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은 좋은데, 저희와 함께 성장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어요."
취업준비생 A씨(26)는 지난해 한 스타트업 면접에서 이 말을 들었다. 무급으로 2주 시범 근무를 해보고 정식 채용을 검토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정중히 거절하고 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쉬고 있다'.
70만명이 '그냥 쉰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월 14일 발표한 '2025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일도 구직도 하지 않은 20~30대 청년층 '쉬었음' 인구가 71만7000명으로 처음으로 70만 명을 돌파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쉬었음 인구는 42만80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으며, 청년 인구 대비 쉬었음 비중은 5.4%까지 올라섰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쉬었음 인구를 줄이라"는 특명을 내렸고, 고용노동부는 2025년 12월 업무보고를 통해 "2026년 1분기 내 쉬었음 청년을 위한 보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책은 준비 중인 상태다.
그런데 이 청년들은 왜 쉬고 있는 걸까.
'눈 높은 청년'인가 '착취하는 기업'인가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 질문을 두고 요즘도 매일 전쟁 중이다.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열정페이 요구하는 기업이 청년을 쫓아낸다"는 글과 "요즘 청년들이 눈이 너무 높다"는 반박 댓글이 서로 수백 개씩 쌓인다.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열정페이는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경력직만 뽑으면서 신입한테는 열정을 요구한다. 경력은 어디서 쌓으라는 거냐." 고용노동부도 무급 인턴 명목으로 실질적 업무를 시키는 것은 위법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직무 체험', '자발적 봉사형 인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법망을 피하는 사례가 여전히 보고된다.
다른 쪽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채용했더니 3개월 만에 나간다. 기업도 할 말 있다. 소규모 기업일수록 채용 한 명 한 명이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검증 없이 뽑았다가 조기 퇴사가 생기면 타격이 크다"고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닭이 먼저냐, 꿩이 먼저냐. 열정을 먼저 보여줘야 기회가 오는가, 아니면 기회가 먼저 주어져야 열정도 발휘되는가. 이 논쟁은 결론이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청년들은 조용히 노동시장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쉬었음'은 게으름이 아니다
흔히 '쉬었음 청년'을 두고 의지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8월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쉬었음 인구 중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라고 답한 비율이 34.1%로 1위였다. 이는 전년도의 30.8%보다도 높아진 수치로, 단순히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국가데이터처는 "경력직 중심의 채용 관행과 수시채용 확산으로 첫 일자리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의 사각지대, 구직 포기가 만든 ‘착시 실업률’
그런데 여기서 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이 청년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빠져나갈수록, 반대로 실업률은 떨어진다.
실업률은 '구직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를 못 구한 사람'의 비율이다. 핵심은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자로 잡힌다'는 점이다.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쉬어버리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 계산식에서 아예 사라진다.
쉽게 말하면 10명 중 2명이 실업자면 실업률은 20%다. 그런데 그 2명이 구직을 포기하고 "그냥 쉰다"고 선언하는 순간, 통계상 실업자는 0명이 되고 실업률은 0%가 된다. 일자리가 생긴 게 아니라 포기자가 늘어난 것인데, 숫자만 보면 고용 상황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구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지연 연구위원이 발표한 '최근 낮은 실업률의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실업률이 낮아진 주요 요인 중 약 71%가 20대 쉬었음 인구 증가 때문이었다. 일자리가 늘어서 실업률이 낮아진 게 아니라, 청년들이 구직 자체를 포기해 통계에서 사라진 결과라는 뜻이다. 보고서는 20대 쉬었음 인구 비중이 2015년 수준으로 유지됐을 경우 실업률이 최대 0.7%p 더 높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70만명은 실업자가 아니다. 하지만 일을 하고 있지도 않다. 이들은 통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숨은 실업자'다.
20대는 구직 포기, 30대는 번아웃
이 문제는 20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가 집계한 '2025년 8월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30대 쉬었음 인구가 32만8000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강 문제와 일자리 미스매칭이 동시에 주요 원인으로 꼽히며, 이른바 '30대 번아웃'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 몇 년을 버텨도, 이번엔 번아웃으로 쓰러진다. 청년 쉬었음은 노동시장 입구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취업 후에도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인 셈이다.
닭이 먼저냐 꿩이 먼저냐, 기회 없는 열정은 '사치'가 된 시대
정부가 1대1 맞춤 일자리 매칭 시스템 구축을 예고했지만, 전문가들은 채용 관행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KDI 보고서에서는 "실업률 하락의 상당 부분이 청년층의 노동시장 이탈에 기인한다는 것은 기업의 일자리 창출 여력이 감소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해 양질의 정규직 취업 가능성에 회의적인 청년층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열정을 먼저 투자에 하는 것에 대해 갈등하는 청년들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청년이 쉬게 되면 실업률을 낮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오늘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갑론을박은 끝나지 않는다. "열정페이가 문제다" vs "청년들이 문제다". 그 사이에서 진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