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갖지 못한 실업 청년 둘 중 한 명이 '번아웃'이라는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번아웃을 겪는 이들이 가장 많이 꼽은 원인은 진로에 대한 불안이었다.
번아웃은 취업 준비, 업무, 학업 등으로 정서적으로 고갈되어 지쳐있음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청년층의 취업 지연, 고용·진로 불안 등 노동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진단하기 위한 '내 일이 있는 청년 시리즈'의 두 번째 순서로, 국무조정실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청년층 실업 및 임금근로자 지위별 번아웃 현황 및 시사점'을 발표했다.
분석 결과 실업 청년의 번아웃 경험률은 52.7%로 과반을 기록해, 취업 청년(32.4%)의 1.6배에 달했다. 구직기간이 1년 이상으로 길어진 실업 청년의 경우 번아웃 경험률이 61.8%까지 뛰었다. 임금근로자 사이에서도 격차가 확인됐다. 고용이 불안정한 임시·일용직 청년의 번아웃 경험률(41.1%)은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용직 청년(29.6%)보다 1.4배 높았다.
한경협은 "최근 5년(2020년5월~2025년5월) 동안 청년층의 임금일자리에 대한 첫 취업 평균 소요기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등 청년층 노동시장의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며 "청년층이 겪는 취업의 어려움과 고용 불안이 청년층의 번아웃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청년 고용시장의 체감 여건은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인구는 782만2000명으로 1년 전보다 15만2000명 줄었다. 같은 기간 경제활동참가율은 47.2%로 2.3%포인트 떨어졌는데, 이는 2004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뒤 낙폭이 가장 컸던 것으로 집계됐고, 고용률은 43.8%로 2.4%포인트 내려갔다. 반면 실업률은 7.2%로 0.6%포인트 상승했다.
대졸자의 평균 졸업 소요기간은 4년5.7개월로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7년 이후 가장 길었고, 졸업 후 1년 이상 미취업 상태인 비중은 48.6%에 달해,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09년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취업 문턱을 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대기하는 기간이 동시에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번아웃의 원인은 고용 형태에 따라 갈렸다. 실업 청년은 진로 불안(68.4%), 일(업무·취업준비·학업 등)에 대한 회의(9.9%), 일과 삶의 불균형(7.1%) 순으로 원인을 꼽았다.
임시·일용직 청년 역시 진로 불안(57.0%)을 가장 많이 답했고, 일 과중(13.6%), 일에 대한 회의(12.1%)가 뒤를 이었다. 두 집단 모두 진로 불안이 과반의 응답을 차지한 셈이다.
반면 상용직 청년은 일 과중(23.2%), 진로 불안(20.5%), 일에 대한 회의(19.9%) 순으로 원인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다.
한경협은 "실업 청년과 임시·일용직 청년은 현재의 불안정한 지위가 미래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이어져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풀이했다.
번아웃을 겪는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살펴보면, 실업 청년은 취업 준비 비용 지원(36.3%), 직업훈련(23.3%), 고용 상담 서비스(20.5%) 순으로 응답했다. 임시·일용직 청년도 취업 준비 비용 지원(22.6%), 고용 상담 서비스(20.3%), 직업훈련(20.0%)을 필요로 한다고 답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수요가 두 집단 모두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직업훈련 구조는 이런 수요와 거리가 있다. 2024년 한국의 전체 직업훈련 지출 중 기관 직업훈련 비중은 82.1%로 OECD 31개국 평균(67.4%)보다 높았지만, 현장 직업훈련 비중은 1.5%에 그쳐 OECD 평균(11.7%)을 크게 밑돌았다. GDP 대비 직업훈련 지출 규모 역시 한국이 0.07%로 OECD 32개국 평균(0.11%)에 미치지 못했다.
한경협은 훈련을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훈련비 지원을 확대해 참여 유인을 높이고, 직업훈련의 현장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진로 불안이 번아웃으로 이어져 청년의 근로의욕까지 낮출 수 있는 만큼 고용 상담 과정에서 심리·정서 지원을 강화하고, 재정 여건이 어려운 청년에게는 취업 준비 비용을 지원하며, 구직기간이 길거나 진로 불안이 큰 청년은 전문 심리상담과 연계하는 등 개인별 경제적·심리적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고용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본부장은 "청년층의 높은 정책 수요를 고려해 취업 준비 비용 지원과 고용 상담 등 고용서비스의 접근성과 실효성을 높여, 청년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직업훈련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기업 현장 훈련 지원을 강화해 직업훈련의 현장 연계성을 높이는 등 양적·질적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