높은 통합 솔루션 역량을 높여 시장을 선도하는 압도적 지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 변수 탓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자, 지금까지의 전략을 바꾸겠다는 신호로 분석된다.

사진=구광모 ㈜LG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ESS SI 전문 자회사 버테크에서 ESS 배터리팩에 들어가는 파우치형 배터리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구광모 ㈜LG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ESS SI 전문 자회사 버테크에서 ESS 배터리팩에 들어가는 파우치형 배터리셀을 살펴보고 있다.

배터리 회사에서 솔루션 파는 회사로

버테크는 LG에너지솔루션이 2022년 2월 'NEC 에너지솔루션'을 인수해 세운 법인이다. ESS 설계·설치·유지보수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 관리까지 아우르는 시스템 통합 역량을 갖추고 있고, 자체 개발한 에너지 관리 시스템 'AEROS'로 ESS 단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제어한다.

쉽게 말하면 기존에는 배터리 셀을 납품하면 끝이었지만, 버테크를 통해서는 설계 단계부터 수십 년 유지보수까지 한 번에 제공한다. 고객 입장에서 LG를 떠나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LG 입장에서는 단순 납품보다 훨씬 높은 마진을 붙일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로봇·자율주행 등 물리적 환경에 AI가 접목되는 이른바 '피지컬 AI' 시장이 커질수록 전력 수요도 함께 폭발한다. 데이터센터는 정전 한 번에 수십억원대 손실이 날 수 있어, 배터리만큼이나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가 구매 결정의 핵심이 된다. LG가 하드웨어에서 운영 관리 소프트웨어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북미 ESS 생산 거점 5곳 전환 작업을 속도 내고 있다. 미시간 홀랜드 공장이 2025년 6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고, 미시간 랜싱·테네시·오하이오·캐나다 온타리오까지 순차 가동에 들어갔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북미 ESS 생산공장 현황
사진=LG에너지솔루션 북미 ESS 생산공장 현황

현재 미국에서는 중국산 ESS 배터리에 이미 기본관세·상호관세·보복관세가 겹쳐 총 관세율 64.9%가 부과되고 있다. 2026년부터는 무역법 301조에 따른 추가 관세가 올라 최대 82.4%까지 높아질 수 있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으면서 변수는 있다.

3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LG에너지솔루션의 최근 3개년 실적은 부침이 극심했다.

2022년 연간 매출 25조5986억원, 영업이익 1조2137억원을 기록했다. 전기차 시장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로, 영업이익이 처음 1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2023년 매출은 33조7455억원, 영업이익은 2조1632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면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인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 효과가 북미 공장 증설이 맞물리며 외형과 수익성이 동시에 팽창했다.

그러나 2024년에 실적은 반전됐다. 2024년 매출 25조6196억원, 영업이익 5754억원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매출은 24.1%, 영업이익은 73.4% 감소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유럽 시장 역성장, 금속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인하, 신규 공장 가동 초기 고정비 부담이 동시에 덮친 것이다. 4분기만 떼어 보면 IRA 세액공제 3773억원을 제외할 경우 실질 영업손실이 6028억원에 달했다.

2025년은 연간 매출 23조6718억원, 영업이익 1조346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7.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33.9% 증가한 결과다. 

매출이 줄었는데도 이익이 두 배 넘게 뛴 건 수익성 높은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ESS 사업을 본격화한 덕분이다. 다만 4분기 기준으로 미국 정부 보조금 3328억원을 걷어내면 실질 영업손실이 4548억원으로, 미국 보조금 의존도가 여전히 깊다는 점은 리스크로 남는다.

그룹으로 뻗어온 부진의 그늘

LG에너지솔루션이 2024년 영업이익 73.4% 감소라는 충격을 맞는 동안, 주력 계열사들도 저마다 짐을 안고 있었다.

LG화학도 전기차 캐즘 장기화와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겹쳐 2024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3.75% 급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영업이익 1조3461억원으로 전년 대비 133.9% 반등했지만, 미국 정부 생산 보조금을 걷어낸 실질 수익은 여전히 적자 구간이다. 2023년 정점 대비 회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룹 지주사 ㈜LG의 수익은 자회사들의 배당·브랜드 수수료 수익에 연동되는 구조다. 주력 계열사들이 동반 부진한 2024년, ㈜LG 영업이익은 9894억원으로 5년 만에 1조원을 다시 밑돌았다.

LG전자는 TV 사업이 적자로 돌아선 데다 전사 차원의 희망퇴직에 따른 수천억원대 일회성 비용이 영업이익을 끌어내렸다. LG전자는 2025년 연간 기준 매출 89조2009억원, 영업이익 2조4784억원을 기록해  매출은 전년 대비 1.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7.5% 감소했다. 전년인 2024년 영업이익 3조4197억원과 비교하면 2년 연속 감소세다.

신흥 성장시장 공략

구 대표는 버테크 방문 직후 브라질로 이동해 LG전자 마나우스 생산법인과 현지 유통 매장을 점검했다. 지난해 2월 인도, 6월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 번째 현장 방문이다.

LG가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을 묶어 전략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숫자에 있다. 이 세 나라의 합산 인구만 20억명이 넘는다. 미국·유럽·중국 등 기존 주요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반면, 이들 신흥국은 중산층이 빠르게 늘고 소비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는 단계다. 업계에서는 이 국가군을 '글로벌 사우스'로 통칭한다.

LG는 중남미 전체 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브라질 시장 공략에 나섰다. 브라질 파라나주에 짓고 있는 LG전자 냉장고 신공장은 올해 7월 본격 가동 예정이다. 브라질은 수입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보호무역 성향이 강한 나라다. 공장을 현지에 짓고 직접 생산하면 관세를 피할 수 있고, 물류비도 줄어든다.

외부 충격을 이겨라

구 대표의 이번 행보의 핵심은 트럼프 관세, 전기차 수요 정체, 중국 공세 등 회사가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들에 덜 흔들리는 사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배터리 납품에서 운영 관리 일괄 서비스로, 전기차 배터리에서 ESS로, 기존 선진국 시장에서 신흥 성장국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ESS 신규 수주 목표를 2025년 실적(90GWh)보다 높게 잡고, 연말까지 글로벌 ESS 생산 역량을 60GWh 이상 확보할 계획이다. 매출 성장 목표는 전년 대비 10% 중반에서 20% 수준이다.

배터리 시장이 전기차 중심에서 ESS로 재편되는 지금, LG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에 올라탈 수 있을지가 향후 실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