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읽기] LG전자·엔비디아가 로봇 경쟁에서 '데이터'에 주목한 이유
[맥락읽기] LG전자·엔비디아가 로봇 경쟁에서 '데이터'에 주목한 이유
  • 정단비
  • 승인 2026.08.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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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틱스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 되겠다"

LG전자와 엔비디아가 로봇 사업 협력을 본격화하면서 로봇 경쟁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LG전자가 제조·물류 현장에서 축적한 실제 데이터를 확보하고 엔비디아의 AI 컴퓨팅과 로봇 개발 기술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다.

양사의 협력에서 주목할 부분은 로봇 완제품을 함께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로봇이 실제 환경을 이해하고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에 중요도를 두고 있다. 

MOU 나흘 뒤 데이터팩토리서 만난 LG·엔비디아

LG전자는 8월 18일 서울 서초구 양재 데이터팩토리에 엔비디아 관계자들을 초청해 로보틱스 협력 방향과 사업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류재철 LG전자 CEO와 현신균 LG CNS CEO, 정수헌 LG사이언스파크 대표 등 LG그룹 주요 경영진이 참석했다. 엔비디아에서는 로보틱스 및 옴니버스 관련 주요 관계자가 데이터팩토리를 찾았다.

사진=(우측 첫번째) 류재철 CEO와 우측 두번째 매디슨 황 수석이사가 LG 데이터팩토리에서 데이터 증강합성 솔루션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우측 첫번째) 류재철 CEO와 우측 두번째 매디슨 황 수석이사가 LG 데이터팩토리에서 데이터 증강합성 솔루션을 살펴보고 있다.

앞서 LG와 엔비디아는 지난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에서 미래 전략사업 분야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MOU 체결 나흘 만에 국내 데이터팩토리 현장에서 후속 협의를 진행했다는 점은 양사의 협력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 기반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협력에서 눈여겨볼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LG전자와 엔비디아가 만드는 것은 단순히 로봇 한 대의 성능을 높이는 기술이 아니라 로봇이 계속 학습할 수 있는 구조에 가깝다.

로봇을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데이터’

휴머노이드와 같은 피지컬 AI 로봇은 움직일 수 있는 하드웨어만으로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사람처럼 물건을 집고 옮기거나 주변 환경에 맞춰 움직이려면 수많은 상황을 학습해야 한다. 같은 물체라도 위치와 방향, 조명, 장애물, 작업자의 움직임 등에 따라 로봇이 취해야 할 행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 환경에서 발생하는 작업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학습에 활용하느냐가 로봇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LG전자가 양재 데이터팩토리를 구축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데이터팩토리에서는 LG 클로이드가 실제 로봇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가정 환경을 구현한 공간에서는 청소와 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미국 테네시 세탁기 공장의 제조 공정을 모사한 공간에서는 부품을 옮기거나 적재·조립하는 작업 등을 수행한다.

LG CNS의 물류 자동화 솔루션과 LG이노텍의 로봇 손 학습 공간도 데이터 확보에 활용된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기술과 연계해 증강·합성하면 실제 환경에서 일일이 수집하기 어려운 다양한 상황까지 가상 데이터로 확대할 수 있다.

사진=클로이드가 세탁기 제조 공정에서 데이터를 학습하고 있다.
사진=클로이드가 세탁기 제조 공정에서 데이터를 학습하고 있다.

LG ‘현장 데이터’와 엔비디아 ‘AI’의 시너지

양사의 협력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강점을 결합한다는 점이다.

LG전자는 가전과 제조·물류 사업을 통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다. 수십 년간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작업 경험과 숙련공의 노하우 역시 로봇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다.

반면 엔비디아는 AI 연산 인프라를 비롯해 로봇 시뮬레이션과 학습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LG전자는 데이터 수집과 적용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엔비디아 옴니버스 라이브러리(NVIDIA Omniverse libraries), 엔비디아 코스모스 오픈월드 모델(NVIDIA Cosmos open world models), 엔비디아 아이작 오픈 로보틱스 개발 플랫폼(Open NVIDIA Isaac robotics development platform) 등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실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상환경에서 데이터를 확장한 뒤 다시 로봇 학습에 활용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LG전자가 강조하는 ‘데이터 플라이휠’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실제 환경에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정제·증강해 학습에 활용한 뒤 로봇의 성능을 개선하고, 다시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10만 시간 데이터, 중요한 것은 ‘양’보다 활용

양재 데이터팩토리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4개 층, 연면적 약 1만㎡ 규모로 조성된다.

LG전자는 연내 데이터팩토리의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로봇 투입 대수를 수백 대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학습용 데이터도 대폭 늘린다. LG전자는 올해 연말까지 직접 수집한 데이터와 증강·합성을 통해 생성한 가상 데이터를 합쳐 총 10만 시간 규모의 학습 데이터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0만 시간은 햇수로 따지면 약 12년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데이터 규모가 아니다.

10만 시간의 데이터가 확보되더라도 데이터의 품질과 다양성, 학습 효율, 실제 로봇 성능 개선으로의 연결 여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양재 데이터팩토리의 진짜 성과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쌓느냐보다 그 데이터가 로봇의 작업 정확도와 범용성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서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LG전자가 로봇 사업에 속도를 내는 이유

LG전자가 데이터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은 로보틱스를 미래 성장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과 맞물려 있다.

LG전자는 올해를 로보틱스 사업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지난달 CEO 직속으로 전사 로봇 사업을 총괄하는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신설했다.

사업 영역도 산업용과 상업용에서 가정용으로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액추에이터 등 로봇 구동에 필요한 핵심 부품 경쟁력까지 확보하면서 부품부터 완제품,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에 이르는 사업 구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LG CNS의 물류 자동화 역량과 LG이노텍의 부품·센싱 기술 등 계열사의 역량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LG전자의 로보틱스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LG전자 류재철 CEO는 “그룹 내 핵심 역량을 결집하는 ‘원 엘지(One LG)’ 기반의 시너지와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전략적 협업을 통해 피지컬 AI 경쟁력을 확보하고 로보틱스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LG와 손잡는 이유도 같다

엔비디아 역시 AI의 적용 영역을 디지털 환경에서 현실 세계로 확장하는 피지컬 AI를 주요 분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로봇의 시뮬레이션과 학습을 지원하는 아이작플랫폼을 비롯해 물리적 세계를 학습하는 코스모스 계열 모델,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GR00T 계열 모델 등을 내놓으며 관련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LG전자와의 협력은 엔비디아에도 의미가 있다. LG전자가 가진 제조·물류 현장과 로봇 데이터를 활용하면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술을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 입장에서도 엔비디아의 AI 컴퓨팅과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하면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로봇 학습 데이터와 개발 환경을 확대할 수 있다.

승부처는 ‘데이터팩토리 이후’

LG전자와 엔비디아의 협력은 이제 기술 제휴를 넘어 실제 사업화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양재 데이터팩토리가 계획대로 가동되고 양질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구조를 갖추면 LG전자의 로보틱스 경쟁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대규모 데이터 확보가 실제 로봇의 작업 정확도나 범용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데이터팩토리 구축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 있다.

이에 LG전자가 가진 현실 세계의 제조 데이터를 엔비디아의 AI 기술과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고, 이를 실제 로봇 성능과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LG전자와 엔비디아가 로봇을 넘어 ‘데이터’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은 누가 더 정교한 로봇을 만드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가 로봇이 현실을 더 많이, 더 정확하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느냐가 새로운 경쟁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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