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가구가 늘면 냉장고와 세탁기도 작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가전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6년 국내에서 판매가 빠르게 늘어난 대표 가전은 로봇청소기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AI 스팀’은 5월 한 달 판매량이 처음으로 2만대를 넘어섰다. 전년 동월보다 약 60% 늘어난 규모다. 삼성전자가 2024년 선보인 일체형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 역시 2025년 판매량이 전년보다 약 40% 증가했다.
제품의 공통점은 크기가 작다는 데 있지 않다.
로봇청소기는 청소를 대신하고, 세탁건조기는 빨래를 옮기는 과정을 없앤다. 물걸레 세척·건조부터 먼지 비움까지 기계가 처리하고, 세탁과 건조는 버튼 한 번으로 이어진다.
1인가구 시대 가전의 핵심 수요는 ‘나 혼자 쓰기 좋은 작은 제품’보다 ‘나 혼자 해야 할 일을 줄여주는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1인가구 늘었지만 가전은 ‘미니’가 되지 않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국내 1인가구는 804만5000가구로 전체 일반가구의 36.1%를 차지했다. 2015년 520만3000가구에서 약 284만가구 증가했다.
가구원이 줄었으니 가전 용량도 줄어야 할 것 같지만 시장의 주류가 초소형 냉장고나 미니 세탁기로 이동했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
오히려 최근 제조사들이 힘을 싣는 제품은 기능을 줄이지 않은 채 공간과 노동을 절약하는 쪽이다.
삼성전자가 2026년 3월 내놓은 신형 비스포크 AI 콤보는 세탁과 건조를 한 통에서 처리한다. 회사에 따르면 전 세대 제품의 2025년 판매량은 전년보다 약 40% 늘었다.
한 사람이 산다고 세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빨랫감은 줄어도 세탁물을 넣고, 꺼내고, 건조기로 옮기는 과정은 남는다.
가전회사가 줄인 것은 세탁기의 크기보다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단계였다.
로봇청소기, 2026년 가전 경쟁의 중심으로
올해 시장 변화는 로봇청소기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2026년 3월 신형 ‘비스포크 AI 스팀’을 출시한 뒤 5월 월 판매량 2만대를 넘어섰다. 전년 동월 대비 약 60% 증가했다.
LG전자도 7월 신형 로봇청소기 ‘로니’를 내놨다. 이 제품은 청소뿐 아니라 물걸레 세척·스팀·건조까지 자동화했고, 자동 급배수형은 스테이션을 주방 싱크대 하단 15㎝ 공간에 넣도록 설계했다.
국내 시장 판도도 달라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주요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2026년 9월 로봇청소기 매출을 집계한 결과 LG전자 점유율은 약 30%, 삼성전자는 10% 후반대로 파악됐다. 두 회사를 합하면 절반에 육박한다. 1분기만 해도 두 회사 합산 점유율은 20%대에 그쳤다.
올해 가전업계가 로봇청소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히 청소 성능이 좋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지통을 비우고, 물걸레를 빨고, 말리는 일까지 기계가 맡는다.
경쟁의 기준이 ‘얼마나 강하게 빨아들이느냐’에서 ‘청소 과정에서 사람을 얼마나 뺄 수 있느냐’로 이동한 것이다.
‘작은 집’도 작은 가전보다 효율을 원한다
1인가구가 늘면서 좁은 주거공간은 분명 중요한 변수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해법이 단순 소형화만은 아니다. LG전자의 로봇청소기 로니는 자동 급배수 스테이션을 싱크대 하단에 넣는 방식을 택했다. 로봇청소기의 기능을 줄이는 대신 사용하지 않던 공간에 기기를 집어넣었다.
일체형 세탁건조기도 같은 방향이다. 세탁 용량을 ‘1인용’으로 줄이기보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한 제품으로 통합한다.
소가구 시대의 공간 문제를 용량 축소보다 효율로 해결하는 전략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가전은 식품처럼 오늘 혼자 먹을 만큼만 구매하는 상품이 아니다.
한 번 구입하면 수년간 사용하고, 이사나 결혼 등 가구구조가 바뀐 뒤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지나치게 작은 제품은 당장은 공간을 아끼지만 향후 사용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
가전에서는 ‘혼자 산다’는 사실보다 좁은 공간에서도 기능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수요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가전기업도 ‘작은 제품’보다 자동화에 투자한다
기업 전략에서도 방향은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2026년형 로봇청소기에 액체 인식과 장애물 회피, 자동 물걸레 관리 등을 강화했다. 회사는 로봇청소기를 AI 가전의 핵심 제품군으로 두고 ‘집안일을 덜어주는 동반자’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LG전자도 로봇과 AI홈을 차세대 성장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LG전자의 2026년 3분기 누적 매출은 71조377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2%, 영업이익은 4조347억원으로 55.9% 증가했다. 생활가전 사업은 3분기 매출 7조444억원을 기록해 2개 분기 연속 7조원을 넘어섰다.
또 가전업계는 로봇과 AI홈 솔루션을 신사업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제품 판매 이후의 구독 사업도 키우고 있다. LG전자의 올해 3분기 제품·서비스 구독 매출은 76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6% 증가했다.
가전회사가 파는 것이 제품 한 대에서 집안일을 대신하고 관리까지 맡는 서비스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형가전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역할이 달라졌다
물론 작은 가전의 수요도 존재한다. 특히 주방과 원룸처럼 공간 제약이 큰 곳에서는 소형 식기세척기나 작은 조리가전이 유리하다.
그러나 이 시장에서도 단순히 기존 제품을 축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좁은 집에서는 설치공사가 필요 없는지, 여러 기능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지, 사용 후 청소와 관리가 얼마나 간단한지가 중요하다.
즉 소형화도 결국 가사노동과 공간을 얼마나 함께 줄이느냐에서 경쟁력이 결정된다.
1인가구용 가전을 ‘작은 냉장고·작은 세탁기’로 정의하면 시장 변화를 놓치는 이유다.
한편 소형가구를 겨냥한 소형 제품 시장은 존재하지만 최근 시장을 주도하는 변화는 용량 축소보다 자동화와 복합화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