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은 14개국 약 700개 기업이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전시회에서는 각 사가 무엇을 전면에 내세우는지를 보면 앞으로 2~3년의 사업 방향을 볼 수 있다.
올해 키워드는 전기차가 아닌 'AI·로봇'으로 압축된다. 현장에서 눈에 띄는 곳을 짚어봤다.
주용락 삼성SDI 연구소장(부사장)은 '인터배터리 2026'의 부대 행사인 '더배터리컨퍼런스(The Battery Conference)'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배터리는 이제 전기차를 넘어 ESS, 로봇, UAM의 미래를 이끄는 핵심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 드디어 '실물'로 꺼냈다
삼성SDI 부스 슬로건은 'AI thinks, Battery enables'였다. AI가 상상하는 것을 배터리가 현실로 만든다는 뜻인데, 이 말을 가장 잘 보여준 제품이 전고체 배터리 샘플이다.
가장 눈길을 끈 건 피지컬 AI용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 샘플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내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로봇·항공시스템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고체 배터리는 인터배터리에서 해마다 등장해온 기술이다.
하지만 올해는 기존과 달리 파일럿 라인이 실제로 돌아가고, 양산 일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도 공략했다. UPS용 각형 배터리 'U8A1'은 비상 전력 공급은 물론 전력 품질 안정화 기능까지 탑재했다. BBU용 초고출력 원통형 배터리는 정전 발생 시 저장 대기시간을 기존 대비 50% 이상 늘렸다. 두 제품 모두 AI 데이터센터 전용으로 개발됐다.
ESS 분야에서는 일체형 솔루션 '삼성배터리박스(SBB)' 풀라인업을 전시했다. 관람객이 SBB 1.5 내부 구조와 모듈 내장형 직분사(EDI) 시스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AI 기반 배터리 건강 진단 소프트웨어 '삼성배터리인텔리전스(SBI)'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국내외 1400개 이상의 ESS 사이트 데이터를 학습해 이상 셀을 사전에 탐지하는 방식이다.
또 이번 어워즈 수상작인 '700Wh/L 고에너지 각형 배터리'는 각형 셀 최초로 700Wh/L 초고에너지밀도와 최고 출력 4000W를 구현했다. 부스 한편에는 엄재원 작가와 협업한 팝아트 작품도 전시됐다.
SK온: '팩'까지 만든다, 포트폴리오 확장 선언
SK온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CTP 통합 패키지 솔루션'이다. 기존에 셀·모듈 단위 제품을 공급하던 것에서 팩 단위까지 직접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파우치 CTP, 대면적 냉각기술(LSC) CTP, 파우치 통합 각형 팩, CMP 패키지 4종을 한 자리에서 선보였다. 파우치 CTP는 모듈을 없애고 셀과 팩을 통합한 구조로 에너지 밀도를 높이면서 제조 원가를 낮췄다. 이미 지난해 배터리 팩 단위 제품 검증을 마쳤고 2027년 상업 생산이 목표다.
대면적 냉각기술(LSC) CTP는 파우치 셀의 넓은 면 전체에 냉각 플레이트를 직접 결합하는 방식으로, 기존 간접 냉각 대비 냉각 성능을 최대 3배까지 끌어올렸다. 2028년 상업 생산을 추진 중이다.
또 파우치 통합 각형 팩은 알루미늄 각형 케이스에 파우치 셀을 직접 감싸 모듈을 없앤 구조로, 이 역시 2028년 양산 목표다.
눈길을 끈 건 SK엔무브와의 협업이었다. 절연성 플루이드를 팩 내부에 직접 순환시켜 배터리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액침냉각 팩 모형을 선보였다. 차량 하부 모형에 직접 적용한 형태로 전시해 직관성을 높였다. 업계에서는 액침냉각 기술이 전기차를 넘어 ESS, 데이터센터, 선박, UAM 등으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7분 만에 충전이 가능한 초급속 충전 기술 'HYPER FAST 배터리'도 공개했다.
LG에너지솔루션: 가장 넓게, 가장 많이
LG에너지솔루션은 참가 기업 중 최대 규모인 약 540㎡ 전시관을 마련했다. 자율주행 로봇, 혈액 수송용 드론, 큐브위성용 배터리를 비롯해 전기차·ESS에서 로보틱스·드론·AI 데이터센터로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을 전시 구성 그대로 보여줬다.
LFP 기반 'JF2 DC LINK 5.0 전력망용 ESS'는 이번 인터배터리 어워즈 배터리 부문에서 수상했다. 더불어 데이터센터용 UPS 랙 시스템과 BBU 솔루션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전고체 배터리도 공개 대열에 합류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서울 마곡 R&D 캠퍼스에서 10Ah급 이상 전고체 배터리 셀 시제품을 완성했고, 충북 오창공장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가장 넓은 포트폴리오 폭을 선보이며, 뚜렷한 한 방보다 전 방위 확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LS일렉트릭: 배터리를 만들지 않는 기업이 배터리 전시회에 나온 이유
배터리 셀을 만들지 않는 LS일렉트릭이 이번 전시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계열사 6곳을 포함해 7개 사가 45부스(406㎡) 규모로 공동 참가했다. 전시 주제는 '배터리 산업의 시작과 끝, LS가 함께합니다'였다.
LS일렉트릭이 내세운 건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 '올인원 ESS 플랫폼'과 산업용 모듈형 ESS 솔루션 'MSSP', 직류 배전 운영 플랫폼 'DC 팩토리 솔루션'이었다. 배터리 자체가 아니라 배터리가 작동하는 인프라 전체를 다루겠다는 포지셔닝이다.
LS머트리얼즈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피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속 충·방전 솔루션 '울트라캐퍼시터'를 선보이면서, 셀과 모듈을 하나로 합친 일체형 제품 '셀듈(Celldule)'을 처음 공개했다. LS사우타는 AI 영상 분석 기반 배터리 화재 감시와 소규모언어모델(SLM) 기반 배터리 정밀 진단을 통합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관리 솔루션을 내놨다.
배터리 생태계에서 셀 기업이 아닌 곳이 얼마나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인터배터리가 보여준 것
전기차 캐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배터리 3사와 인프라 기업들이 보여준 건 '기다림'이 아니라 '전환'이었다. 전기차 대신 로봇, 데이터센터, 직류 인프라. 새 수요처가 구체적인 기술과 제품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이번 어워즈를 통해 K-배터리가 양적 확장을 넘어 기술 중심의 질적 경쟁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전시장 분위기도 그 말을 뒷받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