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만에 회장 인감 날인" vs "체계적 은닉 정황"...진실은?
농심그룹 신동원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지정자료에서 39개 계열사를 누락시킨 사건을 두고 '업무 미숙'과 '의도적 은닉' 사이에서 공방이 치열하다.
공정위는 지난달 초 심의를 진행한 후 신동원 회장의 지정자료 허위제출 사건에 대해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이에 해당 사건은 검찰 조사로 넘어갔다.
농심 측은 고의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해당 심의속기록을 보면 공정위의 검찰 고발 근거를 상세히 알 수 있다.
심의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농심 측 해명과 공정위 판단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확인됐다. 특히 자산 규모가 5조원이 넘는 대기업이라고 보기에는 허술한 경영 방식에 지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농심의 해명, "회장님이 30초 만에 날인했다"
공정위 회의록에 따르면 농심 측은 신동원 회장이 지정자료 제출 과정에서 실질적 검토 없이 형식적으로만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농심 대리인은 "회장께 이 내용이 다 보고되는 게 아니고 경영지원실 부사장이 가장 상위 직급"이라며 "인감이나 이런 것들은 이제 회장님한테 이야기를 해야 받을 수 있다 보니까 짧은 시간 내에 '이런 게 있어서 인감을 날인하셔야 된다'라고 하면 인감을 내어줘서 날인하는 그런 구조"라고 설명했다.
농심 측은 신동원 회장에게 보고 하는 시스템이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고 날인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농심이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에는 "급박한 상황에서 충분한 보고 없이 서명을 급하게 받았다, 2022년 이후 자료도 3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정위에서도 이러한 농심 측의 프로세스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담당자 2명이 11년간 관리..."담당자들이 안이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농심의 지정자료 관리 체계다. 회의록에 따르면 농심은 2012년부터 지정자료 제출 대상에 포함됐지만, 담당 인력은 경영지원실 소속 2명에 불과했다. 다만 농심 측은 현재는 조금 달라졌다고 첨언했다.
농심 대리인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되기 전에는 실무자들이 조금 안이했다"며 "공시대상기업집단이 지정되고 나서 약간 이제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움직여진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2023년에 교육 받고 처음 알았다"...11년간 뭘 했나
농심 측의 해명 중 가장 황당한 부분은 교육 이수 관련 주장이다. 농심은 담당자가 2023년 공정위 교육을 받고 나서야 "친족 및 임원회사도 제출 대상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의 위원은 "사실 2012년부터 정식자료 제출 요구를 받았으면 거의 한 11년 정도 기간 동안 매년 교육을 받았을 텐데 이런 설명이 사실 좀 잘 이해는 안 간다"며 의문을 표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매년 기업집단 대상으로 지정자료 제출 요구 공문을 보낼 때 동일인 관련자의 범위나 지배력 요건 등을 상세하게 기재해서 보내고 있고, 정기적으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농심 측은 이에 대해 "담당자들이 조금 안이하게 생각했었던 그런 미흡한 점 때문에 더 나아가서 이 회사들을 발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재차 해명했지만, 장기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농심 측은 "담당하는 부서가 법무팀이 아니라 그냥 경영지원실이라서 법무의 백그라운드를 가지신 분들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법무팀의 역할 부재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알면서도 숨겼다"...의도성 지적
공정위는 농심의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농심이라는 집단은 사실은 예전에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가 자산 기준이 상향되면서 빠졌다가 다시 들어온 집단이라 아주 처음 이 업무를 하는 그런 집단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공정위가 주목한 것은 농심의 '선별적 신고' 행태다. 2021년 전일운수 등 3개 친족회사는 포함시키면서 같은 일가가 지배하는 전일연마, 구미물류 등 다른 친족회사들은 제외한 점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에 심의 위원은 "신동원 회장이 1997년부터 (주)농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는데 이 회사가 계열회사에 해당된다는 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대표이사가 알아야 하는 영역을 알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023년 "계열제외 신청"의 의심스러운 타이밍
공정위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2023년 4월 농심의 행동이다. 농심은 친족회사 10개를 자진 신고하면서도 임원회사 29개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지정자료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4월 17일 8개 친족회사에 대해 "주식매각 등으로 인한 계열제외 사유 발생"을 이유로 계열제외를 신청했다가 7월 24일 신고를 철회한 점이다. 이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5월 1일) 직전의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심의 위원은 "약간 조금 더 네거티브하게 보면 임원회사를 신고하게 되면 어떤 자산 규모나 이런 걸 봤을 때 2021년도 지정에서의 문제가 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입차주 표심용"...임원회사 급증의 배경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임원회사가 29개나 되는 이유다. 농심 측 대리인은 "부산경남지역에서 화물자동차연합회 조합장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 회사마다 표를 한 표 준다고 해서 그 회사를 그렇게 여러 개 설립해서 했다"고 설명했다.
지입차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러 회사를 설립했다는 것인데, 이는 계열사 관리에 대한 의문을 더욱 짙게 한다.
"의도적 회피"가 아니라고 해도 굴욕
대기업이 11년간 2명으로 계열사 관리를 했다는 설명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는 지적이 있으며, 농심 측의 주장처럼 조직 역량 자체가 다른 대기업 대비 떨어지는 측면이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농심에게는 굴욕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농심 측은 "2023년도부터는 조금 더 체계화해서 나름대로 계열회사를 발견하면 저희가 발견하자마자 바로 공정위한테 상의해서 바로 신고하고 조사 나오면 자료도 충실히 다 제출을 했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3년간 지속된 누락 행위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농심은 현재 자산총액 5조원을 넘는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기업 이미지는 물론 해외 진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