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이코노미] 고령화·1인가구 시대, '신탁'으로 내 자산 내 뜻대로 설계한다
[솔로이코노미] 고령화·1인가구 시대, '신탁'으로 내 자산 내 뜻대로 설계한다
  • 윤지현
  • 승인 2025.11.0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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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족 형태 반영한 새로운 자산 관리 방식 주목

최근 경제면에 '신탁'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주 등장하고 있다.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상속·유언을 넘어선 새로운 자산 관리 방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평생 모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평생을 함께한 동거인이나 반려동물에게 남기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사회의 좋은 일에 쓰이길 바라는 이들도 늘고 있다.


'믿고 맡긴다'는 이름의 금융 인프라


신탁(信託)은 한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위탁자가 특정 재산을 수탁자에게 이전하고, 수탁자는 정해진 목적에 따라 재산을 관리·운용·처분하는 제도다. 단순한 재산 보관을 넘어 위탁자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연하고 체계적인 금융 인프라로 기능한다.

신탁에는 세 명의 주체가 등장한다. 재산을 맡기는 '위탁자', 이를 관리하는 '수탁자'(주로 은행·보험사 등 금융기관),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받는 '수익자'다. 수탁자는 신탁 재산의 규모나 운용 방식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상속·유언과 무엇이 다른가


전통적인 상속은 법에서 정한 순서와 비율에 따라 법정 상속인이 자동으로 재산을 나눠 갖는다. 별도 절차 없이 진행되는 장점이 있지만, 위탁자의 의지를 반영하기 어렵고 가족 간 분쟁이 생기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유언은 "누구에게 무엇을 줄지"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망 후에야 공개·집행되기 때문에 내용의 진위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생길 수 있고, 유언장이 분실되거나 훼손될 위험도 있다.

반면 신탁은 살아 있을 때부터 자산을 맡겨두고 원하는 방식으로 운용·분배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존 시에는 매달 100만원씩 생활비를 쓰고, 사망 후에는 남은 돈을 조카에게 매달 용돈으로 지급하다가 결혼 시 1000만원을 일시 지급한다"는 식의 세밀한 설계가 가능하다.


특정금전·재산·종합재산신탁으로 분류


신탁은 맡기는 재산의 종류와 운용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특정금전신탁'은 현금을 맡기면서 특정한 방법으로 운용하도록 지시하는 상품이다. 은행 창구에서 주로 판매되며, 단기 수익률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장기 자산 관리와는 목적이 다르다.

'재산신탁(비금전신탁)'은 부동산·주식·채권 등 현금이 아닌 재산을 맡기는 신탁이다. 특정 자산을 목적에 맞게 관리할 수 있지만, 감정·등기·관리 비용이 별도로 발생한다.

'종합재산신탁'은 여러 종류의 자산을 한 번에 맡겨 통합 관리하는 신탁이다. 올인원 관리가 가능해 치매·노후 대비 자산 관리 도구로 이상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활성화가 더딘 상황이다.


유언대용·보험금청구권·성년후견 신탁 등 주목


고령화와 1인가구 증가로 최근 특히 주목받는 신탁 상품들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을 대신하는 신탁이다. 생전에 금융사와 계약을 맺으면 사망 후 자산이 계약 내용대로 분배된다. "조카가 대학 입학 후 졸업 전까지 매월 80만원씩 지급하고, 졸업 후 남은 돈은 일시금으로 지급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조건 설정이 가능하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사망보험금을 일시에 주지 않고 신탁사가 대신 받아 조건대로 나눠주는 제도다. 다만 현재 최소 보험금 3000만원 이상, 생명보험 계약에 한정되며, 수익자도 배우자와 직계가족으로만 제한된다.

'성년후견·돌봄 신탁'은 치매나 중증 질환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될 상황에 대비하는 신탁이다. 치매 진단 후 일정 단계가 되면 본인 명의 계좌 인출이나 부동산 매매가 법적으로 불가능해져 자산이 '동결'되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50년이 되면 치매로 인해 묶이는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가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기부·특수 목적 신탁'을 통해 특정 단체에 기부하거나 반려동물을 평생 돌보는 비용을 지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다만 법적으로 반려동물은 권리 주체가 될 수 없어 반드시 사람을 수익자로 지정해야 한다.


제도적 벽 높아 활성화는 아직 '걸음마'


전문가들은 신탁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로 제도적 장벽을 꼽는다.

대표적으로 종합재산신탁의 경우 국내 전체 신탁 수탁고 중 비중이 0.06%에 불과하다. 재신탁이 사실상 금지돼 있고, 현금 비율이 40% 이상이면 공동운용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고령층 자산 구조상 예·적금 같은 현금성 자산 비율이 높아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포괄신탁'이라는 이름으로 종합재산신탁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재신탁을 허용하고 공동운용 규제를 완화해 전체 신탁 자산 중 포괄신탁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신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뒷받침된다면 신탁이 보다 현실적인 자산 관리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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