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줌인] "남들은 벌써 저만치 갔는데"…청년층, '비교 피로'에 지쳤다
[트렌드줌인] "남들은 벌써 저만치 갔는데"…청년층, '비교 피로'에 지쳤다
  • 오정희
  • 승인 2026.01.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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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속 성과 경쟁에서 벗어나 '나만의 템포' 되찾기 나서

"새해가 밝았는데 목표를 세우지 않았어요. SNS를 켜면 다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벌써 실천하고 있더라고요. 저만 출발선에서 허둥대는 것 같아 스마트폰 켜기가 두려워졌어요"

서울 마포구에서 직장인 김모(29)씨의 고백이다. 새벽 5시 기상, 영어 공부, 헬스장 등록, 부업 시작… 새해가 되면 SNS 타임라인은 화려한 목표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김씨처럼 이런 '성과 경쟁'에 피로감을 느끼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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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것도 죄책감"…자기착취에 빠진 청년세대


청년세대의 피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한다.

베를린예술대의 한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성과 사회'로 규정했다. 과거 "하면 안 돼"라는 금지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넌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과잉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할 수 있다'는 구호가 개인을 끊임없는 자기착취로 내몬다는 점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나의 노력 부족'이 되고, 쉬는 것조차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청년들은 이런 압박에 더 취약하다. 이모(32)씨는 "집에 와서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고, 주말에 늦잠 자면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며 "혼자 살다 보니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감시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해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69%)이 번아웃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자기착취'의 결과로 분석한다.


뇌과학이 말하는 쉼의 필요성


"그래도 쉬면 뒤처지잖아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반문한다. 하지만 뇌과학은 정반대의 답을 제시한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마커스 라이클 박사 연구팀은 사람이 멍하니 있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다.

DMN은 단순히 쉬는 게 아니라 정보를 정리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샤워나 산책 중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반대로 쉼 없이 정보를 계속 집어넣으면 뇌는 과부하에 걸린다. 실리콘밸리 컨설턴트 앨릭스 수정 김 방은 책 '일만 하지 않습니다'에서 "휴식은 일의 반대말이 아니라 일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SNS 속 비교 경쟁, 행복을 위협한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조급함이 심화되는 이유로 'SNS 비교 문화'를 지목한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제시한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능력을 가늠한다. 문제는 SNS에서 이뤄지는 비교가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심리학의 '자기결정성 이론'은 행복의 핵심 요소로 '자율성'을 꼽는다. 내가 내 삶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할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는 삶은 자율성이 아닌 타율성에 기반한다.


청년들, '나만의 속도' 찾기 시작


최근 일부 청년들 사이에서 이런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박모(27)씨는 "올해부터 '에너지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며 "하루 중 내가 언제 가장 집중이 잘 되는지 기록하면서 나만의 리듬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새벽에 일어난다고 해서 따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의 '닉센(Niksen)' 문화도 주목받고 있다. 닉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네덜란드어로, 생산성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멍 때리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회사원 정모(31)씨는 "하루 15분씩 소파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며 "처음엔 불안했지만 이 시간이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여줬다"고 전했다.


'빨리빨리'에서 '나답게'로


2026년 새해, 화려한 목표 대신 '내 속도로 살기'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남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사회가 강요하는 '빨리빨리'가 아닌 자신만의 템포를 찾아가고 있다.

한 심리 상담사는 "진짜 열심히 산다는 것은 빠르게 달리는 게 아니라 내 호흡에 맞춰 가는 것"이라며 "올해는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나답게' 살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보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혼삶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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