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 학대·빈곤 등 누적된 외상이 고립 주원인
유튜브, ‘심리적 안전지대’...댓글 응원에 자존감 회복
“디지털 활동, 사회 복귀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해야”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고립을 택한 이른바 ‘은둔 청년’이 51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영상을 시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은둔 생활을 가감 없이 공개하며 소통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디지털 활동이 사회 복귀의 중요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실린 ‘유튜브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 은둔 고립 청년의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은둔 청년들에게 유튜브는 단순한 오락 공간을 넘어 ‘심리적 안전지대’로 기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은둔·고립 청년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5곳의 영상 155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고립을 택한 배경에는 생애 전반에 걸친 ‘복합적 외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다수 사례에서 아동·청소년기에 경험한 가족 해체, 빈곤, 학교 폭력, 정서적 방임 등이 확인됐다. 한 유튜버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프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며 “왕따를 당해도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말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성인이 된 후 겪은 좌절도 결정타가 됐다. 취업 실패, 권고사직, 연인과의 이별 등 청년기에 겪은 부정적 사건들은 이들을 더욱 깊은 침잠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경험은 무기력과 대인 기피, 자기 혐오로 이어졌고 결국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
가면 벗고 상처 드러내는 ‘디지털 고백’
‘약한 연결’의 힘…댓글 응원에 편의점 알바 도전까지
주목할 만한 점은 오프라인 세상과 단절된 이들이 유튜브라는 개방된 공간에서는 오히려 솔직해진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를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찾은 은둔자의 디지털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물리적 대면이 없는 온라인 공간은 이들에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안전지대였다. 유튜버 A씨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세상으로 접속할 때 편안한 마음이 된다”며 “나를 꾸미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영상을 통해 자신의 은둔 생활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고 과거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는 ‘자기 서사’ 과정을 거쳤다. 연구팀은 “자기 노출은 외상 사건과 관련된 부정적 정서를 감소시키고 자신을 객관하해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치유의 과정이 된다”고 설명했다.
불특정 다수와의 ‘느슨한 연결’은 실제적인 변화도 이끌어내고 있었다. 구독자들이 남기는 응원과 공감의 댓글은 고립된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지지체계가 됐다.
유튜버 B씨는 “사람들이 댓글로 따뜻하게 토닥여 주는 것을 보고 많이 울었고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호작용은 규칙적인 기상, 운동, 식습관 개선 등 일상의 루틴을 회복하는 동력이 됐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자신감은 오프라인 사회 참여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유튜버는 구독자의 제안으로 편의점 일일 아르바이트를 체험하거나 봉사활동을 계획하는 등 단계적인 사회 적응 훈련을 시도했다. 온라인에서의 약한 연결이 실제 사회를 돕는 실질적 자원이 된 셈이다.
보고서는 “은둔 청년들의 회복 과정은 선형적이지 않고 성장과 후퇴를 반복한다”며 “이들의 디지털 활동을 단순히 인터넷 중독이나 도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한 과도기적 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향후 정책은 이들을 무조건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점진적으로 사회와 연결되도록 돕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