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 등 대형사도 ‘외통수’…건전성 지표와 주주 환원 사이 ‘진퇴양난’
국내 보험업계가 역대급 이익을 기록하고도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주지 못하는 ‘회계적 역설’에 빠졌다. 2023년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들의 장부상 이익은 조 단위로 치솟았지만, 금융당국이 강제한 ‘해약환급금준비금’이 배당의 맥을 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3년 만에 배당을 멈췄던 현대해상을 비롯해 업계 전반이 건전성 방어와 주주 환원 사이에서 해답 없는 딜레마를 이어가고 있다.
부채 시가평가의 함정…“주머니엔 현금 없다”
이러한 딜레마의 근원은 새 회계제도(IFRS17)의 핵심인 ‘부채 시가평가’에 있다. 금리 변동에 따라 부채 가치가 변하며 장부상 순이익이 급증하는 착시 효과를 냈지만, 이는 실제 현금이 유입된 것이 아닌 회계적 평가 이익일 뿐이다.
문제는 당국이 도입한 ‘해약환급금준비금’이다. 당국은 보험사가 장부상 이익에 취해 배당을 과하게 했다가 향후 해약 고객에게 지급할 현금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해, 시가 평가로 줄어든 부채만큼을 사내에 적립하도록 강제했다.
결과적으로 순이익이 1조원이 나더라도 그만큼을 준비금으로 쌓고 나면 주주에게 줄 ‘배당가능이익’이 고갈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배당뿐만 아니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최근 강화된 주주 환원 요구에 대응할 체력을 떨어뜨리게 한다.
현대해상, 대형사 중 딜레마 가장 선명…경쟁사와 체력 격차 노출
업계에서는 현대해상을 이 딜레마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현대해상은 2024년 결산 당시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하고도 무배당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 측은 “현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준비금 적립 규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화재나 DB손해보험 같은 상위권 경쟁사들은 동일한 규제 하에서도 견고한 기본자본을 바탕으로 배당을 유지했기 때문에 현대해상의 무배당 결정은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결국 준비금이라는 규제에서, 이를 뚫고 배당할 만큼의 ‘기초 체력’이 있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 간의 격차가 무배당 여부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적 악화에 규제 강화까지…“올해는 더 어렵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2025년 들어 보험사들의 본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해상의 경우, 2025년 3분기 누적 순이익이 전년 대비 39.4% 급감하며 자본 축적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K-ICS(신지급여력) 비율 산정 시 ‘기본자본’의 질을 따지는 규제를 강화하면서 보험사들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기존에는 '기본자본(자본금, 이익잉여금)'과 '보완자본(후순위채 등)'을 합친 전체 가용자본 비율만 관리하면 됐으나, 오는 2027년부터는 기본자본만으로 요구자본의 50% 이상을 채워야 한다.
배당을 하자니 건전성 수치가 규제 선 밑으로 떨어질까 두렵고, 안 하자니 주주들로부터 “자금 여력이 고갈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을 수 있는 딜레마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2026년 제도 완화로 숨통 트일까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일정 자본건전성 조건(K-ICS 비율 200% 이상)을 충족하는 보험사에 한해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춰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다만 2026년부터는 K-ICS 180% 이상 보험사로 적용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이 조치는 현대해상(K-ICS 179.8%)처럼 기준선 부근에 있는 대형사에게는 2026년이 숨통을 틔울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조차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준비금 적립 비율이 완화된다 해도, 본업인 자동차보험 등에서 적자가 지속되면 결국 배당 여력은 다시 사라질 것”이라며 “2월 말 예정된 각 사의 기업설명회(IR)에서 단순한 제도 탓이 아닌 실질적인 현금 흐름 개선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주주들의 실망감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