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거 아니?] 한국 문구의 역사라 불리는 브랜드, '모나미'
[브랜드 이거 아니?] 한국 문구의 역사라 불리는 브랜드, '모나미'
  • 이지원
  • 승인 2020.06.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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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 'mon ami'는 국내 소비자에게도 익숙한 단어 중 하나다. 회사와 학교는 물론 내 방 한 켠에도 꼭 한 자루 정도는 갖고 있을 볼펜의 브랜드가 먼저 연상되는 덕분이다. 

국내 브랜드 '모나미'는 친구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에게도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흰색 육각형의 몸체와 해당 볼펜의 색을 알려 주는 볼펜의 꼭지는 단순한 디자인임에도 소비자에게 뚜렷하게 인식돼 있을 정도다. 오랜 시간 문구계의 역사를 지킨 것은 물론 저렴한 가격 등으로 인해 접근성 역시 낮아 '누구나 한 번쯤은 사용했을 법한 필기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친구 같은 존재로 인식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나미는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브랜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국민 볼펜 모나미가 걸어온 길은 어떨까. 한국 문구의 역사라 불리는 브랜드, 모나미를 소개한다. 

한국 문구의 역사, 모나미 (사진=모나미)

모나미의 전신, 광신 화학 공업사

현재는 국민 볼펜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지만, 모나미는 본래 볼펜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모나미의 전신은 1960년 회화용 문구류를 생산하는 '광신 화학 공업사'에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던 중 1962년, 경복궁에서 개최된 '5·16기념 국제산업박람회'에 참석한 모나미의 창립자 송삼석 회장은 선진 기업들을 벤치마킹 하기 위해 나섰으며, 이 자리에서 일본 최대의 문구업체 '우치다 요코'의 직원이 사용하는 펜을 발견한 송 회장은 '우리도 당장 볼펜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며 영감을 얻게 됐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있어 볼펜은 1945년, 미군이 우리나라에 진주하며 처음 소개된 후 1950년 한국전쟁 시 외국종군기자들이 취재를 다니며 들고다녔던 것을 계기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당시 국내 소비자들은 연필이나 잉크를 찍어서 쓰는 펜, 만년필 등을 주로 사용했다. 

이때 볼펜의 편의성에 주목한 국내 문구사들이 볼펜을 생산하려 했으나 당시 국내 문구사의 기술력으로는 특수 합금으로 만든 볼펜 촉과 굳지 않는 잉크를 개발할 수 없었으며, 특히 작은 플라스틱 관에 잉크를 넣는 것과 잉크가 조금씩 흘러 나올 수 있도록 팁을 제작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송 회장 역시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일본 볼펜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던 '오토볼펜'에서 유성잉크 제조 기술을 도입해 올 수 있었다. 기술 도입 이후에도 툭 하면 잉크가 새서 곤혼을 겪어야 했으나, 결국 수개월의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63년 5월 국산 유성잉크의 볼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볼펜이 모나미를 현재 자리에 있게 한 '모나미 153'이다. 숫자인 '153'에는 당시 볼펜 가격인 15원이고, 모나미가 만든 세 번째 제품이라는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모나미 153이 성공한 끝에 '모나미 화학 공업사'로 사명을 변경, 1974년에는 마침내 모나미가 회사의 이름이 됐다. 

(사진=엠텍 홈페이지에서 캡처)
모나미 153 (사진=엠텍 홈페이지에서 캡처)

모나미의 시작, "순탄치 않네..."

출시 당시 모나미 153의 가격은 15원, 그 때 당시의 짜장면 가격이 30원인 것을 감안했을 때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그뿐일까? 만년필과 펜촉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에게 볼펜은 이질적인 존재에 불과했으며, 당시 유성 잉크의 성분 배합 기술이 미숙해 잉크가 새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모나미 153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연필과 펜 제조사들은 "볼펜을 쓰면 악필이 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으며, 몇몇 문인들은 "볼펜으로 쓴 원고는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는 이유로 볼펜 사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모나미는 펜의 잉크가 새어나와 옷에 뱄다는 소비자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모나미는 이에 변명 없이 모두 변상했으며, 이후로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기술을 보완하는 등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직원들은 가방마다 볼펜을 가득 채워 하루 종일 관공서와 은행, 기업 사무실 등을 돌아다니며 볼펜의 장점을 알렸다. 일명 '잉크병 없애기 운동'을 펼친 것이다. 그렇게 2년쯤 지나자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모나미 153이 정부가 정한 '서류 보존성'의 모든 기준을 만족시키며 KS인증마크를 받게 된다.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며, 단순한 디자인과 KS인증마크 더해지며 모나미 153은 국민 볼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현재 모나미가 판매 중인 제품군 (사진=모나미 제품 카탈로그에서 캡처)
현재 모나미가 판매 중인 제품군 (사진=모나미 제품 카탈로그에서 캡처)

이후 모나미는 사인펜과 네임펜, 마커펜 등 다양한 종류의 필기구를 생산하며 한국의 대표 필기구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 2013년 5월 기준 모나미 153펜 매달 300만 자루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현재까지 무려 36억 자루가 팔렸다고 전해진다. 13.5cm의 길이를 갖고 있는 모나미 153 제품 36억 자루를 일렬로 늘어놓으면 무려 48만 6000㎞에 달하며, 이는 지구 12바퀴를 도는 것과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모나미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디지털 기기의 활용 빈도가 높아졌으며, 자연스럽게 모나미 등 필기구 업계는 정체기를 맞게 된 것이다.

실제로 2011년 2197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모나미는 지속해서 하락세를 그리고 있으며, 2019년 매출은 1320억 원으로 8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기도 했다. 

모나미가 선보인 프리미엄 라인 (사진=모나미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모나미가 선보인 프리미엄 라인 (사진=모나미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모나미가 뽑은 카드, 프리미엄 전략

모나미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고급화 전략'을 택했다. 모나미 153이 출시된 지 50주년을 맞은 2014년, 모나미는 '모나미 153 리미티드 1.0블랙'으로 고급화의 첫 발을 내딛었다. 

물론 회사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오랜 시간 동안 300원을 유지하며 '가성비' 볼펜으로 자리잡았던 모나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는 맞지 않는 방식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모나미의 사업 전략 변경은 성공적이었다. 해당 제품의 실버 니켈 도금이 입혀진 외관에 독일산 볼펜심이 장착돼 가격은 2만 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제품보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발매 첫날 접속자 폭주로 모나미 공식 쇼핑몰이 마비되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품절된 후에는 수요가 줄어들지 않아 중고거래 사이트에 15만 원~20만 원 상당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당시 고급화 전략의 가능성을 확인한 모나미는 프리미엄 전략을 본격화하며 ▲153 아이디 ▲153 리스펙트 ▲153 네오 ▲153 블랙 앤 화이트 ▲153 골드 ▲153 블라썸 ▲153 네이처 등 젊은 세대의 취향을 파악해 기존의 디자인은 유지하되 비비드한 컬러를 활용한 프리미엄 라인을 잇달아 선보였다. 최근에는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20만 원 상당의 '프러스펜 3000 데스크펜'을 선보이기도 했다. 

잉크랩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있는 모나미스토어 인사동 지점 (사진=모나미
잉크랩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있는 모나미스토어 인사동 지점 (사진=모나미 컨셉스토어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현재 모나미는 오프라인 매장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15년 문을 연 '모나미스토어'는 모나미라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컨셉스토어다. 모나미 컨셉스토어는 모나미만의 아이덴티티와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감성 라이프 문화공간을 지향한다. 

방문객들이 모나미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자신의 취향대로 볼펜과 잉크를 조합해 구매거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필기구를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업 활로 역시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모나르떼'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어린 학생들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도록 창의적인 방식으로 학습자료를 제작하는 활동을 하는 회사도 운영하며 예술을 적극적으로 선도하고 있다.

(사진=모나미)
모나미 153 스마트펜 (사진=모나미)

그런가 하면 기존 모나미의 육각 디자인은 유지하되 품질을 대폭 개선한 'fX 153'을 선보이며 끊임없는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2019년 11월에는 공책에 글씨를 쓸 경우 글씨 그대로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는 차세대 필기구 '153 스마트펜'을 출시해 아날로그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기도 했다. 

153 스마트펜은 좌표 값이 매겨진 전용공책에 필기를 하면 펜에 장착된 렌즈가 공책의 좌표를 인식해 글씨를 스마트폰에 전송하는 방식이다. 또한 스마트펜은 30개 언어 텍스트와 그림도 인식이 가능하며 글씨의 색이나 굵기 등도 변환할 수 있다.

이처럼 모나미는 소비자 중심의 적극적인 전략을 통해 국민볼펜에 안주하지 않고 트렌디한, 시대에 발맞춘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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