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 긍정적인 선례를 남기기 위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겠다"
넥슨이 지난 24일 아이언메이스를 상대로 상고장을 제출하며 밝힌 입장이다.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이언메이스 역시 "넥슨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믿는다"며 맞상고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다크앤다커(Dark and Darker)' 저작권 분쟁이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하지만 이 소송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법적 공방을 넘어선다.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며 구상한 게임 아이디어는 누구의 것인가. 개발자가 퇴사 후 유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그리고 이 경계선을 어떻게 그어야 게임 산업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
법원의 애매한 판단, "자료는 안 썼지만 영업비밀은 침해했다"
항소심 판결을 보면 묘한 지점이 있다. 법원은 다크앤다커와 넥슨의 'P3 프로젝트'를 상세히 비교한 뒤 "두 게임의 표현 형식은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며 저작권 침해를 부인했다. 게임 자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그런데 같은 재판부는 1심보다 범위를 확대해서 영업비밀 침해는 인정했다. 1심에서 영업비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P3 프로그램, 소스 코드, 빌드 파일'까지 영업비밀로 특정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영업비밀 보호 기간도 2년에서 2년 6개월로 늘렸다.
게임이 다른데 어떻게 영업비밀을 침해한 것인가?
법원이 주목한 것은 물리적 증거가 아니라 정황이었다. 최주현 디렉터가 2021년 6월 넥슨에서 징계해고된 직후 P3팀 인력 50% 이상이 동시에 퇴사했다. 이들은 함께 아이언메이스를 설립하고 P3와 유사한 중세 판타지 FPS 익스트랙션 게임을 개발했다.
아이언메이스는 "2022년 1월과 2023년 3월 두 차례 압수수색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포렌식과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에서 모두 넥슨 자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가처분 법원, 수사기관, 1심 법원 모두 물리적 자료 보유·사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법원은 무엇을 근거로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걸까. 답은 '퇴사 과정의 정황'과 '게임 개발 경험의 활용'이다. 회사 돈을 받으며 P3를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 그 과정에서 얻은 게임 설계 아이디어 자체를 영업비밀로 본 것이다.
15%라는 숫자의 의미
더 흥미로운 건 배상액 산정 과정이다. 항소심은 넥슨의 영업비밀이 다크앤다커 개발에 미친 기여도를 15%로 계산했다. 나머지 85%는 아이언메이스의 독자적 개발 역량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배상액이 1심 85억원에서 2심 5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1심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추정 규정'을 적용해 넥슨이 청구한 금액을 그대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객관적 매출 데이터를 분석해 영업비밀의 실제 기여도를 직접 산정했다.
15%라는 숫자는 이 분쟁의 복잡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원은 다크앤다커가 대부분(85%) 아이언메이스의 독자적 창작물이라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15%는 넥슨에서 얻은 것이라고 본 것이다.
문제는 그 15%가 정확히 무엇인지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스코드를 복사한 게 아니라면, 그것은 결국 '경험', '노하우', '개발 방법론'이다. 한 회사에서 몇 년간 게임을 만들며 배운 것들. 이것을 수치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까지 회사의 영업비밀로 봐야 하는가.
게임 개발자는 머릿속을 포맷하고 퇴사해야 하나
아이언메이스는 "최주현 대표는 중세 판타지 장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오랜 기간 선행 게임을 연구해왔다. 넥슨 입사 전부터 쌓아온 개인의 경험과 아이디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넥슨은 "회사가 급여를 주고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P3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된 아이디어다. 그 과정에서 회사의 투자와 조직의 협업이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문제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자 A씨가 B회사에서 5년간 MMORPG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 과정에서 A씨는 레벨 디자인 노하우, 밸런스 조정 감각, 유저 심리 이해 등을 체득했다. 이것은 A씨 개인의 역량이다. 하지만 동시에 B회사의 투자로 쌓은 것이기도 하다.
A씨가 퇴사해서 C회사로 이직하거나 스타트업을 차렸다. 당연히 지난 5년간 배운 것을 활용해 새 게임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게임이 B회사에서 만들던 것과 장르가 같다면? B회사는 "우리 돈으로 쌓은 노하우를 가져갔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논리가 관철되면 게임 개발자는 이직할 때마다 새로운 장르로 가야 한다. MMORPG 개발자는 FPS로, FPS 개발자는 퍼즐 게임으로. 아니면 머릿속을 포맷하고 퇴사해야 한다.
물론 넥슨 입장도 이해는 된다. 수십억원을 투자해 팀을 꾸리고 2~3년간 게임을 개발했는데, 핵심 인력 절반이 하루아침에 나가서 유사한 게임을 만든다면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분쟁, 구조적 문제는 없나
사실 이런 분쟁은 넥슨만의 문제가 아니다.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리니지2M vs 아키에이지 워), 엔씨소프트와 웹젠(리니지M vs R2M), 그리고 현재 수사 중인 넥슨게임즈와 디나미스 원 사건까지. 게임 업계에서 이직·창업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게임 개발의 특성상 개인의 역량과 회사의 투자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임은 코드와 그래픽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획 아이디어, 밸런스 감각, 재미 요소 설계 등 무형의 노하우가 핵심이다. 이것은 개발자 머릿속에 있다.
또 대형 퍼블리셔 중심의 시장에서 개발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면 독립 창업밖에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회사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 '탈출 창업'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도 갈등의 원인된다는 분석도 있다. 퇴사 시 경업금지 조항, 아이디어 소유권 범위, 유사 게임의 기준 등이 애매하다. 각자의 해석이 다르니 법정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4억원 반환이 갖는 상징성
항소심 판결 직후 아이언메이스는 넥슨으로부터 34억원을 즉시 반환받았다. 1심에서 가집행으로 넥슨에 넘겼던 돈이다. 배상액이 85억에서 57억으로 줄면서 차액을 돌려받은 것이다.
이 34억원은 단순한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이언메이스 입장에서는 "우리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는 상징적 승리다. 실제로 아이언메이스는 이 돈으로 넥슨이 걸어둔 가압류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넥슨 입장에서는 "영업비밀 침해 범위는 확대됐지만 배상액이 줄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넥슨이 상고를 결정한 이유도 여기 있다. 영업비밀 보호 기간을 더 늘리고, 배상액 산정 방식을 다시 따지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넥슨이 "게임업계에 긍정적인 선례를 남기기 위해"라고 상고 이유를 밝힌 점이다. 단순히 57억원을 받기 위한 게 아니라, 업계 전체를 위한 원칙을 세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과연 그 '긍정적 선례'가 누구에게 긍정적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 보호가 강화돼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직과 창업의 문턱이 높아진다.
향후 대법원이 그을 선, 게임 산업의 미래를 바꾼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넥슨과 아이언메이스 사이의 돈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게임 산업 생태계의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점이 되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자가 이직할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회사의 투자는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지, 창의적 산업에서 인재의 이동은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게 될 것이다.
만약 대법원이 넥슨 손을 들어준다면 영업비밀 보호 범위가 넓어지고, 보호 기간이 길어지고, 배상액이 커질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투자 안정성이 높아지지만 개발자들은 더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이 회사 나가면 비슷한 게임 못 만든다. 소송 걸릴 수 있다"
이런 인식이 퍼지면 팀 단위 독립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능력 있는 디렉터가 팀원들과 함께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도전 자체가 법적 리스크가 된다. 스핀오프 창업은 위축되고, 개발자들은 대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로 아이언메이스 손을 들어준다면 개발자들의 창업 자유는 넓어진다. 하지만 회사들은 신규 프로젝트 투자를 꺼릴 수 있다. "어차피 핵심 인력 빠지면 무용지물인데, 수십억 투자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에 미출시 프로젝트에 대한 장기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
답은 법정 밖에도 있다
법원이 선을 그어주길 기다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업계 스스로 룰을 만들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퇴사 시 명확한 경업금지 계약을 맺되, 그 대신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2년간 유사 게임 개발 금지, 대신 스톡옵션 지급" 같은 식이다. 개발자도 예측 가능하고, 회사도 투자를 보호할 수 있다.
혹은 프로젝트별 수익 배분 구조를 명확히 할 수도 있다. 게임이 성공하면 개발진에게 일정 비율 수익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아이디어로 성공했는데 회사만 돈 벌었다"는 불만이 줄어든다.
또는 사내 벤처 제도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 개발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회사 안에서 시도할 수 있다면, 굳이 나갈 이유가 줄어든다.
물론 이런 제도들도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법정에서 3년씩 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결국 이 소송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게임 개발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누구의 자산인가?"라는 것이다.
급여 주고 환경을 제공해서 개발해서 만들었으니 회사 자산이라는 주장과 내 경험과 창의성이 기반됐다는 개발자 측의 주장, 둘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개발자의 아이디어, 회사의 투자, 팀의 협업이 모두 모여서 만들어진다. 그 기여도를 퍼센트로 나누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명확히 분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든, 이 근본적인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디어는 누구의 것인가. 경험은 소유할 수 있는가. 창의성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한편 넥슨과 아이언메이스의 상고 이유서 제출 기한은 2월 중순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판결까지는 통상 1~2년이 걸린다. 그 사이 다크앤다커는 계속 서비스되고, 형사 사건은 별도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