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을 검색하면 미국·홍콩·일본 사례가 먼저 뜬다. 이미 저렇게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왜 한국은 아직일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대부분 기관투자자 전용이거나 국채 같은 정형증권 중심이고, 개인이 소액으로 접근할 수 있는 조각투자를 처음부터 공모로 열어둔 나라는 오히려 드물다.
미국: 적격투자자 전용 사모MMF와 상장주식 파일럿
미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례는 블랙록의 BUIDL이다. 2024년 3월 출시된 토큰화 사모MMF로, 적격매수인 자격을 갖춘 투자자만 참여할 수 있다.
달러로 결제하는 오프체인 방식과 스테이블코인(USDC)으로 결제하는 온체인 방식을 함께 지원하는데, 달러 결제는 기존 금융 인프라와 영업시간의 제약을 받는 반면 USDC 결제는 연중무휴 실시간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운용사·중개 증권사·수탁 및 관리은행·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각자 역할을 맡아 생태계를 구성한다.
또 하나는 예탁결제기관인 DTC와 뉴욕증권거래소·나스닥이 함께하는 분산원장 결제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러셀1000 지수에 속한 상장주식을 DTC에 예탁하고 이를 기반으로 토큰증권을 발행·거래하는 구조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2025년 12월 내놓은 비조치의견서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다만 이쪽은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지원하지 않고 기존 청산·결제 시스템 위에서 돌아간다. 두 사례 모두 적격투자자나 기관을 대상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홍콩: 국채를 토큰화하고, 결제는 CBDC로
홍콩은 채권 중앙예탁기관 CMU와 HSBC가 함께 2024년부터 2025년에 걸쳐 분산원장 시스템을 구축해 녹색국채를 토큰 형태로 발행했다.
HSBC의 프라이빗 분산원장 기반 플랫폼 Orion을 이용하며, 분산원장 자체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네이티브 방식을 쓴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자증권법 체계와 방향이 비슷하다. 결제수단으로는 민간 스테이블코인 대신 e-CNY·e-HKD 같은 토큰화된 법정화폐(CBDC)를 쓴다는 점이 특징이다.
홍콩 금융당국은 이 방식이 여러 참여자가 하나의 공통 플랫폼에서 상호작용하며 업무 효율을 높이고, 온체인 결제와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일본: 금융사 컨소시엄이 만든 조각투자 플랫폼
일본은 금융사 간 협력으로 토큰증권 플랫폼을 구축한 경우다. MUFG신탁은행·미즈호신탁은행 등 8개사가 공동출자한 Progmat, SBI증권·노무라증권 등이 컨소시엄으로 구축한 ibet for Fin이 대표적이며, 부동산 조각투자를 중심으로 초기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유통 쪽에서는 오사카디지털거래소가 한국의 ATS(대체거래소)에 해당하는 PTS 자격으로 토큰증권 전용 거래소 START를 운영한다. 4개국 중 조각투자·개인투자자 접근성이라는 면에서는 한국과 방향이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싱가포르: 글로벌 자산을 토큰화해 적격투자자에게 연결
싱가포르의 ADDX는 글로벌 사모펀드 지분, 채권, 구조화 상품을 토큰화해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50개국 이상의 적격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고, 시장운영 라이선스(RMO)와 증권 매매·중개·수탁 라이선스(CMO)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앞의 세 사례와는 결이 다르다.
한국은 어디쯤 있나
정형증권(주식·채권·펀드) 쪽은 한국도 미국·홍콩처럼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상품부터 시작한다. 1단계에서 사모MMF·사모사채·비상장주식 신탁방식을 먼저 시작하고, 온체인 결제를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이후로 미뤄둔 점, 초기 단계에서는 오프체인 결제부터 시작한다는 점도 해외 사례들과 방향이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국내 증권사가 이미 해외 인프라를 실제로 진행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1월 29일 홍콩에서 국내 금융사 최초로 디지털채권을 발행했다. 홍콩달러 3억2500만달러와 미국달러 3000만달러를 동시 조달해 약 1000억원 규모였고, HSBC가 주간사, 미래에셋증권 홍콩법인이 보조주간사를 맡았다.
여기서 쓰인 플랫폼이 바로 앞서 설명한 HSBC의 Orion, 즉 홍콩 정부가 녹색국채 발행에 쓴 것과 같은 인프라다. 국내 법 시행 전이라 해외에서 우회로를 택한 셈이지만, 한국 금융사가 정형증권 토큰화에 이미 실전 경험을 쌓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이는 조각투자에 있다. 한국은 공모 조각투자증권 토큰화를 1단계(2027년 2월)부터 개인투자자에게 곧바로 열어둔다.
일본이 부동산 조각투자로 초기 생태계를 키운 것과 비슷하지만, 청약한도·기초자산 요건 같은 투자자 보호 장치를 처음부터 모범규준으로 명문화해뒀다는 점이 다르다.
한국의 로드맵은 기관부터 시작하되 소액투자자 몫은 따로 미리 설계해둔 절충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하위법규 입법예고가 이달 말 시작되면, 실제 상품 설계가 어떻게 구체화되는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