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 친구 차에 올라탔다. 말렸지만 결국 운전을 했고, 다시 말리지는 않았다. 이 행위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발표한 '음주운전 재범사고 및 동승자 실태는 음주운전 동승자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낸다.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은 것은 문제일까.
처벌 강화 10년, 재범률은 꼼짝 않았다
경찰청 통계 기준으로 음주운전 단속건수는 2015년 24만3100건에서 2024년 11만8874건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숫자만 보면 정책이 효과를 냈다고 읽힌다.
그런데 재범률은 다르다. 같은 기간 44.4%에서 43.1%로, 사실상 제자리다. 연평균 43.9%로, 단속 기준과 처벌 수위를 강화한 윤창호법 시행 직전인 2018년(44.7%)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단속에 걸린 사람 10명 중 4명은 이전에도 걸린 적이 있다는 뜻이다.
2024년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1만1037건으로 2020년(1만7247건)보다 36% 줄었다. 그러나 하루 평균 31건은 여전히 발생한다. 감소세는 맞지만, 일상적 위험으로서의 음주운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재범률이 꺾이지 않는 이유를 처벌 설계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음주운전이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함께 형성되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동승자가 사고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
이번 분석에서 주목할 대목은 동승자 데이터다. 삼성화재 보험 처리 기준으로 음주운전 사고의 12%에 동승자가 탑승해 있었다. 2명 이상인 경우도 2%에 달한다. 경찰청 집계 5년간 음주사고 7만1279건에 적용하면 동승자 포함 사고는 약 8625건으로 추산된다.
동승자가 있을 때 사고의 성격이 달라진다. 차대차 사고 중 단순 추돌 비중은 단독 운전 시 71.9%에서 동승 시 60.4%로 낮아진다. 반면 차로변경 사고(12.5%→18.2%), 신호위반(5.8%→8.1%), 무신호 교차로 통행위반(3.3%→6.8%)은 모두 높아졌다.
추돌은 전방 주시 실패지만, 차로변경·신호위반·교차로 위반은 판단의 실패다. 이에 동승자와의 대화, 장난, 개입이 운전자의 판단 과정에 끼어드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법은 있긴 하지만...
현행 형법상 음주운전 방조죄 적용은 가능하다. 검찰은 2016년 형법 제32조를 음주운전에도 적용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적극적 독려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방조 혐의 검거 인원은 977명이다. 추정 동승자 사고 규모의 11% 수준이다. 동승자가 "몰랐다", "말렸다"고 주장하면 CCTV나 블랙박스 영상 없이는 혐의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의성과 적극적 방조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구조가 법 적용을 막는다.
동승자 처벌 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이번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은 법사위 통과 후 본회의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음주 사실을 알면서 차량을 제공하거나 운전을 권유·독려한 경우, 동승을 요구한 경우 모두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2007년에 이미 바꿨다
비교 대상으로 일본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6년 후쿠오카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일가족을 추돌해 유아 3명이 숨졌다. 운전자는 징역 20년을 받았고, 이듬해 일본은 이와 관련해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개정법은 동승자뿐 아니라 주류 제공자, 차량 제공자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음주 사실을 알고 탄 경우 형사처벌과 함께 벌점·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병행하고, 사안에 따라 면허취소까지 가능하다. 이후 일본의 음주운전 사고와 사망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이 지금 논의하는 내용을 일본은 20년 전에 실행했다.
음주운전 옆자리는 안전하지 않다
재범률이 고착화된 구조에서 처벌 강화만으로 음주운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10년치 데이터가 보여준다. 이에 연구소는 동승자 방조에 대한 명확한 처벌 기준, 그리고 주변인이 막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금 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냥 탔을 뿐"이라는 말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술 마신 운전자 옆자리에 앉는 행위가 사회적 위험에 가담하는 행위로 정의되는 순간이 머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