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털로 표기된 노스페이스 패딩이 실제로는 재활용 오리털이었다. 13개 제품, 그중 눕시 시리즈만 8개. 차은우·전소미가 광고한 바로 그 제품들이다.
단순한 표기 오류가 아니다. 쿠팡 3370만건 유출, 이동 통신사 해킹에 이은 2025년 '불신의 연쇄'가 12월 노스페이스로 이어졌다. 국민 절반 이상이 쓰는 플랫폼, 1위 통신사, 그리고 국내 1위 아웃도어 브랜드까지.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신뢰를 저버린 한 해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노스페이스 패딩 오기재는 단순한 내부 관리 소홀이 아니라, 경영권 승계에 몰두한 사이 내부관리를 놓친 영원무역그룹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눕시 신드롬에 취한 사이, 거위털이 오리털로
2024년 겨울, 노스페이스 '눕시' 패딩은 신드롬을 일으켰다. 차은우, 전소미가 모델로 나서며 MZ세대를 사로잡았다. '1996 레트로 눕시'는 품절 대란을 일으켰고, 중고 거래가는 정가를 웃돌았다.
영원무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25년 1월,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의 성가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성가은 사장은 영원무역그룹 창업자 성기학 회장의 셋째딸이다. 둘째 성래은 부회장이 그룹을 장악한 가운데, 성가은 사장은 '노스페이스 대박'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그 대박 상품 중 가짜 정보로 팔리고 있던 제품들이 있었다.
"충전재: 우모(거위) 솜털 80%, 깃털 20%"
지난 12월 초까지 무신사 노스페이스 판매 페이지에 떡하니 적혀 있던 문구다. 하지만 실제 제품은 리사이클(재활용) 다운, 즉 재활용 오리털 충전재였다. 전수조사 결과 13개 제품에서 같은 오류가 발견됐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기재 13개 제품 중 눕시 시리즈가 다수 포함됐다. '남성 워터 실드 눕시 자켓', '1996 레트로 눕시 자켓', '1996 레트로 눕시 베스트', '눕시 숏 자켓', '노벨티 눕시 다운 자켓', '1996 눕시 에어 다운 자켓', '클라우드 눕시 다운 베스트', '노벨티 눕시 다운 베스트' 등 8개다.
성가은 사장의 승진 공로가 된 눕시 시리즈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실무자 실수'라는 변명의 함정
노스페이스는 이에 대해 "실무자의 단순 업데이트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무자 실수'라는 해명은 더 큰 문제를 드러낸다. 실무자가 핵심 상품 정보를 잘못 올려도 이를 검수하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패딩 충전재 정보는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거위털(구스다운)은 오리털(덕다운)보다 보온성이 뛰어나 프리미엄 소재로 인정받는다.
이런 핵심 정보를 실무자에게 맡겨두고 검수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내부관리 부실이다.
경영권 승계와 위기관리에 집중된 2년
영원무역 경영진이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집중해야 했던 일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보면, 내부관리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보인다.
- 2023년 3월: 성래은 부회장, 아버지로부터 YMSA 지분 50.1% 증여받아 그룹 최대주주 등극. 증여세 850억원 발생.
- 2023년 12월: YMSA, 성 부회장에게 815억원 대여. 대여금 마련을 위해 본사 건물을 영원무역에 587억원에 급매각. 같은 달 영원무역은 스캇(SCOTT)에 2419억원 긴급 대여.
- 2024년 1월: 영원무역, 스캇에 2300억원 추가 지원.
- 2024년 3월: 금융감독원, 영원무역 사업보고서 제출 지연으로 관리종목 지정 검토.
- 2024년 6월: 영원무역, 스캇의 1709억원 차입금에 채무보증.
- 2024년 12월: 스캇 채무보증 751억원 추가.
1년여간 스캇 살리기에 쏟아부은 자금, 채무보증은 7000억원에 육박한다.
이 와중에 영원무역홀딩스 배당금은 2022년 3050원에서 2024년 5350원으로 급증했다. 그룹 매출·영업이익은 하락하는데 배당만 늘었다. YMSA의 배당수익은 2022년 79억원에서 2023년 184억원으로 뛰었다.
성래은 부회장의 보수도 급등했다. 2022년 33억원, 2023년 82억원, 2024년 126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무보수), 최태원 SK회장(47억원), 정의선 현대차 회장(45억원)보다 많다.
성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보수도 62억원을 받았다.
내부관리 부실의 또 다른 기록, 스캇
노스페이스 패딩 오류만이 아니다. 영원무역의 내부관리 부실은 자회사 스캇에서도 드러난다.
스캇은 영원무역이 2013~2015년 1545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프리미엄 자전거 브랜드다. 코로나19 시기 자전거 수요 급증으로 2022년 매출 1조3975억원, 영업이익 1765억원을 기록하며 효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엔데믹 전환 후 상황이 급변했다. 2023년 영업이익이 587억원으로 급감하더니, 2024년엔 매출 9537억원, 영업손실 2123억원을 기록했다. 2년 만에 흑자 1765억원에서 적자 2123억원으로 추락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재고 관리다. 2025년 1분기 기준 영원무역 재고자산 1조3000억원 중 완제품 재고 7999억원의 70%가 스캇에서 발생했다.
수요 둔화는 전 세계 자전거 업계 공통 현상이다. 문제는 영원무역의 대응이다. 재고가 쌓이는데도 생산을 조절하지 못했고, 판매 부진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지 못했다. 결국 영원무역의 긴급 자금 지원으로 불을 껐다.
내부관리는 구조적 문제
경영진의 관심이 승계와 위기관리에 집중된 상황이 이어지면 영원아웃도어 같이 '놔둬도 잘 돌아가는 사업'은 상대적으로 관리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과도한 임원 겸직이 집중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있다.
성래은 부회장은 영원무역그룹 계열사 50개사에서 임원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해외 법인이지만, 한 사람이 50개 회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또 내부 견제 시스템의 부재도 말이 나오고 있다. 영원무역은 2024년 4월 사업보고서 제출을 지연해 관리종목 지정 위기를 맞았다. "해외 종속회사로부터 감사 증거를 제출받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해외법인 관리도 제대로 안됐다는 방증이다.
불신의 시대, 책임과 확산되는 후폭풍
이번 노스페이스 충전재 오기재는 표시광고법 위반 가능성도 제기된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는 사실과 다르게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제품의 핵심 성분을 오기재한 것은 명백한 법 위반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와 집단분쟁조정 신청 등을 통한 소비자 피해구제 절차를 검토 중이다. 쿠팡 해킹 사태 직후 25만명이 집단소송 카페에 가입한 것처럼, 노스페이스 사태도 대규모 소비자 대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노스페이스는 환불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잘못된 정보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신뢰 손상은 돌이키기 힘들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즉각적인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