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언제까지 회피할 것인가
[뉴스줌인]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언제까지 회피할 것인가
  • 이용진 기자
  • 승인 2016.05.06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확인된 사망자만 146명..5년 만에 수사 급물살에 유통업계 '긴장'
▲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임

지난 2011년 많은 산모와 영유아를 죽음으로 밀어 넣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5년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최근 다국적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행보는 전 국민 불매운동까지 진행될 정도로 분노케 하고 있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사망자의 70% 정도가 옥시의 제품을 사용했다.

이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정부와 제조·판매 업체들을 상대로 첫 집단 소송에 나선다.

지난 2011년 5월 당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미상의 급성 폐질환으로 인한 폐 섬유화 증상으로 임산부들이 사망했다. 8명 중 절반이 사망하고 3명이 폐 이식을 하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의문의 죽음이 이어지자 같은 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11월 동물흡입 독성실험 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위해성을 확인하고 수거 명령을 내리자 이 같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 사건이 대두하자 한국 국민들은 분노로 들끓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관심은 사라졌고, 정부·수사기관·기업들의 외면 속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외로움 싸움을 펼쳐온 것이다.

피해자들은 2011년 8월부터 지금까지 기자회견과 시위, 토론회를 수백차례 열었으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폐질환 사망자 수만 늘어갔다. 곧 태어날 아이, 가족을 위해 깨끗한 가습기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현재까지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파악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1528명(사망자 228명 포함)으로 정부가 두 차례 조사를 거쳐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30명(사망자 146명 포함)의 3배 규모에 달하기 때문에 지난해말 중단된 3차 조사의 결과에 따라 피해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시민단체와 피해자 가족들은 신고 접수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신고를 받고 있다.

재조명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뻔뻔한 '옥시', 연구결과 은폐 의혹까지

그동안 정부의 조치는 2011년 12월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하다"는 '과장광고'를 한 기업을 대상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것 뿐이었다. 지난 2012년 7월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안전하다'고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옥시레킷벤키저에 5000만원, 홈플러스 100만원, 버터플라이이펙트에 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롯데마트는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 경고조치에 그쳤다.

피해 의심 사례가 접수된 뒤에도 8개월 가까이 정부와 기업은 입증 책임을 두고 실랑이를 했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 2012년부터 관련 업체들을 검찰에 고소했지만 검찰은 인과관계 확인이 어렵다며 피해사례 300여건에 대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를 결정했다.

2014년에는 환경부가 폐손상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 '거의 확실', '가능성 높음' 판정을 받은 168명에게 의료비와 장례비 등 지원금 지급을 결정했음에도 올해 1월이 돼서야 사건 전담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5년 만에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자 피해자들은 지난 2∼3월 옥시·롯데·홈플러스·애경·SK케미칼·이마트 등 전·현직 임원들을 줄줄이 고발했다.

수년간 멈춰 있던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자 묵묵부답이던 기업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대형마트들의 사과는 세간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던 옥시도 4월 21일 입장자료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피해자를 위해 환경부 및 환경보전협회(KEPA)와 협의 통해 기탁해던 기존 50억원의 기금 외에 50억원을 추가로 출연, 총 100억원 상당의 피해보상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옥시의 이 같은 이메일 사과는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

피해자들은 옥시 사과문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환경부는 더 이상 피해 신고도 받지 않고 3년간 조사를 질질 끌고 있어 믿을 곳은 검찰밖에 없다"며 "옥시 등 4개 업체 외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14개 제조사 모두를 조사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옥시는 지난 2001년부터 SK케미칼이 제조한 PHMG 인산염 성분(원료명 SKYBIO 1125)을 함유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시장에 판매해왔다. 당시 SK케미칼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관리를 위해 주요 성분과 주의사항 등을 담은 자료인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첨부해 원료를 공급했으며, SK케미칼이 첨부한 MSDS에는 'SKYBIO 1125'를 유해물질로 분류하고 먹거나 마시거나 흡입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내용을 담겨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옥시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고의로 해산하고 유해성분을 입증한 연구결과나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 신고 등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대표

서울중앙지검 가습기살균제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검사)이 지난 2월 압수수색을 받은 옥시가 지난 2001년부터 10년동안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관련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일괄 폐기한 정황을 확보한 것이다.

또 검찰에 따르면 옥시는 2011년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의뢰한 흡입독성 평가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임신한 실험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죽었다는 결과가 나와, 연구팀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 생식동성 가능성이 존재한다.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첨부했지만 옥시 측은 보고서를 은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신현우 옥시 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옥시 측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폐손상 원인과 관련, "봄철 황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77페이지 달하는 분량으로 제출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옥시는 지난 2일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식 사과를 했으나 보상과 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이 빠졌다는 비판과 함께 피해자들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성에 또 다른 논란거리만 만들었다.

한편,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논란이 일자 2011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을 변경하고 해산한 상황이다. 이에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던 옥시의 이전 법인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옥시가 책임회피를 위해 법인 변경 꼼수를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옥시 영국 본사에서도 한국 지사와 법적으로 관계가 없으며 독립적인 회사라고 선을 긋고 있어 수사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옥시의 영국 본사 측은 자사 홈페이지 뉴스란에 희생자에 사과를 전한다는 사과문을 게재한 바 있다.

(데일리팝=이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