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 8일 자사 뉴스룸에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번 기고문을 지난 1년여간 노 사장이 내놓은 발언들을 함께 보면, 삼성전자의 AI 전략이 '보급 확대'에서 '경험의 질'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I 대중화에서 '나를 아는 AI'로
노 사장은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직후 간담회에서 "지난해 2억대의 기기에 갤럭시 AI를 탑재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올해는 그 두 배인 4억대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이 목표를 다시 두 배로 늘려 "갤럭시 AI를 지원하는 기기 수를 지난해 4억대에서 올해 8억대까지 2배로 늘려 'AI 대중화'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숫자로 보급 규모를 강조해온 흐름과 비교하면, 이번 기고문의 어조는 확연히 다르다.
노 사장은 "가장 중요한 AI는 가장 똑똑한 AI가 아니라, 나를 가장 잘 아는 AI"라고 규정하며 "이 지능이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의 손에 닿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보급 대수라는 정량 지표에서, 얼마나 사용자를 잘 이해하느냐는 정성적 기준으로 강조하는 포인트가 변화한 셈이다.
그 배경에는 AI가 질문에 답하는 도구에서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노 사장은 이에 대해 "AI가 스스로 더 많이 행동할수록, 먼저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짚었다.
디바이스 생태계 전체를 '접점'으로 재정의
기고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모바일폰, 태블릿, 워치, TV, 폴더블, 스마트 글래스를 하나로 묶어 'AI가 사용자를 만나는 접점'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노 사장은 "모바일폰은 하루 종일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고, 태블릿은 우리가 만들고 배우는 시간을 함께한다"며 "워치는 수면과 심박 같은 생체 신호를 읽고, TV와 연결된 홈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맥락을 더한다"고 밝혔다.
이는 스마트폰 단일 기기의 AI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하루 전체 데이터를 여러 기기가 나눠 수집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스마트폰 안에서 AI 기능을 얼마나 많이 넣느냐보다, 여러 기기가 함께 모였을 때 얼마나 완결된 사용자 이해가 가능하냐가 관건이 되는 구도다.
개방 전략, 폐쇄형 생태계와의 차별화 시도
노 사장은 "삼성은 늘 혼자가 아니라 함께를 택해왔다"며 스마트싱스를 통한 개방형 연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바꾼 플랫폼은 가장 닫힌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장 잘 열린 것이었다"는 표현을 썼다.
다만 노 사장은 "우리는 뛰어난 지능을 단지 얹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개방성과 동시에 삼성이 경험 설계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개방과 통제라는, 얼핏 상충하는 두 원칙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신뢰 원칙과 데이터 주권
보안·신뢰 관련 언급도 구체적이다. 노 사장은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AI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마지막 결정은 언제나 사람에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로 기기 간 연결을 보호하는 삼성 녹스와, 데이터를 기기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퍼스널 데이터 엔진을 제시했다. 에이전트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결제·예약 등 실질적 행동을 수행하는 단계로 갈수록, 데이터가 기기를 벗어나지 않는 온디바이스 처리 방식은 보안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사용자 신뢰를 확보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할 전망이다.
오는 22일 언팩에서 확인될 것들
'갤럭시 언팩 2026'이 오는 2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이며, 폴더블 신제품 공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노 사장은 "다가오는 갤럭시 언팩에서 그 다음 단계를 보여드리려 한다"고만 밝혔다.
기고문에서 폴더블을 "접으면 손안에 들어오고 펼치면 더 넓은 무대가 되는" 기기로 소개하며 스마트 글래스로 이어지는 폼팩터 확장을 언급한 만큼, 이번 언팩에서 폴더블과 에이전틱 AI 기능이 어떻게 결합되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