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아직인데 불안이 먼저”...AI가 바꾸는 노동자의 선택 
“해고 아직인데 불안이 먼저”...AI가 바꾸는 노동자의 선택 
  • 김다솜
  • 승인 2026.08.11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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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자일수록 실직 가능성 높게 예상
채용·고용 감소 뚜렷하지 않고 생산성·임금은 상승
기술 충격보다 소비·부채·직업 선택 변화 가능성 

생성형 AI가 노동시장에 빠르게 들어오면서 실제 일자리 감소보다 노동자들의 불안과 행동 변화가 먼저 나타나고 있다. 현재까지 AI 활용도가 높은 직종에서 채용이 줄거나 해고가 늘었다는 뚜렷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AI를 자주 사용하는 노동자일수록 자신의 일자리가 대체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은행 워싱턴주재원이 최근 미국경제연구소(NBER) ‘Summer Institute 2026’에서 발표한 연구들을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들은 향후 2년 안에 AI로 직장을 잃을 확률을 평균 20%로 예상했다. 기존 노동시장 설문에서 조사된 일반적인 연간 예상 실직 확률(16~18%)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노동자의 예상 실직 확률은 25%로, AI를 사용하지 않는 노동자(18%)보다 높았다. 주당 AI 사용 시간이 10시간 늘어날 때마다 실직 우려도 3.2%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서도 인식이 엇갈렸다. 글쓰기 초안 작성이나 추론을 돕는 용도로 AI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을 AI를 생산성을 높이는 보완 도구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기술 설계와 프로그래밍 등 기술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업무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대적으로 컸다. 

하지만 이같은 불안이 아직 실제 고용 감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 생성형 AI 활용도가 높은 직업에서도 구인 공고와 고용 수준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줄지 않았다. 기업의 해고 증가나 노동자의 비경제활도인구 이탈 역시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AI가 업무 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먼저 관찰됐다. 동일한 직업을 완료하는 데 AI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약 90분이 걸린 반면 AI 활용 시에는 평균 30분가량이 소요됐다. 업무 시간이 약 3분의 1 줄어드는 것이다. AI 활용도가 높은 직업에서는 임금도 소폭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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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지기 전, 가계의 행동부터 달라진다 

보고서가 주목한 지점은 실제 해고 여부만이 아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주관적 인식만으로 노동자의 직업 선택과 가계 소비, 부채 관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운전자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로봇택시가 운행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자율주행차 도입 이후 상업용 대형 운전면허 취득 비중이 이전보다 0.6~1.0%p 감소했다. 

자율주행차가 직접 운행되지 않는 뉴욕에서도 소셜미디어와 지인 관계망 등을 통해 관련 기술에 많이 노출된 지역일수록 상업용 운전면허 취득 비중이 낮았다. 특히 고용 대체 위험에 민감한 42세 이하 연령대에서 감소 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실직 위험을 크게 인식한 운전자들은 현재의 노동 공급을 늘리는 대신 장기 부채는 피했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인식이 높은 지역의 트럭 운전자는 주당 근로 시간을 약 1% 늘렸지만 주택담보대출 보유 비중은 감소했다. 미래 소득이 끊길 가능성에 대비해 당장 더 일하고 장기적인 금융 부담은 줄이려는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변화는 기술 도입과 고용 감소 사이에 예상보다 복잡한 경로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해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노동자가 특정 직업 진입을 포기하거나 소비와 대출을 줄이며 노동시장과 가계경제에 선제적인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보고서는 AI와 노동자가 보완 관계를 유지하는 한 대규모 장기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AI 비용이 90% 하락하고 활용 규모가 9배 증가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에서도 향후 20년간 장기 실업률은 6.5% 이내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AI가 스스로 만든 데이터만으로 반복 학습하면 성능이 저하될 수 있어 모델 개선을 위해서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데이터가 계속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술 확산 기간에 노동자들이 자동화하기 어려운 기술을 습득하고 새로운 업종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반영됐다. 

문제는 전환 과정의 속도와 비용이다. 연구진은 기업 이윤과 판매액의 0.7%를 재원으로 적립해 완전자동화로 실직한 노동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AI 보험기금’ 도입을 제안했다. AI가 당장 일자리를 대거 없애지 않더라도 불안이 소비와 부채, 직업 선택을 흔들 수 있는 만큼 고용지표뿐 아니라 노동자의 인식과 전직 과정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