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그룹이 몸집을 줄이고 있다. 건설은 외형을 축소하며 수익성 방어에 집중하고, 석유화학은 업황 부진 속 스페셜티 일부만 선방하는 상황에서, DL은 앞서 매각을 추진해온 알짜 화학사 카리플렉스에 이어 자동차 부품 계열사 DL모터스까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50년 된 자동차 부품 사업, 매물로
최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DL그룹 지주회사 DL㈜은 DL모터스의 매각을 타진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론되는 매각가는 1000억원 중반대 내외다.
DL모터스는 1978년 설립된 대림공업이 전신이다. 한때 이륜차사업부(옛 대림오토바이)가 국내 오토바이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으나, 2018년 이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2020년 AJ그룹에 넘긴 뒤로는 자동차 부품 제조에 집중해왔다. 현재는 경남 창원 본사·공장에서 알루미늄 다이캐스팅과 정밀가공 기술로 엔진·트랜스미션 부품을 만들어 현대차그룹 등에 공급하는 회사로 남아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매각 추진 배경이 짐작된다. DL모터스는 매출 3451억원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60억원에 그쳐 영업이익률이 2%에도 못 미쳤다. 내연기관 부품에 전기차 부품을 더해 포트폴리오를 넓혔음에도 완성차업체발 단가 압박과 업계 경쟁 심화 속에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결과로 보인다.
건설은 벌고, 화학은 잃었다
그룹 전체 실적을 계열사별로 뜯어보면 온도차가 뚜렷하다. 건설 계열사 DL이앤씨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7조4024억원, 영업이익 3870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2.8% 늘었다. 영업이익률도 3.3%에서 5.2%로 개선됐고, 부채비율은 84%로 큰 폭으로 낮아졌다. 주택·건축 부문에서 원가율 관리를 강화하고 리스크 중심으로 수주를 선별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반면 지주사 DL㈜의 연결 실적은 뒷걸음질쳤다. DL㈜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5조3267억원, 영업이익 2978억원을 기록해 각각 전년 대비 5.1%, 27.8% 줄었고, 순손실 917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건설이 벌어들인 이익을 석유화학 부문 부진이 갉아먹은 셈이다.
여천NCC 부채비율 223%, 반복되는 출자
석유화학 부진의 배경에는 중국발 공급과잉에 따른 범용 제품 업황 침체가 있다. DL케미칼이 지분 50%를 보유한 여천NCC는 부채비율이 올해 1분기 말 기준 223%까지 올라 정부 주도 구조조정에 참여하고 있다. DL㈜은 DL케미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2021년 4500억원, 지난해 1778억원을 출자한 바 있다.
다만 스페셜티 제품을 중심으로 회복 조짐이 나타났다. 2025년 4분기 의료용 이소프렌(IR) 라텍스를 생산하는 카리플렉스는 싱가포르 신공장 가동이 안정화되며 영업이익 20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22% 급증했고, 자회사인 미국 석유화학 기업 크레이튼도 원가 절감 효과로 손익이 전분기 대비 216억원 개선됐다.
이에 DL㈜ 전체 영업이익도 4분기 111억원으로 흑자 전환했고,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1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 늘었다. 다만 이는 연간 적자를 벗어나기 위한 반등의 초입일 뿐, 2024년 수준(연간 영업이익 4141억원)을 회복한 것은 아니다.
알짜 화학사마저 매물로 나온 이유
DL그룹은 2020년 미국 크레이튼으로부터 카리플렉스 사업부를 약 6200억원에 인수했고, 2022년에는 크레이튼 본사를 2조원 안팎에 사들이며 스페셜티 제품군을 강화한 바 있다.
카리플렉스는 수술용 장갑 소재 등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는 알짜 자회사임에도 매물로 나온 배경에는 DL케미칼 자체의 재무 부담이 있다. DL케미칼의 부채비율은 2021년 말 78%에서 350% 이상으로 치솟았는데, 여천NCC 부진과 크레이튼 인수에 따른 자금 부담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카리플렉스 매각 주관사로는 UBS가 선정됐으며 거론되는 희망 매각가는 1조5000억원에서 2조원 수준으로, KKR·블랙스톤 등 글로벌 사모펀드가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한편 이번 사업 재편은 그룹 연결 실적이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서, 당장 현금을 만들어 재무 여력을 확보하려는 방어적 군살빼기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두 매각이 마무리되면 DL그룹은 최대 2조원대 초반의 현금을 확보해 여천NCC 등 부실 계열사 지원이나 재무구조 개선에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카리플렉스 매각이 성사되면 연간 400억~5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자회사가 함께 연결 실적에서 빠지게 되는 만큼, 당장 현금을 얻는 대신 앞으로의 이익 기반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도 함께 짚어볼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