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업계에 인수합병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증권사나 저축은행을 거느린 금융지주가 보험 라이선스를 확보하려는 흐름과, 반대로 보험사가 손해보험·저축은행 등을 모아 종합금융그룹으로 몸집을 키우려는 흐름이 보이고 있다.
가장 앞서가는 곳은 한국투자금융지주다. KDB생명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보험업 진출을 눈앞에 뒀다.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을 제친 한투는 최대 1조원가량의 증자 계획을 매각 측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며, 보험상품 판매로 확보한 장기자금을 증권·자산운용 계열사의 투자 역량과 연결하는 이른바 '한국판 버크셔해서웨이' 모델을 목표로 내걸었다.
다만 KDB생명은 경과조치를 제외한 기본자본 지급여력비율이 마이너스 상태여서, 인수 이후 자본 정상화 속도가 시너지 실현의 관건으로 꼽힌다. 한투는 그동안 카디프생명과 예별손보, 롯데손보까지 두루 검토하며 보험사 매물마다 이름을 올려왔는데, 두 매물의 인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최근에는 KDB생명 인수전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예별손해보험(구. MG손해보험) 매각은 이미 결론이 났다. 지난 4월 첫 본입찰에서는 한투지주만 홀로 참여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지만, 재입찰에는 한투지주와 OK금융그룹, 흥국화재, JC플라워 4곳이 최종 인수제안서를 냈고 지난 7월 10일 OK금융그룹 계열사 오케이넥스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OK금융은 이미 저축은행과 캐피탈을 보유한 상태에서 손해보험까지 더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예금보험공사와의 배타적 협상기간 동안 본계약 체결과 금융당국 심사, 자본 확충 방안 협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롯데손해보험을 둘러싼 경쟁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신한금융지주가 대주주 JKL파트너스와 한 달가량 단독 협상을 벌였지만 기업가치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최종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융은 지난 4월 발표한 '밸류업 2.0' 정책에 따라 보통주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크다는 점이 협상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JKL파트너스는 경쟁입찰 방식의 공개매각으로 전환해 8월 중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며, 신한금융지주와 한투지주가 다시 잠재 원매자로 거론된다.
다만 JKL파트너스가 희망하는 매각가(1조5000억원대)와 시장이 보는 적정가(7000억원 안팎) 사이의 간극이 커, 몸값 눈높이를 좁히지 못하면 매각이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명보험업계 1위 교보생명의 행보도 눈에 띈다. 교보생명은 악사손해보험 인수를 추진하며 자문사 선정 절차를 밟고 있다. 악사손보는 교보생명이 2001년 인수해 교보자동차보험으로 운영하다 2007년 프랑스 악사그룹에 경영권을 넘긴 회사로, 거래가 성사되면 20년 가까이 지나 다시 교보그룹으로 돌아오게 된다.
교보생명은 올해 초 SBI저축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교보악사자산운용 지분을 추가 취득해 완전자회사로 만든 데 이어, 예별손보 인수 실사에도 참여하며 손해보험·저축은행·자산운용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KDB생명 인수전에는 예비입찰 이후 본입찰에 불참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생명보험 본업에서는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되 손해보험 라이선스 확보에 힘을 싣겠다는 선택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행보가 교보생명이 추진해 온 금융지주사 전환과 기업공개 재추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매물마다 원매자가 겹치는 이유는 업계 전반의 공통된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신규 계약을 통한 외형 성장이 갈수록 어려워졌고, IFRS17 도입 이후에는 보험계약마진 중심의 수익성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자체 성장보다 인수를 통한 몸집 키우기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내년부터 기본자본 신지급여력제도(K-ICS) 규제가 시행되면 인수 가격보다 인수 이후 추가로 투입해야 할 자본 부담이 더 커질 수 있어, 자본 여력이 인수 성사 여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세 매물 모두 자본건전성 개선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예별손보는 이미 새 주인을 찾았지만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남았고, KDB생명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실사와 자본 정상화가 관건이며, 롯데손보는 아예 원매자 구도가 다시 짜이는 국면이다.
여러 매물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원매자가 적지 않았던 만큼, 앞으로 실사와 가격 협상 과정에서 후보들의 셈법이 또 한 번 갈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