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골목길. 불과 2년 전까지 '하루필름', '인생네컷', '포토그레이' 간판이 즐비했던 이곳은 이제 '인형뽑기' 네온사인으로 가득하다. 탕후루 가게가 있던 자리, 네컷 사진관이 있던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주인공들이다.
"한집 건너 한집이 셀프 사진관이었는데, 어느새 전부 인형뽑기방으로 바뀌었어요" 홍대 상권에서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상인의 말이다.
통계가 이런 체감을 뒷받침한다.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이 게임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형뽑기방이 포함된 청소년게임제공업소 수는 지난달 기준 5957곳으로, 최근 2년간 20%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인형뽑기방이 너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이 될 정도다.
반면 네컷사진 시장은 포화 상태를 넘어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정보시스템 기준으로 주요 셀프 사진관 브랜드들의 투자 효율성이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4컷 사진관 시장에서 브랜드별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정보시스템 기준으로 ▲하루필름: 창업비용 5555만원 → 매출 2억2548만원 ▲포토이즘 컬러드: 창업비용 7172만원 → 매출 2억2960만원 ▲포토그레이: 창업비용 1억2820만원 → 매출 2억280만원 ▲인생네컷: 창업비용 9995만원 → 매출 8880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맹점 수가 가장 많은 인생네컷의 경우 매출이 창업비용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반면 인형뽑기방 창업비용은 2600만원~4750만원 선으로, 대부분의 4컷 사진관보다 2~4배 저렴하다.
게임 체인저: 법 개정의 힘
인형뽑기방 급증에는 결정적 촉매제가 있었다. 2023년 청소년 게임장 관련 법안 개정으로 기존에 금지되었던 카드 단말기 사용이 허용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카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매출이 이전 대비 3~4배 증가했다"고 입을 모은다. 현금이 떨어져도 계속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뽑파민(뽑기+도파민)' 중독 현상까지 나타났다.
인형뽑기방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무인 운영 시스템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무인 창업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네컷 사진관도 무인 운영이지만, 초기 투자비용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고화질 카메라, 프린터, 터치스크린 등 정교한 장비가 필요한 사진관과 달리 인형뽑기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기계로 운영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무인 운영을 통한 저비용 창업 가능성과 경기침체 속 '가성비' 놀이문화 확산"을 인형뽑기방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30대 직장인 A씨는 한 달에 10만원가량을 인형뽑기에 쓴다. "인형뽑기는 뽑을 때까지 계속 도전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위조상품, 조작 의혹 급증
급성장의 이면에는 문제점들도 드러나고 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 완구·문구류 위조제품 적발 건수가 2023년 752건에서 2024년 4414건으로 487% 폭증했다.
더불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인형뽑기 관련 민원이 2022년 42건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5년 8월까지 24건이 접수됐다. "집게 힘이 약하게 조작됐다", "일정 횟수 투입해야만 강해진다"는 불만이 주를 이룬다.
이에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출입·조사 위탁업무 수행시 제공 경품의 종류와 지급기준, 제공 방법 등 확인 절차를 강화하겠다"며 관리·감독 강화를 예고했다.
'탕후루의 길' 걸을까
전문가들은 인형뽑기방 역시 이전 유행 업종들과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특히 단속 강화와 위조상품 문제가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관세청이 2017년 이후 중단했던 어린이 제품 단속을 재개하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어, 인형뽑기방 운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인형뽑기방은 당분간 상권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한집 건너 한집이었던 네컷사진관 시대는 저물어가고 인형뽑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상권 지배자로 떠올랐다. 다음 주인공은 과연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