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 인터뷰] '통·번역 N잡러는 어떤 일을 할까?' 통·번역사 이지민 인터뷰
[N잡 인터뷰] '통·번역 N잡러는 어떤 일을 할까?' 통·번역사 이지민 인터뷰
  • 이수현
  • 승인 2023.08.01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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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 열풍이 불면서 기존에 해 오던 일과 다르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이 자연스럽게 N잡 타이틀과 연결되는 이들도 많다.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민 통역사도 N잡러를 목표로 일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통·번역 분야의 N잡러로 일하게 됐다고 말한다.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통·번역 일을 어떻게 시작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는지, 그리고 직접 경험을 통해 느낀 N잡러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봤다.

Q. 안녕하세요 지민 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문화예술계에서 영어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민입니다. 저는 유명 소설가, 물리학자, 경제학자를 통역했고, 연극, TV쇼, 책, 한국 웹툰 및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 업무인 통·번역 외에 수출용 영어 홍보자료를 제작하거나 번역을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이지민 제공
ⓒ이지민 제공

Q. 통·번역을 하고 계신데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주로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고 계신지 알려주세요.

저는 전문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고, 학교에서 다양한 통번역 기술을 배운 후 졸업과 동시에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번역과 통역을 하지만, 최근에 제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문화 콘텐츠’입니다. 한국 문학, 영화, 그래픽 노블, 웹툰, K팝 콘텐츠 등을 영어로 옮기고 있습니다.

 

Q.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이다 보니 생소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한 N잡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통·번역은 분야에 따라서 업무의 성격이 천차만별인데요. 엄밀히 따지면 말을 전달하는 통역과 글을 옮기는 번역은 업무 특성과 요구되는 자질 또한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같은 번역 업무라 할지라도 가독성이 중요하고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자막 번역과 원문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살려야 하는 출판번역도 전혀 다른 작업처럼 느껴지곤 해요. 그런 면에서 제 스스로를 통·번역 N잡러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N잡러를 목표로 다양한 일들을 직접 찾아 나선 건 아니에요. 저에게 주어진 통·번역 업무를 성실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클라이언트로부터 새로운 일을 제안받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테면, 영어 통역을 하다가 자연스레 영어 인터뷰 사회자 역할 요청을 받고, 번역을 하다가 영어 홍보물까지 제작하게 됐어요. 번역한 내용을 소소하게 SNS에 기록했다가 웹툰 번역 강의를 요청하는 DM을 받아 온라인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일들이 저를 찾아와서 참 감사하고 신기해요.

ⓒ이지민 제공
ⓒ이지민 제공

 

Q. 통·번역 N잡은 보편적이지 않은 만큼 일을 구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는데요. 통·번역 일을 구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통·번역사로 커리어를 막 시작할 때(대학원 재학시절)는 통·번역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직접 구인사이트의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렇게 일하면서 알게 된 담당자들이 감사하게도 저를 다시 찾아준 덕분에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 동료 통·번역사들의 소개로 뜻밖의 새로운 일도 맡을 수 있었고요.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은, 이미 저와 많이 일해본 클라이언트들과 그분들의 소개를 통해 일을 받는 편이에요. 추가로, 최근에는 SNS DM이나 이메일로 업무 의뢰나 문의를 받기도 합니다.

 

Q.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N잡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지민님이 생각하는 N잡의 장단점을 이야기해주세요.

분명 N잡이 적성에 맞는 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분이 있는 것 같아요. 관심사가 다양하고 새로운 일을 통해 성취감과 활력을 얻는 분들에게 N잡을 추천해요.

우선, N잡의 장점은 일이 지루해지거나 일로 인해 권태감을 느낄 일이 비교적 적다는 것인데요. 보통 한 가지 일만 반복해서 하다 보면 점차 일에 대한 흥미를 잃고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다양한 일을 하면, 한 가지 일이 지겨워지거나 그 일 때문에 다소 지치는 상황이 오더라도 또 다른 일을 통해서 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새로운 일을 맡으면 설레기도 하고, 다른 성격의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죠.

또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보면 결국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구나’란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기존에 하던 일의 소중함도 새삼 느낄 수 있어요.

가끔은 서로 다른 업무가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때도 있어요. 이를 테면, 저는 통역을 하던 중 새로 알게 된 단어를 번역에 활용한 적이 있어요. 혼자 집에서 책이나 인터넷 검색만 했다면 절대 떠올릴 수 없었을 표현이었죠.

ⓒ이지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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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N잡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어느 한 가지 일에 능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지기도 전에 다른 새로운 일을 하게 되니까요. 보통 한가지 업무만 맡아서 계속 반복하다 보면 비교적 단기간에 일이 손에 익어 업무에 능숙해지지만, N잡러는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할 수 없다 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스케줄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정신이 없어요. ‘이것저것 다 해낼 수 있을까’란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일을 무사히 잘 처리하고 나면 돌아오는 성취감이 상당히 커요. 다양한 분야에서 인맥을 쌓고 뜻밖의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는 건 덤이고요.

 

Q.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시간관리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지민님의 시간관리 법을 공유해주세요.

담당하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대단한 노하우는 아니지만, 저는 머리가 가장 맑은 오전 시간에는 번역 초안을 작성하는 등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일을 우선적으로 해요. 오후에는 비교적 집중력이 덜 요구되는 일을 처리합니다. 이메일 답변은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오후에 퇴근 전에 처리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팁은, 업무별로 소요되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파악해서, 다음에 비슷한 업무를 맡게 될 때는 그 일에 할애하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갑니다. 어떤 일을 의뢰받으면 곧바로 스케줄러에 기록해두는 건 필수고요.

마지막으로, 체력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 꼭 운동을 해야 해요.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은 필라테스를 하고, 평소에 자전거를 타거나 많이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지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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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하는 양이 방대하다 보니 번아웃이 올 때도 있으실 것 같은데, 해소법이 따로 있나요? N잡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업무가 비교적 적은 날에나 큰 프로젝트를 마감하고 나면 소박하게 리프레쉬하는 시간을 가져요. 주말에는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엄두도 못 내는 맛집 탐방을 평일에 혼자 여유롭게 하거나, 평소에 눈여겨본 카페를 가기도 하죠. 성수기를 피해서 해외로 휴가를 떠나기도 해요.

부득이하게 주말에 일했다면 그 다음주엔 꼭 평일에 하루 쉬려고 노력해요. 집중이 안되는 날에는 억지로 앉아서 시간만 흘려보내기보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갑니다. 기분 전환하며 간단하게 작업하는 것도 업무 효율에 좋아요.

 

Q. 마지막으로 지민님의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유롭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그 이야기를 하셔도 됩니다.

저는 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제 가능성을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제 그릇을 계속 키워나가고 싶어요. 강의를 하거나 독서 모임을 꾸리는 등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활력을 찾는 일들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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