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의 다용도실이나 차고 벽에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온수기가 걸려 있다. 물탱크를 데워 두는 대신 필요할 때만 물을 데우는 방식인데,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이름 가운데 하나가 한국 회사 경동나비엔이다. 경동나비엔은 2025년 실적에서 해외 매출은 1조438억원, 전체의 약 70%였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해외에서만 1조원을 넘겼다.
그런데 지금 이 회사가 파는 물건은 보일러와 온수기만이 아니다. 주방 레인지와 오븐, 환기청정기, 전기로 열을 옮기는 히트펌프까지 목록에 올라 있다. 집 안의 온도를 다뤄온 회사가 집 안의 공기 전체로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연탄에서 보일러로 갈아탄 판단
시작은 연탄이었다. 경동나비엔 창업주 손도익 명예회장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무산연탄을 세웠고, 연탄에서 석유로, 다시 가스로 넘어가는 에너지 흐름을 읽고 1978년 경동기계를 설립해 보일러로 업을 옮겼다. 이듬해 평택공장을 세우고 사각형 소형 보일러를 내놓았으며, 1991년 사명을 경동보일러로 바꿨다.
기술이 시장보다 30년 앞섰다
1988년 회사는 네덜란드 네피트와 기술 제휴를 맺고 아시아 최초로 콘덴싱보일러를 개발하고, 1998년에는 스테인리스 콘덴싱 열교환기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다만 배기 열을 회수해 효율을 높인 이 제품은 값이 비싸 한동안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판이 바뀐 것은 규제였다. 2020년 4월 대기관리권역법이 시행되면서 대기관리권역 안에서는 가정용 친환경 콘덴싱보일러 설치가 의무가 됐다. 30년 넘게 밀고 있던 기술이 국내 표준의 자리로 올라선 것이다.
'나비엔'이라는 이름으로 태평양을 건너다
2006년은 사명을 경동나비엔으로 바꿨고, 같은 해 미국에 첫 해외법인을 세웠다. 나비엔(Navien)은 길잡이(Navigator)와 환경(Environment), 에너지(Energy)를 합친 이름이다.
미국은 물탱크형 온수기가 표준인 시장이었지만, 경동나비엔은 콘덴싱 순간식 온수기로 파고들어 현재 북미 콘덴싱 온수기 시장 1위에 올랐다. 2023년에는 업계 처음으로 5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고, 지금은 7개 해외법인을 통해 50여 개국에 제품을 내보내고 있다.
실적은 다시 한 단계 올라섰다
경동나비엔 2025년 연결 매출은 1조5022억원, 영업이익은 1434억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11%, 8.7% 늘었다. 상승세는 올해 더 가팔라졌다.
2026년 2분기 매출은 3923억원, 영업이익은 5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5%, 73.7% 증가했고, 상반기 누적으로도 매출 7574억원, 영업이익 906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관세에 대비한 선제 대응과 공급망 다변화, 미국의 친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고효율 제품 수요를 배경으로 꼽았다.
주방으로 넓힌 영토, 나비엔 매직
경동나비엔은 최근 주방으로 영역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2024년 SK매직의 가스·전기레인지와 전기오븐 영업권을 인수했고, 2025년 3월 주방가전 브랜드 '나비엔 매직'을 선보였다.
난방과 온수에서 조리 기구로, 취급 범위가 한 층 더 넓어졌다.
3세 손흥락 부회장이 받아 든 과제
세대교체도 진행형이다. 창업주의 손자이자 손연호 회장의 장남인 손흥락 부회장은 2008년 입사해 부사장과 사장을 거쳤고, 2025년 3월 손연호 회장, 장희철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에 선임됐다.
그는 영업·마케팅과 생산·품질을 맡고 있다. 지배구조의 정점인 경동원 지분은 손연호 회장이 27.45%, 손흥락 부회장이 24.00%를 갖고 있어 승계의 토대는 이미 마련돼 있다.
다음 단계는 '생활환경솔루션'
경동나비엔이 내건 다음 단계는 난방기기 제조사를 넘어선 생활환경솔루션 기업이다.
올해 5월 열린 대한민국 기계설비전시회에서는 창문을 열지 않고 환기하면서 실내 온도 변화를 줄인 채 습도만 조절하는 제습 환기청정기 '매직플러스'를 공개했고, 전기로 공기와 물의 열을 끌어오는 히트펌프 보급도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가 난방의 전기화로 방향을 틀면서 히트펌프와 고효율 기기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영역이다.
보일러 제조업은 국내에서 이미 성숙 단계에 들어선 산업이다. 그 안에서 경동나비엔은 규제가 강해질수록 유리해지는 제품군을 30년 넘게 준비해 왔고, 그 준비가 북미 매출과 최근 실적으로 돌아왔다.
이제 회사가 증명해야 할 것은 난방 회사라는 정의를 스스로 넘어설 수 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