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제조업 거점 쇠락이 수도권 쏠림 ‘기폭제’...거제·구미 등 생산성 급락 영향
“n분의 1 분산투자로는 한계…거점 도시 육성하고 소멸지역 직접 지원해야”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주하는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지방 소멸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는 수도권 1인가구가 급증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 30년간 역대 정부는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이같은 수도권 쏠림 현상은 단 한번의 반전 없이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도시와 세종시 건설 등 인프라 확충에 주력했지만 정작 인구를 붙잡아 둘 ‘생산성(일자리와 부가가치)’ 경쟁에서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완패했기 때문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KDI 포커스(FOCUS): 수도권 집중은 왜 계속되는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의 도시 특성 변화를 분석,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재정 분산이 아닌 거점 도시 위주의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프라 격차 줄어도 ‘소득 격차’는 여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 하드웨어 중심의 투자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분석 결과 지난 15년간(2005~2019년) 수도권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에 달하는 반면 비수도권은 12.1%에 그쳐 격차가 확대됐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같은 자원을 투입해도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의미로, 이는 곧 양질의 일자리와 높은 임금으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수도권 집중 심화를 이끈 핵심 요인이 바로 이 ‘생산성 격차’였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의 교통·주거 환경(인구수용비용)이 개선되고 쾌적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기회 격차가 벌어지면서 인구 유출을 막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세종시의 경우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인프라 여건은 크게 개선됐지만 출범 초기 이후 생산성 증가율은 전국 평균을 밑돌며 인구 유입을 지속시키는 데 한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수도권의 강력한 경제적 흡입력을 상쇄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지방 제조업의 몰락, 수도권 쏠림 ‘기폭제’
특히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된 지방 제조업 도시들의 쇠락은 수도권 쏠림을 가속화한 결정적 원인으로 분석됐다. 거제, 구미, 여수 등 과거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전통 산업도시들은 조선·자동차·철강 등 주력 산업의 부진과 함께 생산성이 급격히 하락했다.
보고서의 시뮬레이션 결과, 만약 이들 산업도시의 생산성이 하락하지 않고 2010년 수준만 유지했더라도 2019년 수도권 인구 비중은 실제보다 2.6%p 낮은 47.2%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방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단순히 지역 내 경기 침체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를 찾는 인구의 이탈과 국가 전체의 인구 지형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균형발전 정책의 패러다임을 ‘인프라 공급’에서 ‘생산성 제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정된 재원을 모든 지역에 골고루 나눠주는 방식으로는 수도권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권역별 거점 도시를 집중 육성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수도권 인구 비중을 2000년 수준인 46%로 낮추기 위해서는 비수도권 7개 주요 거점 도시의 생산성을 현재보다 약 8% 이상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비수도권 내에서의 격차 확대를 일정 부분 용인하더라도 대도시 위주로 공간 구조를 재편해 ‘집적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소도시나 낙후 지역에 인프라를 확충하는 고비용 투자는 지양하고, 대신 해당 지역 주민들이 거점 도시로 이주하거나 현 거주지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소득·복지 지원을 늘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