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날은 예고 없이 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알게 된다. "아… 오늘은 안 되겠다."
목이 칼로 긋는 것처럼 따갑고, 온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핸드폰 화면을 보려는데 눈알이 뜨거워서 못 뜨겠다. 체온계를 찾을 힘도 없는데, 굳이 재지 않아도 안다. 열이 높이 올랐다는 걸.
1인 가구가 아플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의외로 병명이 아니다. "이거 누가 대신해주지?"라는 생각이다.
약을 사러 가는 것도, 죽을 끓이는 것도, 이불을 하나 더 꺼내는 것도 전부 스스로 해야 한다. 열이 38.5도인데도 휴대폰으로 '근처 약국 영업 중'부터 검색하는 자신을 보며 조금 웃기고, 조금 서럽다.
"나 좀 아픈데…" 말할 곳 없는 현실
친구에게 연락할까 하다가 말았다. 뭐라고 하지? "나 열 나는데 약 좀 사다줘?" 친구들도 각자 바쁘고, 거리도 멀다. 괜히 민폐 끼치는 것 같아서 그냥 메시지창을 닫았다.
엄마한테 전화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전화하는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떨릴 거라는 걸. "어디 아파? 많이 아파? 병원은 갔어?" 그 걱정의 무게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SNS에도, 단체 채팅방에도. 혼자 앓고, 혼자 낫는다. 이게 1인 가구의 아픈 날이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산이 된다
아플 때 혼자 있으면 평소엔 대수롭지 않던 일들이 갑자기 크게 느껴진다.
물 한 컵 따라 마시는 것도 귀찮고, 현관 앞 택배는 다음 생으로 미뤄진다. 쓰레기는 문 앞에 쌓이고, 설거지는 싱크대에 탑처럼 쌓인다. 냉장고까지 5미터가 에베레스트처럼 느껴진다.
가장 힘든 건 약 먹는 타이밍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4시간마다 먹어야 하는 해열제, 하루 세 번 먹어야 하는 항생제. 알람을 맞춰놔도 깨어나기가 힘들다. 그래도 억지로 일어나서 약을 입에 넣고, 물을 억지로 삼킨다.
그렇게 약을 먹고 다시 쓰러지듯 누우면, 천장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약사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해열제와 종합감기약을 산다.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와 죽을 사서 집에 돌아와 물을 끓이고, 약을 먹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맞춘다. '4시간 후 약 먹기'. 휴대폰 화면을 끄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회사 일도, 청소도, 운동도, 식사 준비도. 다 내려놓는다. 오늘 하루는 그냥 아픈 사람으로 살기로 한다.
아프고 나면 조금 달라진다
혼자 아픈 날을 몇 번 겪고 나면 이상한 능력이 생긴다.
몸의 신호를 빨리 읽는 법. 감기 초기 증상이 오면 바로 알아차린다. 목이 조금 간질간질할 때, 몸이 조금 나른할 때, "아, 이거 내일 아프겠다" 싶은 감각.
무리하지 않는 선을 알게 된다. 예전엔 "조금만 더"라고 하며 밤을 새웠다면, 이제는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아프지 않을 때 나를 더 챙기게 되는 태도. 평소에 잘 먹고, 잘 자고,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상비약도 미리 구비해둔다.
오늘 아픈 당신에게
오늘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위로가 아니라, 따뜻한 물 한 컵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휴식이다.
혼자 살아도, 아플 때만큼은 나에게 조금 더 친절해도 된다.
"오늘은 쉬어도 괜찮아"
"내일 하면 돼"
"잘 버텼어"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보자.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에게 해주는 거다.
그리고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을 견디고 있는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혼자 아픈 날은 끝이 있다.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고, 모레는 더 나아질 거다. 그렇게 우리는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