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거 아니?] 세상을 매료시킨 패션계의 악동,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브랜드 이거 아니?] 세상을 매료시킨 패션계의 악동,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 이지원
  • 승인 2020.05.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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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패션업계는 보수적이었다. 기존의 패션 브랜드는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점잖은 패션을 선보였으며, 이는 오랜 시간 지속됐다. 

하지만 이러한 점잖고 가식적인 패션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이가 있다. 그가 선보였던 패션쇼는 마치 전위예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엽기적이고 파격적이었으며, 패션쇼에 오르는 컬력센 역시 실험적이고 창조적이었다.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그의 컬렉션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그의 브랜드 역시 현재까지 남아 소비자의 곁을 지키고 있다. 

고루한 패션계에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수혈했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패션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을 소개한다. 

패션계의 악동이라 불리던 영국의 패션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사진=알렉산더맥퀸 홈페이지에서 캡처)

알렉산더 맥퀸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리 알렉산더 맥퀸(Lee Alexander McQueen)은 1969년 가난한 가정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세 살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게 됐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겪고 있던 그의 집안으로 인해 맥퀸은 미술학교 등에서 정식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맥퀸이 16세가 되던 해에 맥퀸의 어머니는 영국 런던의 최고급 맞춤 양복점거리 '새빌 로(Savile Row)'에 견습생이 부족하다는 신문 기사를 발견하게 되고, 곧 맥퀸에게 견습생이 되길 권유했다. 그 길로 맥퀸은 학교를 그만둔 후 새빌 로의 한 코트 전문 양복점에서 견습생의 신분이 됐다. 이후에도 그는 새빌 로의 살아 있는 역사라 칭송받는 '앤더슨 앤 쉐퍼드(Anderson & Sheppard)'로 옮겨가 디자인의 밑바탕이 되는 재단 기술과 테일러링(재단) 등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가 됐다. 

그의 견습생 신분은 계속됐으나, 배경은 달라졌다. 그 후 맥퀸은 새빌 로의 또 다른 양복점인 '기브스 앤드 호크(Gieves & Hawkes)'와 극 의상 전문업체인 '엔젤스 앤드 버먼스(Angels & Bermans)'를 거치며 19세기 의상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을 갖게 됐다. 21세가 되던 해에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주하며 그 시기 가장 유명했던 로메오 질리(Romeo Glgli)에서 재단사로 근무하는 등 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실무를 습득했다. 

맥퀸이 정식으로 디자인에 대해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도 훨씬 후였다. 1994년 런던으로 돌아온 맥퀸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의 패턴 튜터 자리에 지원했으나, 학교측은 그의 포트폴리오에 깊은 인상을 받아 석사과정으로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석사과정을 밟으며 정식 디자인 과정을 빠르게 흡수하는 등 천재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보였다. 이 시절부터 맥퀸은 삼차원적인 디자인에 재능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그 후 알렉산더 맥퀸의 디자인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발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가 초창기에 선보였던 범스터 팬츠는 그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사진=알렉산더 맥퀸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본격적인 맥퀸의 디자이너 일대기는 그의 졸업작품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연쇄 살인범인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의 실제 내용을 바탕으로 디자인 한 맥퀸의 졸업작품은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에디터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이사벨라 블로우(Isabella Blow)의 눈에 띄게 됐다. 이사벨라는 무명 디자이너에 불과했던 맥퀸의 옷을 모두 구매했으며, 이후에도 평생 동안 맥퀸의 가장 큰 조력자로 나섰다. 파격적인 데뷔 무대와 영향력 있던 이사벨라의 관심까지 더해지며 맥퀸은 가장 주목 받는 신예 디자이너로 급부상할 수 있엇다. 

특히 맥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렸던 '범스터(Bumster) 팬츠'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범스터 팬츠가 나온 후 대중들의 초반 반응은 긍정적인 화제거리가 아닌, 손가락질과 논란의 대상이 됐다. 알렉산더 맥퀸이 1994 F/W 컬렉션인 'Taxi Driver'에서 선보였던 범스터 팬츠는 바지의 밑위 길이가 극도로 짧았다. 밑위가 짧아 골반이 드러나는 '로우 라이즈' 스타일을 재해석한 맥퀸의 범스터 팬츠는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유독 밑위 길이가 짧았던 맥퀸의 범스터 팬츠는 모델의 엉덩이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맥퀸은 이 범스터 팬츠를 남성복과 여성복에 모두 선보였고, 이후 컬렉션에도 그는 범스터 팬츠를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처럼 범스터 팬츠는 맥퀸의 초기 작품 중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주요 작품이 됐다.

특히 맥퀸은 자신의 범스터에 대해서 엉덩이를 노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 '척추 아래 부분의 연장'이라는 데 의의를 뒀다. 또한 2011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맥퀸의 전시회 큐레이터였던 앤드류 볼튼(Andrew Bolton)은 알렉산더 맥퀸이 당시의 영국 거리문화와 음악의 혼잡함을 자신의 옷에 충분히 이용하여 만든 것이 범스터이고, 이는 그의 초기 커리어에서 선동가로서의 명성을 만들어 줬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맥퀸은 발표하는 쇼마다 대중들과 패션업계에 새롭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다. (사진=알렉산더 맥퀸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졸업작품과 범스터 팬츠 이후에도 그는 ▲Nihilism ▲Banshee ▲The Birds ▲Highland Rape 등 발표하는 쇼마다 대중들과 패션업계에 새롭고 신선한 충격과 강렬한 인식을 안겨 줬다. 이와 함께 그는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의 색깔을 확실하게 구축했으며, 패션업계를 넘어 대중들과 언론에게도 관심을 받게 된다.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그는 1996년 정체기에 빠져 있던 지방시를 구제하기 위해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되며 약 4년간 활약했다. 알렉산더 맥퀸의 거칠고 암울한 감성과 지방시 하우스 아틀리에의 뛰어난 기술이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낳았으며, 지방시에서의 활약은 알렉산더 맥퀸으로서는 그가 독립된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지방시와의 결별 후에는 구찌(Gucci) 그룹이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산더 맥퀸 브랜드의 지분 51%를 인수하며 알렉산더 맥퀸은 구찌 그룹의 새로운 파트너가 됐으며, 그 후 맥퀸은 자신의 컬렉션에 집중했다. 2001년 'The Dance of the Twisted Bull' 컬렉션으로 파리 무대에 데뷔 후 다시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컬렉션은 파격적 무대 연출뿐 아니라 미국테러 사건 직후 진행되며 논란이 됐지만, 이는 패션을 순수한 예술 활동으로 생각한 그의 소신이 담긴 결정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맥퀸은 매 쇼마다 파격적인 무대를 보여주며 늘 이목을 끌었다. 그에게 있어 쇼는 단순히 대중에게 옷을 선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 패션의 일부였다. 또한 명확한 콘셉트를 지니고 진행되는 그의 쇼는 패션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으며, 작품과 함께 무대와 모델, 음악, 퍼포먼스 등이 통합된 설치미술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사라 버튼이 수장으로 자리잡은 알렉산더 맥퀸의 2020 S/S 컬렉션 (사진=알렉산더 맥퀸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자극적인 그의 패션세계는 지속적으로 논란거리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그가 세상을 매료시킨 천재라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1996년 역대 최연소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가 됐으며, 1997년·2001년·2003년에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또한 2003년에는 미국 패션디자인협회(CFDA)로부터 '올해의 세계 디자이너'로 선정됐으며, 같은 해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CBE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2006년 말까지 알렉산더 맥퀸 브랜드는 런던·파리·뉴욕·보스턴·밀라노·모스크바·상파울로·도쿄·서울 등 세계 약 25개 도시에 진출하며 계속되는 논란 속에서도 '잘 나가는 브랜드'임을 견고히했다. 

하지만 2007년 이자벨라 블로의 죽음 이후 맥퀸은 우울증을 앓았으며, 그 후 어머니까지 잃게 되자 그 역시 죽음을 택했다. 그의 짧고 강렬했던 디자이너의 삶은 2010년 다소 빠르게 막을 내렸다. 

그의 죽음 이후 알렉산더 맥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는 사라 버튼이 자리하게 되며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녀의 세련되고 세밀한 디테일은 맥퀸을 뛰어넘을 정도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로 승화한 디자인과 뛰어난 잠재력으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맥퀸의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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