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합쳐도 대출 한도는 '1인분'..."부부만 인정" 주담대 규제, 변화하는 가족 형태 외면
소득 합쳐도 대출 한도는 '1인분'..."부부만 인정" 주담대 규제, 변화하는 가족 형태 외면
  • 정단비
  • 승인 2025.11.24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더욱 엄격해진 가운데, 금융 시스템이 '법적 혼인'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비혼 동거 커플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심각한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함께 거주하며 공동으로 생활비를 부담해도 소득 합산을 통한 대출 한도 확대가 불가능해, 주거 안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법적 혼인 없으면 '경제 공동체' 아니다?

현행 주택담보대출 규제에서 부부는 배우자 소득을 합산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계산할 수 있다. 배우자가 별도의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하지 않은 경우, 두 사람의 소득을 합쳐 대출 한도를 산정받는 것이다. 이는 부부가 민법상 동거 및 부양 의무를 지는 '법적 연대성'을 금융기관이 가장 확실한 '경제 공동체'의 증거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혜택이 오직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함께 살며 생활비와 대출 상환을 공동으로 부담하더라도,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면 은행은 대출 명의자 한 사람의 소득만을 인정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민등록상 같은 주소에 거주하고 공과금 공동 납부 내역을 제시해도 혼인 관계가 아니면 소득 합산은 절대 불가능하다"며 "이는 금융당국의 DSR 산정 기준이며, 은행이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DSR, LTV 이중 규제에 갇힌 비혼 커플
DSR 40% 기준, 한도 차이는 최대 2배

구체적인 한도 차이는 얼마나 될까. 기존 대출이 없는 연소득 5000만원인 두 사람이 함께 주택을 구입한다고 가정해보자. 연 4% 금리, 30년 원리금균등상환 기준, DSR 40%가 적용된다는 기준이다.

비혼 동거의 경우 한 사람 명의로는 약 3억원대 중반의 대출이 가능하며, 대출 명의자의 소득이 부족할 경우 강화된 스트레스 DSR 적용으로 한도는 더 줄어들 수 있다. 반면 법적 부부는 합산 소득 1억원을 기준으로 최대 6~7억원 수준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실제 상환 능력은 같은데, 법적 혼인 유무에 따라 대출 한도가 2배 가까이 벌어지는 것이다.

LTV와 유주택자 판정에서의 차별

10.15 정책에 따라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 시 유주택자는 LTV 0%(대출 불가) 원칙이 더욱 강력해졌다.

하지만 법적 부부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어도, 부부가 공동 채무자로 대출을 받을 경우 '처분 조건부 1주택자' 등으로 인정받아 제한적인 LTV를 적용받을 수 있다.

반면 비혼 커플이나 친구·친척 간 공동명의를 하려 해도, 은행은 타인 간 공동명의 대출을 꺼리거나 두 사람 중 한 명이 유주택자일 경우 LTV 규정상 대출 심사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결국 '공동 경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해 무주택자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우린 경제 공동체인데, 대출은 왜 안 되나요"

공동 구매를 시도했다가 좌절한 사례는 비단 비혼 커플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30대 A씨와 B씨는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인연으로 함께 소형 아파트를 구입하려 했다. 각자 연소득 6000만원씩, 합쳐서 1억2000만원의 안정적인 수입이 있었지만, '타인 간 소득 합산 불가능' 규제에 가로막혔다.

A씨는 "둘 다 공동명의로 등기하고 대출도 공동 채무로 받으려 했는데, 은행에서 '배우자 외 타인 간 공동 채무자 소득 합산 불가' 지침을 이유로 한 사람 명의로만 대출을 권유했다"며 "결국 한 명 명의로 받으니 한도가 4억원 정도로 제한돼 원하던 집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는 실질적인 상환 의지가 있어도 제도적 제약 때문에 주거 기회를 박탈당한 대표적 사례다.

통계는 변하는데, 제도는 제자리걸음

한국 사회의 가족 형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가구는 2024년 전체 가구의 36.1%를 차지한다. 통계청이 2022년 실시한 사회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2%가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했다. 50대에서도 비혼 동거 찬성 비율이 60.0%에 달할 정도로 인식이 변했다.

통계청은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가구주와의 관계' 문항에 '비혼동거' 범주를 신규 추가하며 변화된 현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금융 규제는 여전히 '법적 혼인'만을 경제 공동체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DSR 규제는 과도한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며, 소득 합산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면 규제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실질적 상환 능력 입증 방안 마련 필요성 대두

금융 건전성 유지라는 규제 목표는 타당하지만,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직된 '법적 혼인' 기준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주민등록등본, 공과금 및 통신비 공동 납부 내역, 공동 계좌 장기간 사용 증빙, 또는 비혼 동거 계약 공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일정 기간(예: 1년 이상) 실질적 경제 공동체임을 입증하면 소득 합산을 허용하는 '조건부 소득 합산' 방안을 검토하는 방법도 제안되고 있다.

또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대출이나 보금자리론 역시 '신혼가구' 기준을 '사실혼 관계'로 확대하여, 실질적으로 주거 안정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늘어나는 가운데, 실질적인 상환 능력을 가진 이들의 주거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유연한 규제 기준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GettyImages
ⓒGettyImag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