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조기 퇴직, 구조적 하향 이동 촉발
“정년 연장 넘어 전환기 관리 시급”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지만, 정작 중고령자들은 법정 정년에 도달하기도 전에 생애 가장 중요한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은 노동의 종료가 아니라 저임금·단기 일자리로의 ‘하향 이동’을 알리는 시작점이 되고 있으며 이는 개인의 준비 부족이 아닌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생애 주된 일자리 퇴직의 현실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고령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54.2세로 집계됐다. 이는 법정 정년인 60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대다수의 노동자는 정년을 ‘도달하지 못하는 경계’로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2015년 이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만 50~69세 중고령자 1460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퇴직 사유 중 ‘정년 퇴직’은 24.6%에 불과, 5명 중 단 1명만이 정년 퇴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회사 사정이나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퇴직’은 34.5%였다.
특히 정년퇴직자의 절반 가까이(45.1%)는 중대형 사업장 출신인 반면, 10인 미만 영세사업장 출신은 6.5%에 그쳐 정년제가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전유물로 작동하는 구조적 불평등이 확인됐다.
퇴직 이후 ‘하향 이동’...급격한 소득 하락으로 이어져
퇴직 이후의 삶은 질적인 ‘하향 이동’이 지배적이었다. 주된 일자리에서 상용직이었던 이들의 23.3%가 임시·일용직으로 이동했으며, 사업체 규모 역시 1000인 이상 대기업 비중은 퇴직 전 15.3%에서 퇴직 후 6.0%로 급감했다.
반면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비중은 8.9%에서 13.7%로 늘었다. 직업군 또한 관리·전문·사무직 중심에서 서비스·단순노무직으로 재편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같은 고용의 질 저하는 급격한 소득 하락으로 이어졌다. 임금근로자의 72.2%가 퇴직 전보다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특히 남성 퇴직자의 33.7%는 소득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충격을 경험했다.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퇴직 후 월 순수익이 아예 없다고 답한 비중이 10.2%에 달한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고령층으로 진입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달리 고학력·전문경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재취업 시장에서는 이들의 숙련도가 단순노무직으로 소진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개인의 경력 손실을 넘어 사회적 인적 자본의 막대한 낭비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령층 노동 정책은 단순히 ‘더 오래 일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조기 퇴직을 완화하고 퇴직 이후의 노동이 지속 가능하도록 경로를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