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환율 불안·집값 우려에 ‘숨 고르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또 한 번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반면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추가 인하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세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내리며 경기 둔화에 대응하고 있지만, 한국은 가팔라진 환율과 여전히 부담스러운 집값·가계부채를 의식하며 신중한 행보를 택한 모습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기존 3.75~4.00%에서 3.50~3.75%로 낮췄다. 이는 9월과 11월에 이어 세 번 연속 단행된 0.25%포인트 인하다.
연준은 물가상승률이 2% 목표를 향해 점진적으로 내려오고 있으며 고용시장의 과열이 완화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긴축 강도를 완화하고 있다. 다만 경기 둔화와 금융 여건 악화를 동시에 의식하며, 내년에는 인하 속도를 크게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나오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의 과열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며 “경기의 연착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에 완전히 안착하지 않은 만큼, 시장이 기대하는 것만큼 빠른 추가 인하에는 선을 그었다. 시장에선 내년 중 소수 차례 추가 인하에 그치는 ‘속도 조절형(매파적) 인하’ 시나리오가 우세한 편이다.
미국 금리가 중요한 이유는?
멈춰 선 한은…환율·집값 사이에서의 고민
한국은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 수준과 방향은 국내 금리·환율·자본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3.75%)은 한국 기준금리(2.50%)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보다 앞서서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외국인 투자자가 원화 자산을 줄이고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달러 자산으로 이동할 유인이 커진다.
그 결과 한국 주식·채권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늘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뛰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환율이 오르면 원유·곡물 등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 가격이 원화 기준으로 더 비싸져 국내 물가에 다시 상승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미 생활물가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환율과 금리를 동시에 자극하는 선택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수출·투자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내수 부진을 감안하면 금리 인하 명분도 있지만 환율·물가·부동산·가계부채를 함께 고려하면 지금은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 1470원 안팎까지 오르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국면에서 한국이 추가 인하에 나설 경우 시장이 이를 ‘원화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해 환율이 1500원선 안팎까지 일시적으로 치솟는 이른바 오버슈팅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은이 미국의 통화정책뿐 아니라 환율 불안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꺼진 줄 알았던 집값 우려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서울과 수도권의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매매·전세 가격이 다시 소폭 반등하는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대출 이자 부담이 줄어 가계부채가 다시 늘고,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한은의 부담이다.
올해 3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시장 예상치를 다소 웃돌며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간소비와 수출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당장 추가 금리 인하로 위기를 막아야 할 정도의 급박한 국면은 아니라는 인식이 커졌다.
결국 한은은 경기 부양 필요성과 환율·물가·부동산 안정이라는 상충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확인하며 점진적인 인하를 이어가는 가운데 한국은 자본 유출과 환율 불안, 가계부채와 집값 리스크를 모두 감안해 ‘급하지 않은 인하’ 기조를 선택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