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의 무게추가 ‘긱이코노미(Gig Economy, 필요에 따라 일을 맡기는 임시직 경제)’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특히 과거 육체 노동 중심이었던 부업 시장이 최근 전문 지식을 활용한 금융 영역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양상이다.
2026년 상반기 보험업계의 화두는 단연 ‘N잡 설계사’다. 단순한 인력 충원을 넘어, 보험사 자체가 거대한 긱워크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가성비와 전문성의 결합", 긱워커가 보험을 선택한 이유
그간 긱이코노미를 지탱하던 배달이나 단순 대행 플랫폼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고숙련·고수익을 지향하는 전략적 N잡러들이 보험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보험 설계는 초기 자본 투자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시작할 수 있으면서도, 배달 대비 피로도가 낮고 수익 잠재력이 높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메리츠화재에 따르면 부업 설계사들의 한 달 평균 가외 수입은 148만원에 달하며 일부는 월 1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본업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 기반 긱워크’로서의 입지를 굳힌 셈이다.
부수입 원하는 N잡러 파고드는 보험업계
보험업계 긱이코노미의 원조는 한화생명이다. 2020년 10월 업계 최초로 선보인 전용 플랫폼 '라이프 MD(LIFE MD)'는 모바일 앱을 통해 설계사 입문 교육부터 자격시험 준비, 계약 체결까지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며 '부업 설계사' 시대를 열었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롯데손해보험이 포문을 열었다. 2023년 말 출시된 '원더'는 교육부터 수익 관리까지 앱 하나로 완결되는 '스페이스리스(Spaceless)' 모델을 안착시켰다. 도입 1년 만에 위촉된 '스마트 플래너'만 3615명을 돌파했으며, 지난해 상반기 신규 스마트플래너 위촉 인원이 224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
메리츠화재는 2024년 3월 '메리츠 파트너스'를 런칭하며 시장의 파이를 급격히 키우고 있다. 출시 이후 누적 위촉 설계사 1만2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적 압박을 완전히 없앤 철저한 실리 위주 정책을 추구한다. 활동 파트너 4명 중 1명이 본업 외 추가 소득을 올리는 등 실제 소득 창출 효과를 입증하며 세를 확장 중이다.
삼성화재도 올해 초 'N잡크루'를 공식 런칭하며 참전했다. 교육 신청과 강의 수강부터 삼성화재 설계사 등록까지의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운영하며, 비대면 교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담 멘토를 지정해 밀착 지원하며, 설계사 자격시험 응시료도 회사가 지원한다.
또 삼성화재 설계사로 등록한 N잡크루는 교육 플랫폼 'MOVE'를 통해 전속 설계사들과 동일하게 영업활동에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다.
KB손해보험 역시 N잡 설계사 전용 플랫폼 'ZIP'을 통해 긱워커들을 흡수하고 있다.
보험사가 N잡러에 사활 거는 이유, 핵심은 'CSM 극대화'
보험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전용 플랫폼을 구축하고 N잡러를 모집하는 배경에는 새 회계기준(IFRS17) 하의 핵심 수익 지표인 CSM(Contractual Service Margin, 계약서비스마진) 점유율 전쟁이 자리 잡고 있다.
CSM은 보험 계약 시점에 미래에 발생할 이익을 추정하여 장부에 부채로 쌓아두었다가, 보험 기간에 걸쳐 이익으로 전환하는 수치다. 즉, CSM 규모가 클수록 보험사의 미래 곳간이 풍족하다는 뜻이다.
N잡 설계사 채널은 세 가지 측면에서 CSM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먼저 고정비를 줄일 수 있다. 전통적인 전속 설계사 조직은 지점 임대료, 매니저 급여, 신인 정착 지원금 등 막대한 고정비(사업비)가 발생하지만, 앱 기반의 N잡러는 이러한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IFRS17 하에서는 판매 비용을 뺀 나머지 금액이 마진으로 책정되므로, 고정비를 아낄수록 CSM은 커진다.
또 마진율과 해지율 관리에 효율적이다. CSM은 저축성 보험보다 암·뇌·심장질환 등을 보장하는 '장기 보장성 보험'에서 훨씬 높게 책정된다.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줘야 하는 저축성 보다는 사고가 나야 돈을 주는 보장성 보험이 보험사 입장에서는 마진이 훨씬 큰 것이다.
N잡러들은 복잡한 연금이나 변액보험 대신 본인이나 지인을 대상으로 꼭 필요한 보장성 보험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CSM 기여도가 가장 높은 효자 상품군을 저비용으로 확보하게 된다.
아울러 본인이 직접 가입하거나 지인 위주로 판매되는 계약은 일반 대면 영업보다 유지율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해지율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안정적인 미래 이익(CSM)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전통 강자들은?
전용 디지털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DB손해보험과 교보생명 등은 기존의 견고한 인프라를 활용한 ‘하이브리드형 유연 제도’로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출퇴근 의무를 없애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를 통해, 본업이 있는 설계사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다.
이제 보험사가 단순 금융사를 넘어 긱워커를 관리하는 플랫폼 역량을 시험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앞으로 보험업계는 수수료 경쟁을 넘어 설계사의 전문성을 유지하고 불완전판매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의 고도화가 향후 시장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