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자리한 포티투닷 사옥. 비히클 워크샵(Vehicle Workshop)에 들어서자 양산차와 비슷한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차이가 드러난다. 차량 곳곳에 센서가 달려 있고, 내부에는 고성능 컴퓨터와 각종 제어장치가 들어가 있다.
이곳은 차량이 실제 도로에 나가기 전 소프트웨어를 검증하고, 도로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개발에 반영하는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 현장이다.
현대차그룹은 9월 11일 포티투닷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개최하고, 자율주행 기술 개발 전략과 로드맵, 주요 개발 성과 및 향후 실행 방안을 발표했다.
차를 달리기 전, 먼저 ‘차고’에서 검증한다
포티투닷의 비히클 워크숍에 들어서자 실제 차량을 대상으로 한 개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판교 워크숍 규모는 1818㎡. 성남 수정구에도 9889㎡ 규모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실제 차량에 올려 작동 여부를 확인한다. 차량에 소프트웨어를 넣고 바로 도로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주행에 앞서 ‘스모크 테스트’를 거치며 예상치 못한 오류가 없는지 먼저 확인한다.
현장에서 공개된 아이오닉6 SDV 테스트베드도 일반 차량과는 달랐다. 차량 주변에는 8개의 카메라와 1개의 레이더가 배치됐고, 운전자 상태를 확인하는 DMS 카메라도 장착됐다. 글러브박스 안쪽에는 고성능 차량용 컴퓨터가 자리했고, 트렁크에는 차량의 각 영역을 제어하는 장치가 들어갔다.
차량 한 대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지붕 위 라이다가 도로의 ‘예외’를 찾는다
다시 시선이 향한 곳은 아이오닉5 데이터 수집 차량이었다. 지붕 위에 설치된 라이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차량에는 도로와 주변 환경을 기록하기 위한 각종 센서와 데이터 수집 장비가 탑재돼 있었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운용하는 전용 데이터 수집 차량은 40대 이상이다.
이 차량들이 도로를 달리는 목적은 단순히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당황할 만한 상황을 찾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장에서 예로 든 상황도 일상적인 도로에서 충분히 마주칠 법했다. 도로 가장자리에 세워진 차량,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비보호 좌회전, 복잡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보행자, 좁은 이면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량 등이다.
사람에게는 몇 초면 판단할 수 있는 상황도 자율주행 시스템에는 학습이 필요한 ‘예외 상황’이 된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는 다시 개발 과정으로 들어간다. 예외 상황을 골라내는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Hard Example Mining), 지속적으로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 등이 적용된다. 도로에서 발견한 문제가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다시 AI의 학습 재료가 되는 구조다.
서울 도심을 달리며 확인한 Atria AI
이날 가장 관심이 쏠린 것은 Atria AI의 실제 도심 주행 영상이었다.
영상 속 차량은 판교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지나 동작대교, 숭례문,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서울 도심 구간을 달렸다. 강남과 잠실처럼 차량이 몰리는 구간도 주행했고, 비가 내리는 판교 도로도 시험 대상에 포함됐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평범한 서울의 출퇴근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차와 주변 차량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차선을 바꾸는 차량이 나타났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주정차 차량이 보였다.
하지만 개발진이 바라보는 지점은 달랐다. 이런 평범한 도로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예외 상황을 만나고, 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처리하느냐가 핵심이었다.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은 "자율주행을 피지컬 AI를 대표하는 기술로 설명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양산 역량과 포티투닷의 AI·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해 기술을 고도화하겠다"는 방향을 밝혔다.
특히 박 본부장은 기술 개발 속도와 안전이 서로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많은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상황을 학습할수록 개발 속도와 안전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돌아오는 구조’
현대차그룹이 강조한 숫자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연간 700만대 이상의 판매량이다. 현대차·기아는 190개국 이상에서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다만 이 숫자를 현재 자율주행 학습에 활용되는 차량 규모로 봐서는 안 된다. 지금 실제 데이터 수집을 담당하는 것은 40대 이상의 전용 차량이다.
700만대는 앞으로 차량에서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여기에 3D 가우시안 스플래팅을 활용해 도로 환경을 3차원으로 재현하고, 세계 각지의 데이터를 시간대에 맞춰 활용하는 ‘팔로 더 선(Follow-the-Sun)’ 등의 기술도 개발에 활용된다. 사고나 위험 상황 전후의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는 SER도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방식 중 하나다.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결국 데이터의 양만이 아니었다. 데이터가 얼마나 빠르게 수집되고, 학습과 검증을 거쳐 다시 차량으로 돌아오느냐가 더 중요해 보였다.
2028년 양산, 2029년 Atria AI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양산 기술을 두 방향으로 추진한다.
엔비디아(NVIDIA)와 협력해 개발하는 기술은 2028년 상반기 L2+ 양산을 시작으로 같은 해 하반기 L2++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포티투닷의 Atria AI 기반 L2++는 2029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차량이 주변을 보고 판단하는 것을 넘어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까지 연결하는 VLA(Vision-Language-Action) 기술도 개발 중이다. 현재는 시뮬레이션을 통한 검증이 진행되고 있으며 실제 차량 테스트는 2026년 말부터 2027년 초 사이 시작할 예정이다.
현장을 둘러보고 다시 차량을 바라보니 처음 봤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지붕 위 센서 하나, 차량 안의 컴퓨터 한 대도 단순한 장비가 아니었다. 도로에서 얻은 한 장면을 데이터로 만들고, 이를 AI가 학습한 뒤 다시 차량에 적용하기 위한 장치였다.
한편 자율주행의 시험장은 ‘실제 도로’다. 도로에서 예외 상황을 찾고, 데이터를 학습시켜 다시 차량에 적용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자율주행 경쟁의 다음 기준은 얼마나 많이 달리느냐보다 얼마나 빠르게 배우고 다시 도로에 적용하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