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도시락 매대가 바뀌었다. 한식 백반·일식 덮밥·중식 면 같은 'PB 도시락' 옆에 미슐랭 식당·노포 맛집·유명 셰프의 이름이 붙은 도시락이 나란히 놓이는 풍경이 본격화됐다.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레스토랑 간편식) 시장은 외식 대체 수요와 냉동 간편식 성장이라는 두 흐름 위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 편의점 빅3(GS25·CU·세븐일레븐)는 이 카테고리에 협업·IP 라인업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냉동 간편식이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RMR 성장의 배경에는 간편식 시장 자체의 구조 변화가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MINTEL에 따르면 국내 간편식 시장에서 냉동 제품의 비중은 2022년 52%에서 2023년 56%, 2024년 58%로 매년 확대되고 있다. 반면 냉장 간편식은 같은 기간 36%에서 34%로, 상온 간편식은 12%에서 8%로 비중이 줄었다. 냉동 중심으로의 재편은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냉동식품 시장 규모는 2016년 2조2900억원에서 2024년 4조5000억원대로 8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RMR은 이 냉동 간편식 성장의 핵심 동력 중 하나다. 유명 식당 메뉴를 데우거나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든 RMR 제품은 대부분 냉동·냉장 유통 방식을 택하며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
미슐랭 식당이 편의점 매대에 들어왔다
편의점 빅3도 RMR 라인업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GS25는 미슐랭가이드 빕그루밍에 등재된 식당과 협업해 '금돼지 불고기 도시락' 등 4종 협업 상품을 출시한 바 있고, 이후로도 노포·셰프 협업 상품을 매주 단위로 신상품 라인업에 배치하고 있다.
CU는 자체 모바일 앱 '포켓CU'를 통해 전국 유명 식당 메뉴를 밀키트 형태로 제공하면서, RMR을 매장 도시락이 아니라 별도 카테고리로 운영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반도체·웹툰 등 IP 협업 상품과 RMR 라인을 결합해 '이색 콘셉트'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
PB 도시락은 가성비, RMR은 프리미엄
편의점 도시락 카테고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PB 도시락은 2000~5000원대 가성비 라인업, RMR은 6000~9000원대 프리미엄 라인업이다. 같은 매대 안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는 그날의 예산·기분에 따라 두 카테고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PB 도시락의 핵심 경쟁력은 '점심값 1만원' 시대의 가성비다. 외식 1만원대에 비해 절반 이하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직장인·1인가구의 점심·저녁 수요를 끌어당겼다. CU는 3000원 안팎 가격대 상품을 확대했고, GS25도 저렴한 도시락 라인업을 늘렸다. 이 카테고리는 외식 인플레이션의 직접적 수혜를 받으며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RMR 라인은가격은 PB 도시락보다 높지만, '집에서 먹는 외식' 욕구를 채우게 한다. 미슐랭 셰프·노포·프랜차이즈 본점의 메뉴가 매대에 오르면서,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인식이 가성비 한 끼에서 한식·중식·일식 외식 대체재로 확장된다.
외식 기업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RMR 시장이 확대되면서 외식 기업의 채널 전략도 바뀌고 있다. 노포 음식점·유명 셰프·외식 프랜차이즈가 자체 RMR 브랜드를 편의점·온라인 채널에 입점시키는 흐름이 확산됐다. 매장에서만 먹을 수 있던 메뉴가 데우기만 하면 되는 형태로 변형돼 편의점 매대에 오르는 사례가 지난 1~2년 사이 빠르게 늘었다.
외식 기업 입장에서 RMR은 본업 매장의 매출 한계를 넘는 새 채널이다. 매장 좌석 수·영업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 없이 자기 메뉴를 전국 단위로 판매할 수 있다. 편의점 입장에서는 매주 신상품을 만들 필요 없이 외식 브랜드의 IP를 빌려 카테고리를 두껍게 만들 수 있다. 양쪽 모두에 윈윈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RMR은 새 옵션이 된다. 한 시간 줄 서서 먹어야 하는 노포·셰프 식당 메뉴를 편의점에서 6000~9000원에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이 강력한 매력이 된다. 유명 식당의 '맛 자체'에 비해 만족도가 100%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접근성·가격·시간을 종합하면 충분한 가치를 만든다.
냉동 간편식 4조5000억원 시대의 다음은?
다만 RMR 카테고리가 모든 시기·모든 가격대에서 균일하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격 인상 압박은 RMR도 피하지 못한다.
원재료·물류·인건비 인상이 누적되면서, RMR 평균 단가가 7000원대 후반에서 8000원대 초반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 시장 파이는 충분히 커졌으나 가성비를 무기로 삼는 PB 도시락과 달리 RMR은 '한 단계 위 만족도'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서 단가 인상과 품질 사이의 균형이 핵심 과제로 남는다.

