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인형뽑기방, 출처 불명의 인형들…이대로 괜찮나
'우후죽순' 인형뽑기방, 출처 불명의 인형들…이대로 괜찮나
  • 김자영
  • 승인 2026.09.1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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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들러 스트레스를 풀고,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는 놀이로 자리잡은 무인 인형뽑기점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10일 발표한 '무인 인형뽑기점 안전실태조사' 결과, 진열대에 놓인 인형과 키링 다수가 어린이 제품 안전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채 유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허가 2년 새 두 배로…감독은 제자리

무인 인형뽑기점을 포함한 청소년게임제공업소 인허가 건수는 2024년 885건에서 2025년 1823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고, 2026년 5월 기준으로도 이미 584건이 새로 등록됐다.

소비자원은 이렇게 빠르게 확산하는 업종에서 유통제품의 안전성 우려와 시설 안전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안전한 소비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간 실태 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시험검사(유통제품 20종), 온라인조사(제조사가 확인된 10종의 정품 여부), 현장조사(업체 16곳)로 나눠 진행됐으며, 현장조사 대상은 시설 수 상위 5개 지역에서 인허가 취소·폐업·휴업 시설을 제외하고 선정됐다.

유해화학물질, 20종 중 12종이 부적합

시험검사 대상 20종 가운데 60%인 12종이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납·카드뮴 항목에서 어린이제품 공통안전기준(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제2022-220호)을 초과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초과가 확인된 부위는 총 28곳에 달한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자료=한국소비자원

가장 많이 검출된 것은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다. 폴리염화비닐 등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 쓰이는 이 물질은 어린이의 생식기능이나 신체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된다.

조사 대상 20종 중 45%인 9종에서 기준치(총합 0.1% 이하)를 넘겼고, 인형 얼굴이나 손·발·신발·모자 등 총 14개 부위에서 검출됐다. 검출량은 최소 0.194%에서 최대 34.746%까지 나타났는데, 가장 높은 수치가 나온 제품은 인형 얼굴 부위에서 기준치의 347배가 넘는 양이 확인된 경우였다.

납은 40%인 8종에서 기준치(90~100mg/kg)를 초과했다. 검출 부위는 대부분 은색 혹은 금색 금속 O링과 그 여닫이 부분이었고, 검출량은 최소 123.2mg/kg에서 최대 242.5mg/kg까지 나왔다. 카드뮴은 10%인 2종에서 기준치(75~100mg/kg)를 넘겼으며, 역시 금속 O링 부위에서 최대 93.2mg/kg이 검출됐다.

납과 카드뮴 모두 국제암연구소가 인체 발암성 물질로 지정한 성분이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12종 중 4종은 가소제와 납이 함께 검출됐고, 4종은 가소제만, 2종은 납만, 1종은 납과 카드뮴이 함께, 1종은 세 물질이 모두 검출되는 등 복합 오염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위험이 소비자에게 전혀 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인 인형뽑기점은 성인뿐 아니라 만 13세 이하 어린이도 자유롭게 이용하는 시설이지만, 조사 대상 20종 모두 안전 인증마크와 사용 가능 연령 표시가 아예 없었다.

정품 표시돼 있어도 열에 열은 '가짜'

제품 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조사 대상 20종 중 절반인 10종은 제조사 표시 자체가 없어 출처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나머지 10종은 팝마트(POP MART)나 레츠반(Letsvan) 등 유명 캐릭터 브랜드의 제조사명이 표시돼 있었는데, 소비자원이 이들을 정밀 검증한 결과 전량 모조품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자료=한국소비자원

우선 제조사명이 표시된 10종 중 40%인 4종은 정품 인증에 필요한 식별 라벨(일련번호·QR코드)조차 부착돼 있지 않았다. 라벨이 붙어 있던 나머지 6종도 공식 사이트에서 조회하자 전량 '위조 방지 코드 검증 횟수 초과' 오류 메시지가 떠 정품 인증에 실패했다.

팝마트 측은 가품에도 QR코드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어, 인증 시 이미 여러 번 사용된 기록이 뜬다면 모조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외형 비교에서도 10종 전량에서 정품과 명확한 차이가 두 가지 이상 확인됐다. 예컨대 팝마트의 인기 캐릭터 '라부부' 정품은 높이 58cm, 길이 30cm인 반면 조사 대상 제품은 높이 17cm, 길이 12cm에 불과했고, 귀의 재질과 모양, 얼굴 모양과 색상, 팬던트 크기까지 달랐다.

소비자원은 이런 모조품이 정품과 달리 별도의 안전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는데, 실제로 모조품 의심 10종 가운데 80%인 8종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이 판단을 뒷받침했다.

소화기 없는 매장 4곳 중 1곳…등록증은 열에 일곱이 '안 보임'

매장 시설 관리도 허술했다. 연면적 33㎡ 이상 시설은 소방시설법에 따라 소화기를 갖춰야 하는데, 조사 대상 16개 업체 모두 이 기준을 넘는 규모였음에도 25%인 4곳은 소화기를 비치하지 않았다. 인형뽑기점 내부에 전기설비와 플라스틱 인형류, 포장재 등 불에 타기 쉬운 물질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한 대목이다.

운영 관리 항목에서는 등록증 미게시가 가장 두드러졌다. 청소년게임제공업 등록번호가 담긴 등록증을 매장 내부에 게시한 곳은 16곳 중 5곳(31.2%)에 그쳤고, 나머지 68.8%인 11곳은 게시하지 않았다. 청소년 이용제한 안내문을 게시하지 않은 곳도 2곳(12.5%), 이용안전수칙을 게시하지 않은 곳도 3곳(18.8%) 있었다.

이 밖에 1곳(6.3%)은 바닥 타일이 전반적으로 깨져 있어 넘어지거나 파편에 다칠 위험이 있었고, 또 다른 1곳에서는 칼과 원예용 가위가 이용객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방치돼 있었다.

다만 기계 자체의 안전성은 비교적 양호했다. 조사 대상 16개 시설 모두 인형 배출구가 밖에서 안으로만 열리는 구조였고 문·모서리 마감 처리도 양호해 손가락 베임 등 우려는 낮았다. 뽑기 기계의 바퀴(캐스터)도 모두 고정돼 있어 기계가 넘어질 위험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원은 배출구에 이용자가 몸을 넣어 갇히는 사고를 막기 위해 출입 경고문구 부착이나 출구 크기 기준 마련, 이중 출구 설치 같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규제 공백, 확산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무인 인형뽑기점은 관리주체나 상시 인력 없이도 손쉽게 운영할 수 있는 업종 특성상 빠르게 늘었지만, 경품으로 들어오는 인형이나 키링의 유통 경로를 추적할 안전 인증 절차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품 브랜드를 도용한 모조품이 안전 검증 없이 그대로 진열대에 오르고, 그중 상당수가 유해화학물질까지 기준치를 초과하는데도 소비자는 안전 인증마크도, 사용 연령 표시도 없는 제품을 아무런 정보 없이 뽑아 가는 구조가 방치돼 온 셈이다.

소비자원은 이번 조사 결과와 개선 권고 내용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공유해 현장 점검을 건의하고, 관계 부처에는 무인 인형뽑기점에서 유통되는 제품과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감독 강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이런 사후 점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품 유통 단계에서부터 안전 인증을 의무화하고, 제조사 표시 없는 제품의 반입 자체를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가벼운 오락으로 여겨졌던 인형뽑기가 실은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였다는 사실은, 일상 속 소비 공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규제 공백을 메우는 속도가 인형뽑기점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